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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시간을 지배하기 위한 ‘테넷’의 5가지 비밀
시간의 흐름 조종 ‘인버전’, 그리고 ‘사토르 마방진’ 속 정체성 투입
‘인과율 법칙’, 원인과 결과 뒤바뀔 수 없는 흐름…’모든 비밀’ 은유
2020-08-28 00:00:01 2020-08-28 20:59: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이 영화에 대한 꽤 많은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스포일러는 아닙니다. 기자 개인의 해석을 담은 내용입니다. 굉장히 난해한 영화인만큼 모든 부분을 알고 보셔도 재미를 반감시킬 우려는 없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테넷은 시간이란 개념 자체가 완벽하게 무의미해진다. 과거와 현재의 경계선 자체가 없다. 현재는 현재이고, 과거는 과거다. 반대로 과거와 현재는 동시에 진행된다. 할아버지 패러독스(Grandfather paradox) 개념이 등장한다. 정해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원인과 결과를 뒤바꿀 수 없단 인과율의 법칙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일어난 일은 일어나게 된단 얘기다. 도대체 무슨 말이지 모를 정도로 사실 어렵다. 난해하다. 장르적으로도 SF와 스파이 그리고 범죄물이 뒤섞여 있다. 무엇보다 다중현실 개념과 차원에 대한 흐름까지 도입되기에 한 번의 관람으론 이 영화를 오롯이 이해한단 것 자체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테넷
 
영화에서 주도자로 불리는 한 남자(존 데이비드 워싱턴)는 미국 정보기관 요원이다. 이 영화 속에서 그는 이름이 공개되지 않는다. 전체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실질적인 화자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편의상 주도자로 명칭된다. 그는 우크라이나 국립극장 테러 사건에 투입된다. 이 사건에서 죽음의 문턱까지 스스로 다가서는 선택을 한다. 그의 극단적인 선택은 일종의 시험이었다. 그 시험은 주도자를 한 비밀 단체와 만나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 단체의 이름이 바로 테넷이다. 테넷은 단체의 이름일 수도 있다. 주도자가 이 단체의 관계자로부터 듣게 된 앞으로 다가올 끔찍한 사건, ‘3차 세계대전을 뜻하는 일종의 코드이기도 하다.
 
테넷은 가로세로가 다섯 단어로 똑같이 읽히는 사토르 마방진에서 가운데 중간 십자가 모양에 포진된 단어다. 결과적으로 테넷은 세상을 구원할 단체다. 3차 세계대전을 막아낼 유일한 구원자다. 구원자인 테넷을 중심으로 포진된 단어는 이 영화의 빌런 사토르’(sator), 주도자가 사토르에게 접근하기 위해 그의 아내 캣에게 전달했던 프란시스코 고야의 그림을 위작한 가상의 인물 아레포’(arepo), 영화 처음 등장해 주도자를 시험한 오페라 하우스를 뜻하는 오페라(opera), 그리고 로타스(rotas). 로타스는 이 영화 전체의 기본 개념인 일어난 일은 일어난다를 은유적으로 뜻하는 굴러가다바퀴를 뜻하는 듯싶다. 또한 영화 오프닝 시퀀스인 오페라 하우스 테러와 영화 엔딩에서 주도자의 시선을 사로 잡은 그것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할 것이다.
 
테넷은 사토르 마방진 속에 담긴 모든 것을 스토리로 풀어낸 놀란 감독 창작의 극한이다.
 
영화 '테넷' 공식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두 가지만 기억해라
 
주도자는 오페라 하우스테러 사건 이후 비밀 단체 테넷에 스카우트된다. 이 단체의 관계자는 주도자에게 미래 세계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한다. 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그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 망망대해 한 복판 배 위에서 깨어난 주도자에게 이 남자는 마지막으로 두 가지를 언급한다.
 
기억할 것은 두 가지다. 이것(양 손을 깍지 낀 포즈), 그리고 테넷.”
 
