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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70%라는 기준이 굳이 필요한가
2020-04-16 06:00:00 2020-04-16 06:00:00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일찍이 본 적이 없었던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국민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금액은 자치단체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래도 구성원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주면서 동시에 간접적으로 지역마다 소상공인의 매출을 늘려주겠다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심리적으로 활력을 되찾아주겠다는 의도가 들어있을 것이다. 1석2조 이상의 효과를 기대하는 셈이다.
 
이 방안이 처음 거론되기 시작했을 때에는 '포퓰리즘' 혹은 '총선용 선심공세'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악화, 특히 소상공인이 극심한 어려움에 처했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졌다. 이런 명백한 현실 앞에 반대론과 비판도 힘을 잃고 말았다. 게다가 미국 일본 등 다른 나라도 비슷한 개념의 지원금을 국민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니 보수야당도 찬성하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다소의 우여곡절을 거쳐 마침내 결론이 내려졌다. '소득하위 70%'의 가구에 가구당 최대 100만원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소득하위 70%로 자를 때 무엇을 근거로 나눌지는 아직 기준이 정해지지 않았다. 기준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고, 이를 둘러싼 갑론을박도 쉽사리 잦아들지 않을 듯하다.
 
더욱 근본적인 의문도 생겨난다. 굳이 '70%'를 기준으로 잘라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다시 말해 원칙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반론이 거세다. 이 때문에 정부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사실 코로나19로 인한 피해를 대부분의 국민이 겪고 있다. 그런데 국민을 70%라는 기준 하나로 나눈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해 보인다.
 
더욱이 70%라는 기준도 애매하다. 이를테면 통계청이 실시하는 가계소득동향 조사는 1분위에서 5분위까지 구분한다. 백분율로 하면 20%에서 20%씩 쪼개서 나누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구분에서 60%와 80%는 있어도 70%라는 것은 없다. 한마디로 70%라는 기준은 생소하다는 뜻이다.
 
결국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면서 70%라는 기준을 사실상 새로 만드는 셈이다. 필요에 따라 새로운 기준을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 아무래도 복잡하다.
 
70% 언저리에 있는 국민들 가운데는 운명의 변전에 따라 들락날락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어떤 기준에 따라서는 70% 안에 들어가는데, 또 다른 기준으로 보면 그 바깥에 놓이게 된다. 지난해에는 70% 범위 안팎에 있었지만, 지금은 그 바깥에 서게 된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인생이 끊임없는 변화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작년과 지금 사이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운명의 변전이 그 어느 때보다 격심하지 아니한가!
 
따라서 이 기준에 따라 5000만이 넘는 국민을 구분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나누는 과정에서 치르게 될 행정적 비용도 작지 않을 것이다.
 
나눈 결과를 모든 국민이 수용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억울하게 탈락했다고 불만을 표시하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마디로 혼선이 큰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기준이 채택된 것은 정치적 판단이 삽입됐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당장 생활이 어려워진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면서도 반대론자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지 않으려고 고안한 기준이라는 것이다. 명분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설정된 기준인 셈이다.
 
반대로 이런 작위적인 기준을 적용하지 말고 모든 국민에게 주되 특히 소득이 높은 사람들로부터는 환수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그래야 효과도 크다는 것이다. 일처리가 훨씬 간명하고 행정비용이 적게 든다는 장점도 있다.
 
한국 정부가 모처럼 국민을 위해 큰 결단을 했다. 대단히 유효하고 시의적절한 정책임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실제 운영과 집행과정에서 빛이 바랠 우려도 작지 않다. 주로 70%라는 인위적인 기준 때문이다. 모든 좋은 일에는 얼룩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경우의 얼룩은 자연스런 것도 아니고 필연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정부 결단이 온전히 가치를 인정받고 효과를 발휘하려면 70%라는 기준을 고집하지 않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수십억원의 연봉을 받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혜택받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이에 대해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 정부와 국회 혹은 여러 정파 사이의 건설적인 논의를 기대한다.
 
차기태 언론인 (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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