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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칼럼)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2020-06-04 10:07:27 2020-06-10 17:12:36
최용민 산업2부 기자
[뉴스토마토 최용민 기자] 일반적으로 국회에서 만들어지는 법안 중 약자를 보호하는 법안은 대부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이는 공동체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라이트급과 헤비급 권투선수가 같은 조건에서 싸우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끔 약자를 보호한다는 ‘절대 명분’에 사로 잡혀 바뀐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제도 및 법안도 상황이 바뀌면 바뀐 상황에 적응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강자도 어느 순간 약자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유통업계 이슈로 떠오른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이런 경우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유통산업발전법 중 전통상업보존구역 관련 규정 존속 기한을 올해 11월 23일에서 2023년 11월 23로 연장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법안 개정에 착수했다. 전통시장 경계 1km 이내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 출점 제한 규제를 3년 더 연장하겠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개정안을 다음 달 10일까지 입법예고한 후 7월 법제처 심사를 거쳐 21대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유통업계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규제 기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대형마트 등의 출점 제한 범위를 1km 이내에서 20km로 확대하는 내용의 개정안과 대형마트 개설 절차를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변경하는 법안을 추진한 바 있다. 20대 국회에서 폐기됐지만, 정부와 여당의 대형마트 규제 의지가 강해 21대 국회에서 다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출점 규제 뿐 아니라 영업시간 제한 등 대형마트에 대한 현 정부의 규제 기조는 강하다.
 
문제는 유통업계에 대한 전반적인 규제가 과거 대형마트 등이 급격히 성장하던 시기에 나온 법안이라는 점이다. 현재 유통업계 주도권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간지 오래고,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오프라인 매장은 더욱 설자리를 잃고 있다.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형 상품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생필품을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시대가 왔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가 아니어도 오래전부터 온라인이 유통시장을 장악할 것으로 전망해 왔다.
 
특히 대형마트인 이마트와 홈플러스 등은 현재 매장을 늘리기보다 오히려 폐점하고 있다. 대형마트 근로자들은 실직 위기에 처한 상태다. 롯데그룹은 오프라인 매장 철수에 본격 착수하고, 통합 온라인 쇼핑몰 ‘롯데온’에 그룹 사활을 걸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출점 제한 등 유통업계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이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있는지 의구심이 높다. 약자를 보호한다는 명분 하나에 매달려 급격히 변하는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규제를 떠나 이제는 대형마트의 존폐 위기를 걱정해야 된다는 말도 나온다.
 
더욱이 대형마트를 규제한다고 전통시장으로 수요가 몰리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경험으로 확인했다. 온라인을 이용하거나, 대형마트에서 몰아서 구매한다. 전통시장 등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대형마트를 규제한다는 논리는 논거가 희박해졌다는 말이다.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해서는 전통시장 이용에 대한 혜택을 늘리는 등 포지티브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말이 있다. 과거 대형마트가 급성장하던 시기에 만들어진 규제는 바뀐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 맞다.
 
최용민 기자 yongmin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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