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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18년 전 유언장에 적힌 말은
2020-07-10 17:47:24 2020-07-10 17:47:24
[뉴스토마토 권새나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이 10일 새벽 숨진 채 발견되면서 과거 그가 남긴 유언장이 재조명되고 있다박 시장은이 2002년 출간한 저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습관, 나눔에 자녀와 아내, 지인 등에게 보내는 3통의 유언장을 남겼다.
 
그는 자녀들에게 남긴 유언장에서 제대로 남길 재산 하나 없이 무슨 유언인가 하고 나 자신이 자괴감을 가지고 있음을 고백한다유산은커녕 생전에도 너희의 양육과 교육에서 남들만큼 못한 점에 오히려 용서를 구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토록 원하는 걸 못 해준 경우도 적지 않았고 함께 가족 여행을 떠나거나 함께 모여 따뜻한 대화 한번 제대로 나누지 못한 점에서 이 세상 어느 부모보다 역할을 제대로 못 한 점을 실토한다고 적었다.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고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가 마련돼 있다. 사진/뉴시스
 
이어평생 농촌에서 땅을 파서 농사를 짓고 소를 키워 나를 뒷바라지 해주신 내 부모님은 내게 정직함과 성실함을 무엇보다 큰 유산으로 남겨주셨다하지만 나는 너희에게 제대로 시간을 내지도 못했고, 무언가 큰 가르침도 남기지 못했으니 그저 미안하게 생각할 뿐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다만 그래도 아빠가 세상 사람들에게 크게 죄를 짓거나 욕먹을 짓을 한 것은 아니니 그것으로나마 작은 위안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 부모님의 선한 심성과 행동들이 아빠의 삶의 기반이 됐듯 내가 인생에서 이룬 작은 성취들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바른 생각들이 너희 삶에서도 작은 유산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 시장은 또인생은 돈이나 지위만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고 자신이 최선을 다해 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너희는 돈과 지위 이상의 커다란 이상과 가치가 있음을 깨닫는 인생을 살기 바란다. 그런 점에서 아빠가 아무런 유산을 남기지 못하는 것을 오히려 큰 유산으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이어 아내에게는 평생 아내라는 말, 당신 또는 여보라는 말 한마디조차 쑥스러워 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아내라고 써 놓고 보니 내가 그동안 당신에게 참 잘못했다는 반성부터 앞선다변호사 부인이면 그래도 누구나 누렸을 일상의 행복이나 평온 대신 인권 변호사와 시민 운동가로서의 거친 삶을 옆에서 지켜주느라 고되었을 당신에게 무슨 유언을 할 자격이 있겠나. 오히려 유언장이라기보다는 내 참회문이라 해야 적당할 것이라고 남겼다.
 
그러면서 내가 소중히 하던 책들을 대학 도서관에 모두 기증해 달라”, “안구와 장기를 생명나눔실천회에 기부했으니 그분들에게 내 몸을 맡겨달라”, “화장을 해서 시골 마을 내 부모님이 계신 산소 옆에 나를 뿌려달라고 부탁했다.
 
내 마지막을 지키러 오는 사람들에게 조의금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내 부음조차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 신문에 내는 일일랑 절대로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당신도 어느 날 이 세상 인연이 다해 내 곁에 온다면 나는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겠다그래서 우리 봄 여름 가을 겨울 함께 이생에서 다하지 못한 많은 시간을 함께 지냈으면 한다고 적었다.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고 박원순 서울시장 빈소가 마련돼 있다. 사진/뉴시스
 
다른 가족과 지인들에게도 유언을 남겼다. 박 시장은모든 분들에게 나는 큰 신세를 졌다. 많은 배움과 도움을 얻었다때로는 내 원만하지 못한 성격으로 상처를 입기도 했을 것이고 억지스러운 요구로 손실을 입기도 했을 것이라고 썼다.
 
이어그래도 우리는 함께 꿈꿔오던 깨끗하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고, 그 못 다한 몫은 바로 이제 여러분들이 이뤄줄 것임을 믿는다고 전했다.
 
권새나 기자 inn1374@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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