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과연 누가 선진국에 사는가
입력 : 2020-03-12 05:50:19 수정 : 2020-03-12 05:50:19
최근 호주 시드니의 한 대형마트에서 3명의 여인들이 격렬하게 몸싸움을 벌이는 동영상을 보았다. 이들이 다툰 이유는 ‘휴지 사재기’ 때문이었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웃지 못할 촌극이었다. 사재기 현상은 비단 호주뿐만이 아니다. 소위 선진국이라 하는 미국, 일본, 유럽 국가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사재기를 보기 힘들다. 우리 국민들은 놀랍도록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 우리가 다른 나라 국민들과 다른 점을 꼽으라면 '신뢰'의 여부다. 국가시스템에 대한 '신뢰' 말이다. 그들에겐 없었고, 우리에겐 있었다.
 
특히 미국과 일본을 보면 위기에 대처하는 지도자의 인식과 판단이 국가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보여준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8일(현지시각) 미국 보건당국 전문가들이 코로나19에 대한 대국민 경고와 적극적인 조치를 일찍부터 하려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금융시장 혼란 등을 내세워 이를 막았다고 보도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애써 낮추려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코로나19 환자가 무더기로 나온 미국 크루즈선 '그랜드 프린세스'호 승객들의 하선을 금지하기도 했다. 그는 “나는 개인적으로 그들을 (크루즈선에) 머물게 하고 싶다. 배 한 척 때문에 (감염) 숫자를 두 배로 할 필요는 없지 않으냐”고 서슴없이 말했다. 이런 언행은 국민의 안녕보다는 금융시장 안정을 바라는 월가 부자들의 이해를 대변한 결과다.
 
‘코로나19 크루즈’는 일본에서도 등장했다. 지난달 초 일본 요코하마 항에 정박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승객들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는 이유로 아베 정부에 의해 무려 28일동안 배 안에 갇혀 있었다. 비좁은 배에 있는 동안 승객과 승무원 3711명 가운데 무려 18.8%인 696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이들은 국가에 의해 ‘감염을 당한 것’이다. 이 같은 아베 정권의 비인간적인 조치는 ‘냄새나는 것은 덮어서’ 다가오는 올림픽을 망치지 않고, 장기집권을 이어가겠다는 야욕에서 비롯됐다. 
 
미국과 일본에는 이렇듯 '지도자 리스크'가 분명 존재한다. 그 때문에 두 나라의 국가시스템이 우리나라의 그것만큼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증명됐다. 단지 코로나19 검사량이나 속도, 치사율을 비교하자는 것이 아니다. 물론 세계 곳곳에서는 우리나라의 방역관리체계와 진단기술, 정보공개의 투명성 등을 향해 찬사를 보내고 있다. 각국 언론과 보건전문가들은 “한국처럼 하라”며 자국 정부를 질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과연 미국과 일본이 능력이 없어서 우리처럼 하지 못했을까. 그들은 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하지 '않은 것'이다. 확진자가 늘어나 올림픽에 해가 갈까 두려워 하지 않았고, 주가가 떨어질까 걱정돼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미국 증시는 폭락했고, 도쿄올림픽은 취소설마저 돌고 있다.
 
선진국은 비단 경제력과 군사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위기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한 화합과 ‘시민정신’,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부의 대응시스템, 기업의 동참의식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선진국으로서의 면모가 드러난다. 우리는 그것을 보여줬다. 우리는 선진국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가질 자격이 있다. 물론 오늘도 위기를 정치적 기회로 활용하기 바쁜 몇몇 정치인들과 언론인들만 빼면 말이다.
이승형 산업1부장 sean120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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