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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정우성이 잡고 싶은 것
“원작과 시나리오 속 ‘태영’, 내 눈에 보인 허점 커 보여”
“’정우성’ 석자 각인된 이미지, 매번 깨고 나가고 싶다”
2020-02-14 00:00:00 2020-02-14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정우성이 변했다. 사실 그는 뭘 해도 외모에 가려서 빛이 바라는 배우였다. ‘잘생겼다’는 단어는 이제 그를 수식하는 찬사가 아니다. 그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하지만 그 외모가 문제였다. 수려한 잘생김은 그의 배우적 재능을 언제나 조금은 평가 절하 시켰다. 연기력 혹은 배우적 재능에서 손가락질을 받고 문제점을 지적 받아온 것이 아니다. 그저 뛰어난 소화력과 캐릭터를 흡수하는 능력은 이미 충무로에서 논외 대상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그의 캐릭터는 배역이 아닌 ‘정우성’을 보이게 했다. ‘이번엔 정우성이 뭘 연기하고 있구나’로 보이는 단점. 그게 정우성의 문제였다. 그게 연기력의 범주가 아니다. 설명 불가능한 영역의 ‘그것’이 있었다. 그걸 정우성이 깼다. 길고 긴 제목의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그는 지금까지의 정우성이 아닌 그저 ‘태영’이란 인물로만 등장한다. 정우성은 이를 갈지도, 뭘 대차게 준비하지도 않았다. 언제나 그랬듯 똑같았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 ‘정우성’은 없었다.
 
배우 정우성.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언론 시사회 이후 며칠 뒤 서울 삼청동 인근 한 카페에서 정우성을 만났다. 동명의 일본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에서 그는 평택항 출입국 관리 사무소 직원으로 등장한다. 당초 원작과 시나리오에는 좀 더 깊이가 있고 어두운 면이 강한 인물이었다. 평소의 정우성이 그려온 캐릭터들이다. 하지만 이 배역은 정우성의 눈에 전혀 다르게 들어왔다. 모두가 예상치 못한 지점이었다.
 
“우선 전 원작 소설을 안 읽었어요. 조만간 감독님에게 빌려 볼 생각이에요. 국내에선 절판된 소설이거든요. 소설을 먼저 읽고 촬영했다면 선입견이 생길 것 같았어요. 시나리오는 완성된 영화 속 인물의 색깔과 전혀 달랐죠. 글쎄요. 제 눈에는 ‘태영’이란 인물의 허점이 너무 잘 보였어요. 그 부분을 부각시키면 어떨까 싶었죠. 어두운 얘기를 경쾌하게 그리면 오히려 연민이 들지 않을까 싶었죠.”
 
그런 정우성의 해석은 주효했다. 오랜 시간 동안 이 영화를 준비한 감독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정우성의 의견에 결국 흔쾌히 동의했단다. 그렇게 만들어진 ‘태영’은 이 영화 속 핵심인 ‘짐승들’을 관객들에게 각인시키는 데 가장 큰 힘을 전달한다. 정우성은 그렇게 자신을 지우고 완벽하게 캐릭터로 살아나게 됐다. 지금까지의 정우성에 대한 선입견을 완벽하게 지웠다.
 
배우 정우성.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감독님도 사실 좀 놀라셨죠. 본인이 꽤 오랫동안 준비한 시나리오였고 머릿속에 그림을 갖고 계신데 제가 그걸 부셔버린 거잖아요. 죄송했지만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으니. 그리고 물질적인 것에 절박하게 몰린 사람들이 사실 악하지만은 않아요. 절벽에 몰린 사람이 선택한 그것을 꼭 악하게만 봐야 하나. 그런 생각이 이번 영화 속 ‘태영’을 만들어 내게 된 계기죠.”
 
영화 자체가 너무 어둡다 보니 주인공 ‘태영’이 좀 더 가볍게 등장해 환기를 시켜줬다. 그는 첫 촬영 당시의 에피소드를 전했다. 이 영화의 정우성 첫 촬영이 사실은 그의 분량에서 가장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장면이었다. 그 당시 현장을 전하면서 감독의 대범함을 설명했다. 신인 감독이지만 앞으로 눈 여겨 봐야 할 실력파라고 추켜세웠다.
 
“일반 관객들도 그렇고 스태프 그리고 감독님도 그랬겠죠. 정우성이면 어떤 각인된 이미지가 있잖아요. 뭔가 멋있게 나와야 한다는. 그런데 첫 촬영에서 제가 생각한 톤 앤 매너를 선보이니 스태프들도 놀라고 감독님도 놀라셨어요. 그때 보통 감독님들은 ‘우성씨 내 생각에는 그게 아닌데’라고 하세요. 그리고 마음을 닫아 버리죠. 그런데 반대로 김용훈 감독님은 너무 활짝 오픈을 하시더라고요. 너무 감사했죠.”
 
