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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우리와 공존하는 '괴물'들
2020-03-09 06:00:00 2020-03-09 06:00:00
문득 영화 대사 하나가 떠오른다. “우리, 사람 되는 거 어렵지만, 괴물은 되지 맙시다.” 
 
주인공이 이미 괴물이 되었다고 자책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 사람이 될지 괴물이 될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 경험은 누구나 있었을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나라에 커다란 재난이 닥친 경우에 누군가는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는 반면 누군가는 평소와 다르게 ‘괴물’로서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현재 악몽으로 다가온 코로나19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체 확진환자 수의 70%를 넘는 환자들이 있는 대구를 지원하기 위해 가장 먼저 달려온 지역은 광주였다. 광주는 지난 달 마스크 4만개를 대구에 지원하는 것을 시작으로 급기야는 병상이 부족한 대구를 위해 대구 확진환자들을 광주에서 치료하겠다고 선언했다. 광주시민들도 구급차를 타고 온 대구 확진환자들의 쾌유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달빛 동맹’의 아름다운 실천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방호복을 입고 땀을 흘려가며 환자들을 진료하는 수많은 의료진들과 일손이 부족함에도 빠짐없이 환자를 나르는 119 대원들, 나날이 수척해져가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을 필두로 한 방역관계자들, 도시전체가 고립됐지만 굉장한 인내심을 발휘하며 견뎌내는 대구 시민들, 마스크 공급량을 맞추기 위해 밤낮으로 생산하고 있는 업체와 노동자들, 폭증한 배달 량에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배달해주는 택배기사들, 손님이 끊긴 자영업자들을 돕기 위해 임료감면에 나선 착한 건물주 등 대다수 국민들이 재난을 극복하고자 한 마음으로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며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다. 
 
반면 이때다 싶어 ‘괴물’로서 본색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난 경우도 있다. 
 
우선 “대구봉쇄”를 주창한 정치인이 있다. 그것도 집권당 대변인 자격에서 말이다. 헌법상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고통 받고 있는 지역의 국민을 대상으로 ‘봉쇄’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믿겨지지가 않는다. SNS에 대구 확진 환자와 사망자 숫자가 강조된 전국 ‘코로나19 지역별 현황’과 ‘6·13 지방선거 광역단체장’ 선거 결과 그래픽을 이어 붙인 사진을 올리고 “투표 잘합시다.”라는 말을 남긴 유명 소설가도 잊어서는 안 된다. 고통 받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공감대도 없으면서 그동안 소설을 써온 셈이다. 그의 작품 중에는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다. 지금 이 순간 그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는지 묻고 싶다.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서 "코로나 사태는 대구 사태이자 신천지 사태"라고 말한 유명 방송인도 있다. 코로나 진원지가 중국 우한인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부도 우한이라는 지역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피해지역인 대구를 인용하며 사태라는 막말을 방송에서 한 것이다. 깨끗한 환경에서 일하거나 건강한 분들은 마스크 사용을 자제해 줘야 한다면서 서양은 우리와 다르다고 말한 청와대 고위공직자도 마찬가지다. 지난달부터 정부는 마스크와 손 씻기를 강조했다. 국민은 단지 정부의 말을 신뢰하여 광 클릭한 마스크주문을 몇 번이나 취소당하고 감염위험에도 불구하고 다닥다닥 붙어 긴 줄을 서며 어렵게 마스크를 구하고 있는데, 이제 와서 마스크공급이 부족한 것을 이유로 국민을 미개인 취급하고 있다. 이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고통 받고 있는 국민들에게 커다란 상처가 되는 것을 이들이 아는지 모르겠다. 
 
우리 현대사에는 많은 아픔이 남겨져 있다. 북한의 남침으로 인한 6. 25 전쟁부터 시작해서 1980년 5월 광주와 같이 무수히 많은 국민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겼다. 그때마다 누군가는 사람으로서 존엄성을 지켜가며 도왔고, 누군가는 괴물이 되어 무수히 많은 사람을 해쳤다. 머지않아 우리는 코로나를 극복할 것이다. 그때까지 사람이 되지는 못할망정 더 이상 괴물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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