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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금융감독원의 명운을 걸라
2020-02-18 06:00:00 2020-02-18 06:00:00
지난해 환매가 중단된 라임자산운용의 검사 결과가 나왔다. 무역금융펀드의 경우 라임자산운용과 신한금융투자가 부실 발생을 은폐하고 계속 판매했다는 혐의가 특히 눈길을 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사기펀드'라는 의혹제기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게다가 라임자산운용 일부 임직원은 개인 펀드를 만들어 직무상 얻은 정보를 이용해 수익을 냈다고 한다.
 
환매가 연기된 펀드의 규모는 1조6679억원에 이른다. 우리은행(3577억원)과 신한금융투자(3248억원), 신한은행(2769억원) 등 19개 금융사의 판매 규모가 전체의 64%를 차지했다.
 
우리은행은 이번 사건만이 아니다. DLF사건을 비롯해 여러 사건에 꼬박꼬박 명함을 내민다. 신한금융도 이번에는 한몫했다. 신한금융투자와 신한은행을 합쳐 6000억원에 육박한다.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독일 헤리티지 파생결합증권(DLS)에도 폭발성이 잠재돼 있다. 이 역시 신한금융투자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전해진다.
   
한마디로 한국의 금융계가 집단적인 '도덕마비'에 빠진 듯하다. 고객을 꼬드겨 무리하게 이익을 내는 것을 너무나 쉽게 여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체질화된 악덕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 앞으로 또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모른다. 마치 땅속 깊이 숨어 있던 용암이 불쑥 튀어나와 지진이나 화산을 일으키듯이 말이다. 때문에 요즘 한국의 금융사들을 보면 무섭기까지 하다.
 
소비자를 울린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데는 감독당국에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감독당국이 책무를 다했다면 금융사들이 이렇듯 집단적인 도덕마비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최근 다소 정신을 차린 듯하다. DLF 사건의 중심에 섰던 우리은행에 190억원의 과징금을 매기고 하나은행에도 40억원을 부과하기로 한 것이다. 지금까지 은행에 대한 과징금 규모로는 가장 크다. 아울러 두 은행 최고경영진을 문책 경고했다. 당연한 조치다.
 
금융사들이 새로운 선진금융기법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과거 다뤄보지 않은 금융상품도 취급해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기본원리와 원칙은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 신뢰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객을 소중히 하고 고객의 재산을 지키는 것을 우선으로 할 때 신뢰는 쌓인다. 쌓인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 이익이 되는 방법을 찾아내야 고객도 늘어난다. 그것이 금융 경쟁력의 핵심 원리다.
 
그런데 한국 금융사에서 그런 신뢰를 찾아보기 어렵다. 어떻게든 고객의 호주머니를 조금이라도 더 '솜씨좋게' 털어낼지 경쟁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렇게 얻은 이익은 한때의 거품이요 뜬구름일 뿐이다. 일시적으로 통할 수는 있지만,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금융사 종사자들에게도 낭패감과 수치심만 남겨놓는다.
 
불미스러운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고 무거운 징계를 받으면 최고경영자로서는 자리를 지키기도 낯뜨거울 법하다. 그럼에도 우리은행의 손태승 회장은 연임하는 데 성공했고, 행장 자리만 내놨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도 마찬가지로 연임했다.
 
모두가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없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이 자리를 버틴다면 금융당국도 사실 어쩌지 못한다. 대신 그렇게 버티면서 고객들의 따가운 시선을 한 몸으로 감당할 각오는 해야 할 줄 안다.
 
금융감독원은 곧 라임자산운용 펀드 불완전판매 문제에 대한 현장 조사에 착수한다. 아울러 투자원금을 최대 100% 돌려주는 분쟁조정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작년 하반기부터 사건 뒤처리하느라 편할 날이 없는 듯하다.
 
그렇지만 그때그때의 사건 처리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유사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이 제시돼야 한다. 소비자가 권익을 우롱당하지 않고 존중받을 수 있도록 금융사의 체질을 바꿔나가야 한다. 여기에 금융감독원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몇몇 금융상품의 시장이 일시적으로 위축될 수도 있다. 실제로 최근 정부가 내놓은 사모펀드 제도개선 대책에 따라 은행과 증권사의 손실이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렇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소비자의 외면을 받아 시장이 스스로 위축될 것이다. 새벽의 여신 에오스의 사랑을 받았기에 너무 오래 살다가 매미가 된 트로이 왕자 티토노스처럼 작아질 것이다. 그러느니 한때의 아픔을 감수하면서 근본적으로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일이다. 금융소비자와 금융사가 함께 발전하기 위해 그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차기태 언론인 (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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