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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급업체 근로자들의 도급업체 내 집회…정당행위라면 업무방해 성립 안돼
2020-09-20 09:00:00 2020-09-20 09:00:00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임금협상 등 단체 협상이 결렬된 근로자들이 소속회사에게 도급을 준 업체에서 쟁의행위를 했더라도 그 기간이 길지 않고 수단 또한 법적으로 허용되는 통상적인 수준이었다면, 도급업체에 대한 업무방해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헌법상 보장된 근로자들의 단체행동권의 실질적 효력을 폭넓게 보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아 보인다.
 
대법원 2부(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소속회사와의 단체 협상 결렬 문제를 풀기 위해 도급업체 안에서 집회 및 시위를 함으로써 도급업체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 및 퇴거불응죄)로 기소된 김모씨 등 5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0일 밝혔다.
 
대법원 청사 앞에 게양된 태극기와 법원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쟁의행위가 정당행위로 위법성이 조각되는 것은 사용자에 대한 관계에서 인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제3자의 법익을 침해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면서 "도급인은 원칙적으로 수급인 소속 근로자의 사용자가 아니기 때문에 쟁의행위가 수급인에 대한 관계에서 정당성을 갖췄다고 해도 법익 침해의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볼 수 없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수급인 소속 근로자들이 집결해 함께 근로를 제공하는 장소로서 도급인의 사업장은 수급인 소속 근로자들의 삶의 터전이 되는 곳이고, 쟁의행위의 주요 수단 중 하나인 파업이나 태업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이런 점에서 도급인은 그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수급인의 쟁위행위로 인해 일정부분 법익이 침해되더라도 사회통념상 이를 용인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이 경우는 형법상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인들의 이 사건 파업은 지회 조합원들의 근로조건 및 경제적 지위 향상이라는 정당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었고, 수단 또한 쟁의행위 일환인 집회나 시위에서 통상적 수준이었던 점, 쟁의행위가 비교적 길지 않은 총 3일 동안 평화로운 방식으로 이뤄진 점, 각 집회를 통한 일시적 농성 장소 역시 도급인 업무의 주요시설이 아닌 건물 사이의 인도였던 점 등이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이 사건 각 집회는 정당행위에 해당하고, 당시 일정한 소음을 발생시킨 사정이 있더라도 이로써 도급인 소속 직원들의 정상적 업무 수행에 실질적 지장을 초래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같은 취지로 판단한 원심은 옳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와 함께 △도급인 측이 사업장 내 본관 건물 지하에 김씨 등이 소속된 노조지회의 정당한 노조 활동을 보조하기 위해 사무실을 제공한 점 △이 지회가 파업 돌입 전 도급인 측 사업장 내에서 소속회사인 수급업체들과 단체교섭을 진행한 점 △수급업체들 본사나 사무소 위치 사정상 노조가 단체행동권을 실효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점 등을 정당한 쟁의행위로 볼 수 있는 근거로 지적했다.
 
재판부는 수급업체가 쟁의행위로 불가피하게 투입한 대체인력 업무를 김씨 등이 방해했다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도 "노조법상 사용자는 쟁의행위 기간 중 그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의 수행을 위해 당해 사업과 관계없는 자를 채용 또는 대체할 수 없다"면서 "수급업체는 피고인들이 대체인력이 기존 수급업체 근로자들인지 확인을 요청한 것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체인력의 업무수행을 제지하기 위해 실력 행사를 한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씨 등은 한국수자원공사가 시설관리 용역을 맡긴 P사와 S사 소속 직원이자 이들로 구성된 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대전지부 수자원공사지회 소속 노조원으로, 2012년 6월 소속 회사와의 임금 단체 협상이 결렬되자 수자원공사 내에서 같은 달 25일에서 7월2일까지 3회에 걸쳐 집회를 열고 공사 측 퇴거 요구에 불응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씨 등의 집회는 각 회당 1시간~3시간 진행됐으며, 건물 사이 인도 중 일부공간을 점거한 상태에서 구호를 외치고, 율동과 노동가를 제창하는 정도였다.
 
1심은 유죄를 인정하고 집회를 주도한 김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가담자 4명에게는 벌금 15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이에 김씨 등이 불복해 열린 항소심은 김씨 등의 집회는 정당행위로 봐야 한다면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검찰이 상고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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