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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몰린 ‘사냥의 시간’, 국제 소송 ‘희생양’ 될까
투자 배급사 vs 해외 판매사…첨예한 입장 대립
2020-03-23 14:50:54 2020-03-23 17:06:32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영화 ‘사냥의 시간’이 대규모 국제 소송으로도 번질 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 영화의 투자 배급사인 리틀빅픽쳐스가 23일 극장 개봉이 아닌 넷플리스 공개를 결정했다. 국내 영화로선 최초다.넷플릭스는 온라인 기반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다. ‘사냥의 시간’은 당초 2월 26일 국내 개봉 예정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여파와 WHO의 팬데믹 선언까지 나오면서 사실상 국내 개봉이 불가능해졌다. 국내 중소 투자배급사인 리틀빅픽쳐스 입장에선 추가 P&A(홍보 마케팅) 비용 투입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미 투입된 비용도 대부분 소진한 상태다. 개봉일을 다시 선정하고 추가 P&A비용 집행을 할 여력이 없다. 결국 고육지책으로 넷플릭스 공개를 택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올해 2월 베를린영화제 초청을 포함해 해외 세일즈를 담당한 회사 ‘콘텐츠 판다’와의 계약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양측의 계약 문제도 문제이지만 ‘사냥의 시간’을 수입한 해외 영화사들과의 소송 문제까지 벌어질 불씨가 된 셈이다.
 
리틀빅픽처스 “그냥 우리보고 죽으란 것이냐”
 
리틀빅픽쳐스는 대기업 기반의 국내 메이저 투자 배급사가 아닌 독립법인의 중소 투자배급사다. 대규모 자금과 배급라인을 갖고 움직이는 메이저 투자 배급사와는 조금 다른 기업이다. ‘사냥의 시간’은 순 제작비는 90억원 수준이다. P&A 비용은 25억원 가량 들어 총 제작비가 115억원 가량이었다. 국내 손익 분기점은 대략 300만 수준이다. 리틀빅픽쳐스 규모의 투자 배급사 입장에선 블록버스터 규모다.
 
권지원 리틀빅픽쳐스 대표는 23일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사면초가에 몰린 상황이나 다름 없다”면서 “개봉이 한 차례 미뤄지고 다시 개봉일을 잡는다고 해도 추가적으로 P&A비용을 투입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고 호소했다. 추가적으로 무리해 개봉 일을 잡고 P&A비용을 투입한다고 해도 다른 경쟁작과 시장 상황을 고려하면 사실상 대안이 없었다고.
 
권 대표는 “넷플릭스 공개를 하면 해외 판매분에 대한 문제가 발생된다. 그래서 우리도 해외 세일즈를 진행한 ‘콘텐츠 판다’ 측에 계약 해지를 요청했다”면서 “여러 차례 만났고 요청했다. 하지만 ‘절대 불가’ 답변만 들었다. 콘텐츠 판다는 우리보다 대기업이다. 절대 불가는 우리보고 죽으라는 말로 밖에는 달리 해석이 안됐다”고 안타까워했다. 리틀릭픽쳐스는 천재지변에 가까운 이번 ‘코로나19’ 상황에 대한 계약 해지에 위약금은 물론 해외 선구입 업체에게 일일이 금액 보상을 약속했다고. 하지만 콘텐츠 판다 측이 이를 일방적으로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넷플릭스는 글로벌 OTT업체다. 넷플릭스에서 공개가 될 경우 영화에 대한 모든 권리가 귀속이 되는 게 일반적이다. 결과적으로 콘텐츠 판다가 해외에 선판매한 분량은 전량 계약 효력이 무효가 되는 셈이다. 현재 영화의 판권을 소유한 리틀빅픽쳐스의 직접 계약이 앞서게 되는 셈이다.
 
권 대표는 “일방적으로 콘텐츠 판다에 계약 해지를 요구한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현재 시장 상황을 고려해 달라고 읍소했다”면서 “회사 존폐 여부가 달려 있다. ‘콘텐츠 판다’에 영화의 판권을 넘긴 게 아닌 판매에 대한 위탁을 한 것 아닌가. 법리적 검토를 하고 있지만 일방적 계약 해지란 주장은 받아 들이기 힘들다. 법적으로 다툼을 하겠다면 우리도 어쩔 수 없다. 이렇게까지 불가를 외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콘텐츠 판다 “상의? 일방적 통보였다”
 
콘텐츠 판다는 입장이 달랐다. 리틀빅픽쳐스 측으로부터 일방적인 내용증명 형태의 통보만 받았다는 입장이다.
 
23일 콘텐츠 판다 측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에 “분명히 다른 방법이나 최소한의 상도덕을 지키는 선에서 협의가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니냐”라면서 “시장 상황이 최악이고 서로 돕고 가야 할 것도 맞지만 이런 통보는 우리에게 모든 피해를 떠안으란 것이나 다름 없다”고 황당해 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리틀빅픽쳐스는 자신들과 상의 없이 자신들이 해외 세일즈를 통해 관계를 맺은 해외 영화사들에게 일방적으로 계약 해지 통보 메일을 보냈다. 문제는 해외 영화사들 역시 이번 계약 해지에 단 한 곳도 동의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
 
이 관계자는 “판권을 구매한 해외 영화사들 대부분이 소송 가능성까지 제기하고 있다”면서 “해외 세일즈를 전담해 온 우리로선 신뢰와 이미지 타격이 상당할 수 밖에 없다. 우리 역시 존폐 여부가 달린 일이다”고 강하게 말했다. 이번 문제로 인해 콘텐츠 판다 쪽에 상당한 불만과 문제덤을 제기하고 있는 해외 영화사들의 의견이 쏟아지는 것도 사실이라고.
 
이 관계자는 “한국영화의 국제적 위상을 위해 해외 시장에서 쌓아온 신뢰와 신의가 한 순간에 무너지게 생겼다”면서 “이번 사안은 ‘콘텐츠 판다’의 심각한 이미지 타격도 문제이지만 해외 시장에서 한국영화의 신뢰에도 타격을 줄 수 밖에 없는 사안이다. 절대 물러설 수 없다. 법적 조치를 고려 중이다”고 맞대응을 예고했다.
 
현재 ‘사냥의 시간’은 전 세계 20개국에 선판매가 됐으며, 베를린 영화제 이후 추가적으로 10여개여 개 선판매가 이뤄져 총 30여개국에서 개봉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넷플릭스 공개 결정으로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기생충’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오스카 작품상 이후 전 세계 영화시장에 불고 있는 K-무비 신드롬이 이번 논란으로 어떤 타격을 받을 지 걱정스럽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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