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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공공의 적'이 사라질 때
2020-09-10 06:00:00 2020-09-10 06:00:00
최근 들어 오래전 즐겨봤던 영화 한 편과 드라마 하나가 떠올랐다. '공공의 적' 시리즈 마지막 편인 '강철중: 공공의 적 1-1'과 보기 드문 팬덤을 형성한 '다모'다.
 
영화에는 거성 그룹 회장인 이원술이 등장한다. 타고난 싸움 실력을 끊임없이 갈고닦으면서 세력을 만들고 사업을 확장해 여러 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기업인으로 성장했다.
 
그는 회사 일을 직원들에게만 맡겨두지 않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솔선수범한다. 고객과의 신뢰를 지키려고 수십 명이 흉기를 들고 있는 곳에 목숨을 걸고 뛰어들 정도다.
 
후배양성에도 상당한 노력을 한다. 싸움으로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는 학생들을 모아 일자리를 주면서 주먹질은 물론이고 칼을 잘 쓰는 방법도 가르친다.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 또는 기술자로 키우기 위해서다. 아마 자신이 걸어온 성공의 길을 어린 학생들이 잘 따르고 배워 그들이 성공한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여러 계열사를 살펴야 하는 바쁜 와중에도 아들과 함께 주말농장을 찾아 농작물을 기르면서 애정 어린 말을 쏟아내기도 한다.
 
혈혈단신으로 큰 기업을 세우고 미래 세대를 키우면서 가족에 대한 사랑도 넘치는 누구라도 '롤모델' 삼고 싶은 인물이다. '그들만의 세상'이 안정적으로 유지될 때는 그렇다.
 
하지만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가해지고 세상 밖으로 실체가 드러나면 달라진다. 강력한 수사에 부딪히자 그는 자신이 키운 아들 또래 부하에게 칼을 쥐여주고 경찰을 공격하게 하거나 큰 보상을 주겠다며 죄를 대신 뒤집어쓰도록 한다. 큰 시련이 닥치자 세상 물정에 어두운 학생을 앞장세우고 본인은 뒤로 숨어버리는 비겁함이 드러난 것이다.
 
한 세대를 먼저 살아온 어른이자 인생 선배로서 바른길을 제시하고 인도하기는커녕 그릇된 판단을 부추기고 학생들 스스로 인생의 진로를 선택할 기회를 빼앗은 것이기도 하다. 조직의 기강과 질서를 잡는다며 자신에게 일체 되지 않는 사람을 본보기로 제거하기도 했다.
 
다모에는 화적패 두목 장성백이 있다. 명망 있는 사대부 집안의 자제였다가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려 추락했지만 당대 최고의 검객으로 거듭나면서 '백성이 주인 되는 세상'을 꿈꾼다.
 
일반 백성들은 탐관오리가 판치는 곳에서 피폐한 삶을 살지만 그의 산채는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산채를 이끄는 장성백은 성군(聖君)의 모습 그대로다. 마찬가지로 그 집단의 관점에서는 그렇다.
 
그는 백성이 주인인 나라를 세운다는 대의를 이룰 자금 마련을 위해 위조화폐를 만들고 유통한다. 자신을 토벌하러 온 수백명의 군관을 전멸시키기도 했다.
 
역모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궁궐에 침입하기 직전 본인이 권력욕에 눈이 먼 병조판서와 왜군에게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발길을 돌리지만 나라의 근간을 흔들고 사회불안을 증폭시켰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자신이 위한다는 백성들을 살상하는 모순에 빠진 것도 마찬가지다.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한 두 인물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고 '제 밥그릇' 외에는 모두 하찮다고 여겼다는 점이다. 끝까지 사과와 반성이 없었다는 것도 같다.
 
옛 기억이 소환된 것은 최근 의대생과 의사 집단의 행태 때문이다. 젊은 의사들의 몽니를 뒤에 숨어 바라보고 부추기는 교수와 선배들. 집단행동을 압박하는 분위기. 공부를 잘했으니 모든 것을 뜻대로 할 수 있다는 착각. 기득권 유지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은 환자의 목숨. 미안함의 표현은 없는 조용한 복귀.
 
영화의 등장인물은 도망치려다 체포되고 드라마는 수십발의 화살을 맞고 생명을 잃는다. 이후의 얘기는 상상의 영역이지만 아마도 공공의 적이 드러나고 사라진 것을 계기로 조금 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회로 발전해 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전보규 기자 jbk880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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