배우 정우성.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사실 그는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에 시나리오의 독특함이 첫 번째였지만 진짜 속마음은 딴 곳에 있었다고. 상대역인 ‘최연희’ 역에 전도연이 캐스팅이 돼 있었기 때문이다. 워낙 많은 배우들이 등장하고 스토리 구성도 상당히 어렵게 나열돼 있었다. 그런데 그 속에 전도연이란 배우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고민한 시간은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단 한 번도 충무로에서 등장하지 않았던 스토리 구성이 눈에 띄었죠. 사실 이게 영화로 될까 싶었으니까요. 너무 생소한 구조였어요. 거기에 데뷔 감독님이라 의구심이 있었던 게 사실이죠. 그런데 전도연씨가 캐스팅이 돼 있었어요. 막연하게 전도연과 한 번 해봤으면 했었는데 기회가 온거죠. 사실 이 쪽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지만 기회가 안되면 만날 수 없거든요. 전도연씨 때문에 선택한 것도 분명히 이유에요.”
 
전도연과 함께 풀어가는 얘기의 구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그 속에 숨쉬는 인물 가운데 착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렇다고 모두가 나쁜 인물도 아니다. 상황 속에서 적당히 나빠지고 또 나빠져 가는 사람들, 즉 짐승들뿐이었다. 그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장점으로 직설적인 면을 꼽았다.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의외로 단순한 면도 많았다고.
 
배우 정우성.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얘기가 정말 복잡하게 얽혀있잖아요. 그런데 잘 살펴보면 돈 가방 하나를 두고 모두가 달려드는 얘기에요. 그리고 그 과정 속에 인물들의 사연이 있고. 그런데 그걸 구구절절 하게 풀지 않았어요. 감독님이 정말 시나리오를 잘 쓰셨어요. 인물과 상황이 너무 명확했죠. 물론 전 조금은 변주를 했지만 그래도 얘기의 전체가 무너지지 않게 짜여 있었어요. 거기에 소모되는 인물이 단 한 명도 없어요. 보는 재미가 굉장히 강하겠다 싶었죠.”
 
모든 인물들이 각각의 얘기를 책임지는 구조다. 그 얘기는 퍼즐처럼 흩어져 있다가 마지막에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그린다. 정우성이 연기한 ‘태영’과 그의 상대역인 전도연이 연기한 ‘최연희’는 사실상 그 모든 퍼즐과 거대한 그림의 중심에 있었다. 두 사람의 호흡이 가장 중요했다. 데뷔 26년 차의 중견 배우이지만 전도연과는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났다.
 
“작품을 통해 내가 이런 배우임을 전도연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나도 전도연이 어떤 배우인지 보고 싶었죠. 좋은 동료의 자세를 서로 확인해볼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이었죠. 경력이 오래되고 각자 자기 세계가 있는 배우들끼리 부딪힐 때는 캐릭터와 캐릭터 간 교감을 이끌어내는 것도 중요해요. 하지만 현장에서 내가 어떤 배우라고 입증해내는 것도 중요해요. 그것도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요소에요. 교감할 수 있어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배우 정우성. 사진/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이번 영화를 통해 정우성은 완벽하게 변했다. 하지만 그 시작은 이전부터 드문드문 보여왔다. 그래서 선입견을 깨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듯싶었다. 전작 ‘증인’의 정우성이 가장 정우성스럽지 않은 모습이라면 모습이었다. 그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변화시키는 방향성을 잡고 가는 듯이 보였다. 물론 예상은 했지만 그는 계획을 하고 무언가를 치밀하게 준비하는 스타일은 아니란다. 며칠 뒤부터 촬영에 들어갈 자신의 첫 번째 연출 데뷔작 ‘보호자’에 대한 준비도 치밀하지만 현장에서 모든 것을 부딪쳐 볼 생각이라고.
 
“제가 그렇게 치밀하게 뭘 계산 하는 타입은 아니에요. 20대부터 규정되는 걸 너무 싫어했어요. 그래서 내 보폭에 맞춰서 걸어왔고요. 절 오랫동안 바라봐온 팬 들이 절 인정해 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관객 분들은 이번 영화의 정우성을 좋다고 볼 수도 있고, ‘아수라’의 정우성, 누구는 ‘증인’ 누구는 ‘신의 한 수’를 선택하실 수도 있잖아요. 전 계속 전작의 정우성을 깨는 시도를 해갈 수 밖에 없는 거죠. 며칠 뒤 ‘보호자’ 촬영이 들어가는 데 연출과 주연을 겸하거든요. 그 현장에서도 또 도전해 봐야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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