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제가 그런 관계로 하면 한 두 편이겠습니까.” 배우 조진웅이 웃으며 말했다. 배우 정진영이 감독으로 첫 메가폰을 잡은 영화 ‘사라진 시간’을 선택한 이유가 혹시 ‘선배 정진영에 대한 부담도 있었는지’에 대한 답변이었다. 물론 이 대답은 조진웅이 직접 정진영에게도 했던 말이다. 정진영은 자신의 첫 연출 데뷔작에 대한 후배들의 부담이 가장 부담이었다. 혹시라도 대선배인 자신의 부탁에 마지못해 출연하는 것이면 ‘거절’을 해주는 게 예의라고 전했다고. 조진웅은 절대 그럴 생각이 없었단다. 오히려 그는 인터뷰 내내 ‘아직도 진영 선배가 진짜로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는지 의문이다’는 농담을 하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당연히 농담이고, 그 농담은 이 영화의 탄탄함과 완성도 그리고 배우 출신답지 않은 구성에 혀를 내둘렀단 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일 터. 내로라하는 감독들과 함께 작업하며 충무로에서 연기 잘하고 의리파로 소문난 조진웅은 스케줄을 조정하면서까지 ‘사라진 시간’ 출연을 강행했다. 물론 다른 작품에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조정을 하면서 이 영화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배우 조진웅.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가장 먼저 그에게 묻고 싶었던 것은 이 영화 속 ‘진짜’와 ‘가짜’의 경계였다. 그는 영화에서 형구란 인물을 연기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혼동하며 살아갔다. 형구에게 그 시간은 존재했던 것인지, 아니면 존재하지 않던 환상인지. 그의 상상 속에 있던 인물로 보이는 수혁(배수빈)은 존재했던 것인지. 그냥 처음부터 모든 게 전부다 가짜인지. 조진웅의 해석이 궁금했다.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저도 몰라요(웃음). 아니 영화 보셨으니 말씀 드리지만, ‘사라진 시간’은 이해를 하면 안 되는 작업이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모호함 투성이잖아요. 이건 방법은 딱 하나뿐이더라고요. 절 그 안에 던져 버리는 것뿐이었죠. 기존 연기 패턴으론 설명이 안되고 접근도 안됐어요. 출연 전에 분명히 시나리오도 보고 내용도 다 알고 있는데도 모르겠더라고요. 근데 영화를 보니 그 이상함이 결코 이상하게 다가오진 않아서 다행이었죠.”
그 ‘이상함’ 안에서 다시 질문했다. 형구와 수혁(배수빈) 두 사람 가운데 진짜는 무엇인지. 조진웅은 이 영화의 이미지를 ‘형이상학적’이라고 표현했다. 정진영 감독 역시 이 영화의 전개를 ‘틀에 얽매이지 않은 방식’이라고 전했다. 답을 주는 영화가 아니기에 답은 이 영화를 어떤 식으로든 소화하는 사람의 몫이었다. 이 영화가 가장 가까웠던 조진웅의 더 나아간 생각이 궁금했다.
배우 조진웅.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아직 영화를 보시지 않은 분들을 위해서 최소한의 필터링을 하고 대답을 하죠(웃음). 형구가 스스로 자신이 선생님이라고 인정하고 체념하는 순간이 있었잖아요. 그 순간이 너무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들 그런 순간이 있잖아요.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무조건 와요. 그런 순간이 오고 나면 서럽고 아프죠. 그 순간에서 형구도 그랬지 않았을까요. 이거 제 대답입니다(웃음).”
이 영화에 대한 평단의 해석은 배우 정진영과 감독 정진영의 간극이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감독의 꿈을 한 켠에 접어 두고 배우로서만 살아온 삶이었다. 배우 조진웅도 연출을 준비하고 있다. 단편 영화다. 장편과 단편의 질적 차이를 논하자면 얘기 자체가 성립이 안되기에 논외 대상이라고 제쳐두자. 그도 당연히 배우였기에 이 시나리오를 쓴 감독 정진영의 내면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고.
“우선 처음 시나리오를 받은 뒤 다 읽고 나서 연락을 드렸죠. 제 첫 마디가 ‘이거 직접 쓰신 거 맞냐’였어요. 당연히 웃으시면서 ‘이런 얘기를 그럼 누가 쓰겠냐’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주연 배우이니 제 의견에 따라서 수정하실 부분은 수정하신다고 하셔서 ‘내가 나오는 부분은 토씨 하나 고치지 마시라’라고 했죠. 이해는 안되지만 공감은 되죠. 당연히 감독이 꿈인데 33년을 배우로 살았고, 배우만 시키는데 그 속이 오죽했겠습니까. 헷갈리겠죠.”
배우 조진웅.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자체가 모호하고 피상적인 이미지로만 가득하기에 질문도 계속 이해와 오해 공감과 비공감의 경계선을 넘나들 수 밖에 없었다. 이런 형식의 영화는 그 이전에는 전혀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나오긴 힘들 듯싶다. 그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한 감독 정진영도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배우 조진웅에겐 그럼 다른 장르 영화와 이 영화가 달랐던 가장 큰 부분이 궁금했다.
“제일 큰 다른 점은 영화를 찍는 것 같지가 않았어요. 이 영화에서 배우가 연기를 하는 패턴이 다분히 연극적이잖아요. 카메라가 어디쯤 있겠지, 그럼 난 이렇게 해야지. 연기의 속도와 동선 등을 계산을 해야 하는데. 이 영화는 그게 필요가 없어요. 형구가 여기에서 저기로 걷는다? 왜 걷는거지? 지금 어딜 가는 거겠지. 다른 계산? 동선? 우리가 살면서 어딜 걸어갈 때 계산을 하나요? 그거에요. 그냥 그 안에서 아무 계산 없이 살았죠.”
조진웅도 꽤 오래 전부터 준비를 하고 있는 단편 영화를 작업 중이다. 아직 어떤 플랫폼으로 어떻게 선을 보일지는 고민 중이다. 그래서 이번 영화를 작업하면서 배우로서의 고민도 있었지만 감독으로서의 고민도 강했고, 선배 정진영의 고민도 너무 이해가 됐다. 동질감을 넘어서 어떤 큰 공감대가 형성이 된 듯싶었다. 작업 중인 단편이 끝나면 감독 조진웅의 모습을 기대해도 될까 싶었다.
배우 조진웅.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우선은 ‘사라진 시간’ 같은 영화는 난 못 만들 것 같아요(웃음). 성격이 너무 급해서. 하하하. 우선 작업을 해보니 프리프로덕션(사전 작업)이 길면 길수록 완벽한 영화가 나오는 것 같아요. ‘사라진 시간’도 선배 입장에선 꽤 오래 전부터 준비를 해오셨으니 이런 결과물이 나온 것이고. 이번 영화로 정말 많이 배웠어요. 연출에 대한 생각, 영화에 대한 생각 등등. 우선은 이 영화가 정말 맛있는 음식처럼 소개가 됐으면 해요. 맛있는 음식 먹으면 ‘누구랑 같이 먹어야지’ 싶잖아요. 이 영화를 보시면 ‘친한 누구랑 같이 와서 또 봐야지’ 싶은 그런 느낌. 보셨는데 그런 생각 들지 않나요(웃음)”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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