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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위안부 할머니 정쟁 도구 삼지 말아야
2020-05-17 06:00:00 2020-05-21 17:04:50
"우리는 아무런 죄가 없다. 너무 억울하다. 일본은 당당하면 재판에 나와야 한다."
 
할머니들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울먹였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지 3년째, 처음 열린 변론기일에서였다. 일본국 대리인이 앉아있어야 할 피고석은 덩그러니 비어있었다. 죽기를 기다리지만 풀어야할 역사가 남아있기 때문에 아픈 몸을 이끌고 이곳에 나왔다는 할머니들의 말에 법정은 흐느끼는 소리로 가득 찼다.
 
역사책과 영화로만 접했던 할머니들의 사연을 직접 들은 그날은 상당한 충격으로 남았다. 아프고 처절한 삶이었다. 여생을 편안하게 지내도 위로받지 못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당신들이 살아있는 역사의 증인이었기에 더욱 치열하게 세상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최근 국내에서 할머니들을 아프게 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이용수 할머니가 정의기억연대(정의연·정대협 후신)와 이사장으로 일한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당선인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서다. 정의연이 수요 집회 등을 통해 모집한 성금이 할머니들을 위해 제대로 사용되지 않았고 윤 당선인은 할머니들을 위한 기부금을 받는 과정에서 자신 명의의 개인 계좌를 사용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더욱 안타까운 이 문제가 지나치게 정쟁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야당에서는 '수요시위는 없애야 한다', '정의연을 해체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여당에서도 '보수언론과 미래통합당이 만든 모략극', '조국 전 법무장관이 생각나는 아침', '친일세력 공작'이라는 강한 표현이 부딪친다.
 
물론 이번 사건이 30년 동안 할머니들을 위해 인권운동을 전개해 온 정의연과 활동가들에 대한 가치 폄하로 흘러서는 안 된다. 생업도 잊은 채 지속적으로 일본국에 문제를 제기해 전 세계에 일본 만행을 알린 공이 작지 않다.
 
하지만 보수와 진보가 할머니들을 앞세워 대립하는 현 사태는 심히 우려스럽다. 일본 일부 세력들은 이번 기회로 위안부 진상규명의 목소리가 잦아들 것을 기대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의혹은 투명하게 밝히고 문제가 있다면 재발되지 않도록 보완하며 투쟁은 지속하면 된다. 피고인석에 설 이는 오직 일본국이다. 할머니들을 다시 희생양 삼지 말자.
 
왕해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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