테넷은 앞에서부터 읽던 뒤에서부터 읽던 같은 단어다. 이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것은 영화 전체가 의미하는 미래 세계가 바라보는 과거(지금의 시점에선 현재) 그리고 지금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과거(미래 시점에선 대과거)가 같이 맞물리면서 진행된단 얘기를 은유적 혹은 비유적으로 표현한 단어다. 이 단체를 만든 의문의 집단 혹은 한 사람이 그런 뜻을 담고 작명한 듯싶다. 이 같은 추측은 주도자에게 앞으로 일어날 대략적인 사건의 개요를 설명한 한 남자가 취한 포즈에서도 유추된다. 양손을 깍지 낀 포즈. 시간은 맞물려 움직인다. 현재의 사건이 벌어지기 위해선 과거의 원인이 동반돼야 한다. 과거의 원인은 현재의 사건 이유가 된다. 어느 한 쪽을 바꾸면 사건은 일어나지 않게 된다.
 
결과적으로 주도자 역시 테넷의 제안을 받아 들이고 조력자로 소개 받은 닐(로버트 패틴슨)과의 대화를 통해 그 의미를 이해하고 해석한 듯싶다.
 
현재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미래의 그 일은 없었던 것 아닌가라고. 하지만 닐은 반대다. “일어날 것은 일어난다라고. 앞서 언급한 할아버지 패러독스. 원인과 결과는 절대 뒤바꿀 수 없다는 인과율의 법칙. 여기서 닐의 정체가 궁금해 진다. 닐은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하다.
 
영화 '테넷' 공식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인버전 도대체 무엇인가
 
이 영화 테넷에서 가장 중요한 코드가 바로 인버전이다. 일종의 시간 역행 기술이다. 미래에서 넘어온 기술로만 서술된다. 엔트로피와 관련된다. 엔트로피는 물질의 에너지 흐름을 설명할 때 이용되는 상태 함수다.
 
영화 초반 테넷에 합류한 주도자는 테넷의 비밀 연구소에서 인버전의 주요 개념에 대해 설명을 듣는다. 테넷의 연구원으로부터 듣는 인버전개념은 물리학의 개념을 모르는 일반인들에겐 생소함을 넘어 난해하다. 책상 위 총알을 공중으로 끌어 당겨 손에 잡는다. 하지만 총알의 시선에서 이건 공중으로 띄워 잡는 게 아니라 땅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빈 총을 들고 과녁에 사격을 한다. 당연히 총알이 나가지 않아야 정상이다. 하지만 총알은 발사된다. 그런데 이건 발사되는 게 아니라 발사된 총알이 꺼꾸로 돌아오는 것이다. 에너지의 흐름을 조종해 현실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기술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미래에서 넘어온 이 기술은 어떤 통로를 통해 현재로 넘어 왔을까. 미래 시점에서 미래는 현재다. 미래 시점에서 지금의 현재는 과거다. 현재의 시점에서 주도자와 그의 조력자 닐은 인버전 기술을 통해 과거로 넘어가 사토르가 주도하는 3차 세계대전을 막아야 한다.
 
참고로 영화 예고편에 등장한 바 있는 산소 마스크도 인버전 개념 때문이다. 모든 것이 역행하는 인버전 공간에서 공기의 작용도 반대다. 때문에 인버전 상태에선 무조건 산소 마스크를 써야 한다.
 
영화 '테넷' 속 사토르가 전면에 등장한 공식 포스터
사토르는 누구인가
 
사토르(케네스 브래너)는 러시아 출신 무기밀매상이다. 엄청난 부를 축적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이 세상을 멸망시키려 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아내 캣(엘리자베스 데비키)과의 불화가 작은 불씨다. 사토르는 권력자다. 그는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힘을 소유하는 것에 대한 강한 욕구를 드러낸다. 무기밀매상이란 직업적 특성도 있다. 힘의 소유권에 대한 욕구가 바로 사토르의 정체성이다. 그는 자신이 가질 수 없다면 모두가 가질 수 없다는 파괴적 사욕에 사로 잡힌 인물이다.
 
