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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소리꾼’, 우리 색깔 뮤지컬 장르 개척 의미↑
고전 심청전 배경 속 여러 작품 재해석 더해진 구성 흥미 재미↑
배우 연기 아닌 ‘소리’에 집중한 연출 스타일, 영화 완성도 ‘글쎄’
2020-06-24 00:00:05 2020-06-24 00:00:05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판소리를 소재로 한 영화는 1993년 단관 개봉으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서편제가 있다. 당시 주인공은 실제 판소리를 하는 오정해가 캐스팅돼 화제였다. 이후 오정해는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현재는 배우 생활을 중단했다. 물론 오정해 이후 판소리+연기를 소화할 배우가 없기에 이 소재를 녹여낼 만한 작품이 나오지 못한 것도 있지만 반대로 서편제의 그림자를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에 등장하지 않았던 점도 있다. ‘판소리가 담고 있는 이란 주제 의식 속에서 서편제의 구성과 형식을 넘어설 작품은 그 이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다는 게 영화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긍정하는 부분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소리꾼의 등장한 반갑고, 대단하면서도 한편으론 판소리소재 영화에 대한 우려를 다시 한 번 증명한 것 같아 아쉽다.
 
 
 
소리꾼은 제목 그대로 판소리가 소재다. 하지만 스토리를 구성하는 지점은 흥미롭다. 고전 심청전을 재해석한 밑바탕에 여러 고전의 요소들이 더해지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로 재탄생 됐다.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새로우면서도 익숙한 지점이 소리꾼의 강점이자 반대로 약점이다.
 
영화는 판소리란 단어가 형성되기 이전 또는 그 즈음이 시간적 배경이다. 재주 많은 소리꾼 학규(이봉근). 그는 장터에서 소리를 하면서 밥벌이를 하는 천민이다. 집에는 아내 간난(이유리) 그리고 딸 청이(김하연)가 있다. 세 사람은 신분으로 차별 받는 세상에서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가족이 있고, 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곁에는 학규의 절친이자 조력자 장단잽이 대봉(박철민)까지. 이들은 한 가족이다.
 
영화 '소리꾼' 스틸. 사진/제이오엔터테인먼트
 
그러던 어느 날이다. 삯바느질로 집안 살림을 보태던 아내 간난이가 사라졌다. 신분이 낮은 천민들을 잡아다 내다 파는 인신매매 조직에게 납치된 간난과 청이. 간난의 기지로 청이는 탈출하게 된다. 하지만 탈출과정에서 받은 충격으로 청이는 앞을 못게 된다. 앞을 못 보는 청이, 그리고 그런 청이를 대리고 납치된 아내를 찾아 나서는 학규의 앞날은 고생스럽기만 하다.
 
청이와 학규 그리고 대봉, 여기에 길에서 만난 장돌뱅이와 거렁뱅이 땡중까지. 이들은 납치된 간난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외치고, 세상 사람들에게 전한다. 학규의 구슬프고 구성진 소리가락은 자신과 청이 그리고 어딘가 살아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싶은 아내 간난이의 삶을 담아낸다. 이 소리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심청전이다. 학규의 입을 통해 당시 민초들의 삶과 애환을 담은 소리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간다. 그 소리는 몰락한 양반가문의 자제(김동완)의 눈시울까지 적시며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영화 '소리꾼' 스틸. 사진/제이오엔터테인먼트
 
하지만 학규의 구성진 이 소리가락은 부패한 양반 김준(김민준)의 심기를 건드린다. 김준은 야망으로 가득찬 인물이다. 그는 간난을 포함해 천민들을 납치해 노예로 팔아 먹는 인신매매 조직의 뒤를 봐주고 있다. 김준과 그의 뒤를 봐주는 또 다른 고위 관료들은 임금을 끌어 내리고 조정을 장악하려는 역모를 꾀하고 있었다.
 
소리꾼은 판소리를 소재로 했단 점에서 서편제의 맥을 이을 수 있는 영화로 주목 받는다. 하지만 장르적으론 뮤지컬 영화에 가깝다. 주인공 학규가 쏟아내는 소리를 통해 소리꾼의 이야기는 흘러간다. 스토리의 주요 포인트와 감정의 굴곡에서 터져 나오는 학규의 절절한 소리, 때로는 힘이 넘치는 장단과 강한 소리, 간드러지는 판소리 특유의 구성짐은 영화의 서사가 담아낼 수 있는 강약 장단의 조절을 판소리의 그것으로 끌어와 절묘하게 매치 시킨다.
 
영화 '소리꾼' 스틸. 사진/제이오엔터테인먼트
 
가장 절묘한 지점은 구전된 고전의 재해석이다. 심청전과 함께 춘향전 그리고 박문수전이 뒤섞이면서 색다른 재미가 넘친다. 이건 전적으로 감독의 상상이다. 구전돼 왔기에 출처가 불명하다. 그 시절 장똘뱅이 재주꾼들의 입담으로 전해져 온 얘기의 실체가 이랬거니싶은 감독의 상상은 충분히 흥미롭고 충분히 극적이다. 이런 지점은 실제 국악계에서 북 치는 고수로 활동해 온 조정래 감독의 식견이 만들어 낸 구성이다.
 
다만 완성도 측면에선 기존 상업 영화의 틀을 벗어나는 지점이 많다. 저 예산 방식으로 제작된 탓에 매끄럽고 유려한 장면을 기대하기 보단 투박하고 거친 흐름이다. 무엇보다 판소리가 소재이기 때문에 실제 소리꾼 이봉근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지점은 연출의 입장에선 신의 한 수였지만 관객의 입장에선 신의 하수가 될 수도 있을 듯싶다. 소리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체이지만 영화는 기본적으로 배우의 연기가 전달하는 감정이다. 소리가 전달하는 구성지고 애달픈 눈물이 있을지언정 연기가 전달하는 감동은 결코 짙다고 할 수 없다.
 
영화 '소리꾼' 스틸. 사진/제이오엔터테인먼트
 
드라마 왔다 장보리를 통해 희대의 악녀로 등장한 바 있는 이유리가 연기의 결과 흐름을 따라가는 유일한 존재감을 선보인다. 그룹 신화 멤버 김동완은 몰락한 양반으로 출연해 특유의 해학적인 모습을 선보이지만 출연 분량이 아쉽다.
 
전작 귀향을 통해 인상적인 존재감을 선보인 조정래 감독의 연출력이 극화된 장르에선 힘을 잃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아쉽다. 그 아쉬움 속에서 판소리가 소재인 우리만의 뮤지컬 장르가 개척됐단 해석을 하자면 소리꾼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클 듯싶다. 개봉은 7 1.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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