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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어떤 것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2020-06-09 05:50:15 2020-06-09 05:50:15
과학계에는 영원한 논쟁거리가 하나 있다. 인간의 성격과 행동양식을 결정하는 요인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진화론으로 무장한 유전학자들은 인간의 성정, 특히 범죄성향을 규정하는 요인으로 이른바 ‘나쁜 유전자’를 들고 있다.
 
반면 사회과학자들은 인간이 자라 온 환경, 특히 교육에 더 많은 무게를 둔다. 진실은 이 두 가지 견해 가운데 어디쯤 있을 것이라 보이지만, 그 어느 한쪽만을 신봉하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 그것은 차별과 혐오, 맹신과 같은 부작용을 낳기 때문이다.
 
나흘 간격으로 여성 2명을 참혹하게 살해한 뒤 시체를 유기했던 혐의로 붙잡힌 31살의 최신종. 그의 잔인한 폭력성은 진작부터 전조를 보였다. 그는 23살 무렵이던 지난 2012년 여자친구를 흉기로 협박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어 집행유예 기간이었던 3년 뒤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훔쳐 징역 6개월을 선고받았지만, 다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 따르면 그는 체포된 이후에도 일부 혐의를 부인하거나, “약을 먹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만일 그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았다면, 그에 의해 숨진, 무고한 두 생명을 살릴 수 있지 않았냐고.
 
하지만 우리 사법 체계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초범이어서, 반성문을 제출해서, 피해자와 합의해서, 심신이 미약해서 등등 갖가지 감형 사유로 종종 대중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판결이 나온다. 진정한 반성과 사죄가 없는데 용서가 있을 수 없는 것처럼, 합당한 단죄와 참회 없이 교화가 있을 수 있을까.
 
이것은 우리가 과거 수십 년간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목도한 일이다. 그들은 군국주의 시대를 제대로 반성한 적도, 단죄한 적도 없다. 나치 잔당들을 끝까지 추적해 소탕해 온 독일의 노력과는 상반된 길을 걸었다. 그것은 그 나라 지도자의 역사의식 부재와 망상, 야욕이 빚어낸 결과였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아베 신조 현 총리다. 수년 간 일본 내각을 이끌어 온 그에게 있어 필생의 과업은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의 개헌이다. 2차세계대전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를 외할아버지로 둔 그는 일본 우익의 본산인 야마구치 현에서 나고 자랐다.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 등 한반도 정벌을 주장했던 이들 대부분이 이 지역 출신이다.
 
아베 총리는 과학자들이 말하는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 모두를 갖춘 셈이다. 그 요인들의 결과는 다름 아닌 ‘반한 정서’다. 그는 정치적 위기 때마다 한국 때리기로 내부 여론을 결집하려 했다. 그는 반한 정서에 도취된 나머지 이따금 이성을 잃은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수출규제 카드가 대표적이다. 그 카드는 자충수가 되어 돌아가고 있다.
 
더불어 아베 내각 지지도는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달 5~7일 조사에 따르면 2012년 재집권 이후 최저치인 38%를 기록했다. 각종 정치 스캔들과 코로나 대응에서의 지도력 부재가 원인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의 뒤를 이을 일본 정치 지도자들 또한 극우 성향이라는 점이다. 최근 코로나 사태를 틈타 일본 내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요시무라 히로후미 오사카부 지사와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 지사 두 인물 모두 혐한을 지지기반으로 삼고 있다. 그러니까 일본은 과거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아무리 선의를 갖고 대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개과천선’은 피해자들에 대한 가해자의 진정한 사죄와 참회에서 출발한다. 그 첫 단추를 제대로 꿰지 않으면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평생 고통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제라도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유효적절한 사회적, 국가적 대응전략이 절실한 것이다.   
  
이승형 산업부 에디터 sean120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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