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저유소 화재' 1심 마무리 수순…강압수사 증거능력 잃어
경찰, 신문 녹화 영상 제공한 변호사 기소의견 송치…법조계 "보복성 수사" 반발
입력 : 2020-09-14 06:00:00 수정 : 2020-09-14 06:00:00
[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지난 2018년 풍등을 날려 경기도 고양 저유소 시설에 불을 나게 한 혐의를 받는 스리랑카인 이주노동자 디무두 누완씨에 대한 1심이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경찰의 '강압수사'로 인한 진술조서는 증거능력을 상실했다.
 
13일 법원 등에 따르면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형사5단독 손호영 판사는 디무두씨에 대해 오는 18일 8차 공판기일을 연다. 이후 두 번 정도의 공판기일을 거친 후 11월 중순쯤에는 심리를 종결할 예정이다. 이르면 연내에는 선고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2018년 10월7일 오전 11시쯤 경기도 고양시 대한송유관공사의 지하 탱크에서 불이 나 소방 당국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디무두씨는 풍등을 날려 저유소 잔디에 떨어진 풍등의 불씨가 건초에 붙은 후, 이 불이 저유탱크의 유증기에 옮겨 붙어 결국 화재로 이어지게 한 혐의(실화)를 받았다. 실화죄는 과실로 인해 현주건조물 또는 공용건조물 및 일반건조물 등에 기재된 물건을 연소시킨 죄다.
 
2019년 8월부터 1년2개월 동안 지속된 공판에서는 디무두씨가 속한 회사관계자, 송유관공사 경인지사 관계자 등이 나와 증언했다. 양 측은 디무두씨가 저유소의 위치를 정확히 인지했는지, 풍등을 날림으로 인한 화재 가능성을 인식했는지, 풍등의 불씨 말고는 화재를 일으킬 요소가 없었는지 등을 두고 다퉈왔다.
 
이와 관련해 송유관공사와 관계자들은 △저유탱크 안전설비에 대해 정기점검을 제대로 하지 않은 혐의(위험물안전관리법 위반) △정기점검에 대한 사항을 허위로 작성했는데도 관리감독을 의무를 다하지 않은 혐의(허위 공문서 작성) △저유탱크 주위에서 제초 작업을 하면서 건초를 방치한 혐의(송유관안전관리법 위반)로 별도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혐의를 인정하고 이후 방지책을 마련했다는 이유로 1심에서 최대 벌금 400만원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부실한 안전관리와 허술한 모니터링으로 인해 화재를 방치하고 키운 책임을 묻지 않았다. 화재에 대한 형사 책임은 디무두씨에게 돌아갔다.
 
이 사건이 주목받는 이유는 또 있다. 디무두씨 변호인인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가 경찰이 피의자 조사 당시 자백을 끌어내기 위해 무리한 조사를 한 증거를 제공하면서 '강압수사' 논란이 불거졌다. 신문 녹화 영상에 따르면 경찰관은 디무두씨를 추궁하면서 123회에 걸쳐 '거짓말하지 말라', '거짓말 아니냐'고 하는 등의 발언을 했다. '불이 나면 X 된다는 표현 아나' 등의 비속어를 섞어가며 윽박지르기도 했다. 경찰이 피의자의 진술을 임의로 축약·편집해 진술조서를 꾸민 정황도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변호인단의 진정을 받아들여 해당 경찰관을 주의 조치하고 관련 교육을 받도록 권고했다.
 
변호인 측이 진술 내용과 임의성을 부인하면서 재판부는 경찰 진술조서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형사소송법 309조는 피고인의 자백이 고문, 폭행, 협박, 신체구속의 부당한 장기화 또는 기망 기타의 방법으로 임의로 진술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그 자백에 대해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사사건 전문 곽준호 법무법인 청 대표변호사는 "피의자가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거나 명백한 증거가 있음에도 부인하는 경우에는 강도있게 수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강압수사는 아주 이례적이며 당연히 증거능력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압수사 논란을 빚은 경찰관은 오히려 영상을 제공한 최 변호사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최 변호사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대한변협은 "경찰의 강압 수사 문제점을 지적한 변호인에 대한 보복성 기소 의견 송치에 대해 강한 분노를 표출한다"며 "변호인에 대한 보복을 즉시 중단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민변도 "공익제보를 통해 실현되는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공권력 남용에 대한 민주적 감시라는 공적 이익을 현저히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검찰은 해당 사건과 함께 경찰의 강압 수사 및 보복 수사 여부 등도 함께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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