기본적으로 사토르는 미래 세력의 사주를 받고 인버전 기술을 통해 전 세계를 멸망시킬 어떤 기술을 끌어 모으고 있다. 영화에선 전 세계 인구를 단 한 번에 절멸시킬 기술을 개발한 미래 한 과학자의 기술이 담긴 알고리즘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기술은 9개로 분리돼 핵무기를 보유한 9개 나라에 나눠져 있다. 이 역시 인버전 기술을 통해 미래에서 현재로 보내진 상태다.
 
사토르는 자신의 소유 창고에 인버전 기술을 실행시킬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채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 알고리즘 기술을 끌어 모으고 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전 세계를 절멸시키려 하는 것일까. 단순한 파괴적 사욕 때문일까. 영화에선 그의 아내 캣이 주도자에게 그 이유를 공개한다. 사토르가 전 세계를 파괴하려드는 이유를.
 
그리고 또 다시 드는 의문점. 사토르에게 사주한 미래 세력은 누구일까. 이 모든 것을 꿰뚫고 주도자를 포섭해 3차 세계대전을 막으려는 테넷 조직의 배반자일까. 아니면 사토르를 넘어서는 또 다른 빌런일까. 힌트는 사토르 개인 창고에 보관된 인버전 장치다. 그리고 이 영화 기본 골격이 되는 사토르 마방진에서 유추할 수 있다. 시간을 역행시키고 조종할 수 있는 인버전’, 사토르 마방진 한 축을 담당한 사토르’, 개인적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분명히 다른 이유 때문이다.
 
참고로 미래의 어떤 세력 혹은 개인이 인류를 절멸시키려는 시도는 인류의 자원 낭비와 환경 오염으로 생존이 위태로워졌기 때문이다. 미래의 인류가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미래의 시점에서 과거, 즉 현재의 인류가 절멸된다면 미래 시점의 현재는 보다 더 좋은 환경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서도 할아버지 패러독스는 적용된다. 원인과 결과는 어떤 이유에서든 뒤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영화 '테넷' 공식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코리아
사토르 마방진+깍지 낀 양손
 
사실 테넷사토르 마방진’ 이미지를 떠올리며 본다면 더 흥미로운 관람이 가능하다. 일종의 스포일러를 알고 관람한다고 해도 무방하다. 영화 초반 등장한 오페라 하우스시퀀스와 영화 마지막 엔딩 시퀀스는 다중 현실 속 동시간 대에 일어난 사건이다. 영화 속에서 공개된 대사에서 유추할 수 있는 지점이다.
 
사토르는 이미 9개 알고리즘 가운데 8개를 모았다. 마지막 한 개를 모으고 이를 막기 위해 주도자와 닐 그리고 테넷 소속의 또 다른 조력자(애런 존슨)가 투입되는 마지막 시퀀스. 오프닝 시퀀스인 오페라 하우스테러 사건 당시 대규모 폭발이 감지된 그곳이 바로 영화 마지막 엔딩 시퀀스에 등장한 곳이다. 영화 초반 테넷 관계자가 주도자에게 기억하라며 선보인 깍지 낀 양손’. 이 포즈는 모든 현실이 과거와 미래가 중첩돼 일어난단 다중현실을 의미하는 은유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 닐과 주도자 그리고 또 다른 조력자, 세 사람의 대화를 통해 드러난 1차 결말. 과거와 현재가 함께 흘러가고 있었단 의미의 해석. 앞으로 읽고 뒤에서 읽어도 같은 사토르 마방진’. 그리고 전체 스토리의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 테넷조직의 실체는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초반부터 우리가 알고 있었지만 간과했던 빈틈을 간결하게 채워준다. 이 지점이 사실상 이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가장 핵심적인 비밀이자 실체다.
 
테넷은 일종의 시간 역산법이다. 시간은 계산을 할 수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다.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기에 흐름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흐름을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절대자의 권리다. 그럼에도 모든 존재 가치는 시간의 지배를 받는다. 그 시간 정체성을 다루고 그리는 지점이 바로 테넷일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시선은 이제 공간과 시간까지 넘어섰다. 그 다음은 어디로 향할지. 기대감을 넘어선 경외감, 경외감을 넘어선 공포감이 밀려올 정도다. 8 26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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