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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본능의 내림굿 한 판
동명의 일본 소설 원작, 인물들의 엮이고 엮인 관계 속 사건 추적
인물과 본능 생존 방식 속 ‘먹이사슬’ 구조화…‘최후의 1인 누굴까’
2020-02-05 00:00:01 2020-02-05 00:00: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물고 물린다. 엮이고 엮인다. 걸리고 걸린다. 쫓고 쫓긴다. 도대체 이런 영화가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한국영화가 하향 평준화됐다는 우려가 있다. 되는 영화만 쏟아지는 기획 평준화 현상이 가속되는 요즘이었다. 대박 아니면 쪽박이란 말은 괜한 우려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시간과 속도 그리고 관계와 연결은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든다. 장르 영화가 담고 갈 수 있는 최고의 상찬이다. 먹이 사슬의 구조화가 뚜렷하다. 하지만 그 먹이 사슬은 포식과 포획의 주체가 없다.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한 순간 잡힌다. 내가 잡혔다고 생각한 순간, 또 누군가를 잡아 먹는다.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제목 그대로다. 짐승들만 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정도로 나락으로 떨어진 짐승들뿐이다. 그들 모두 먹이 사슬 꼭대기 선 포식자로 착각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모두에게 잡혀 먹힌다. 누가 누구를 잡아 먹고 또 누가 누구에게 잡혀 먹는지도 모른다. 이 영화, 이 세계. 아수라 지옥이다.
 
 
 
짐승, 여러 마리다. 가장 쎈 짐승? 없다. 모두가 그저 배고픈 짐승일 뿐이다. 먼저 등장하는 짐승은 출입국 관리 사무소 직원 태영(정우성). 사라진 연인 때문에 사채 빚에 시달린다. 사채업자 박사장(정만식)은 태영의 목줄을 쥐고 있다. 돈과 목숨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태영이다. 빚도 갚고 한 몫 단단히 챙길 기회를 벼르는 태영이다. 또 다른 짐승이 등장한다. 중만(배성우)이다. 치매를 앓는 노모(윤여정) 때문에 삶이 고단하다. 하지만 목욕탕 허드렛일을 하면서 묵묵히 현실을 견디고 있다. 노모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아내(진경)에겐 미안함뿐이다. 나이 어린 목욕탕 사장에겐 무시 당하기 일쑤다.
 
우선 중만의 눈에 엄청난 먹이가 포착된다. 목욕탕 옷장을 정리하다 명품 가방을 하나 발견한다. 가방 안에는 5만원 권 돈 다발이 한 가득 들어있다. 이 돈이면 인생 역전이다. 고민하고 고민하지만 물품 보관실에 가방을 모셔 둔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악몽까지 꾼다. 가방이 자신을 부르는 것 같다.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스틸.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또 다른 짐승 태영은 목이 탄다. 사라진 애인 때문에 생긴 빚 때문에 죽을 맛인 태영은 자신의 고교 동창 호구를 잡았다. 그에게서 돈을 뜯어 낼 궁리만 한다. 약속까지 다 잡았다. 박사장 부하이지만 친한 동생이자 먼 친척 붕어(박지환)와 작당모의를 했다. 이제 호구가 그물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오라는 호구는 안 오고 난데 없는 강력계 형사가 등장한다. 자칭 태영의 고교 선배라고 주장한다. 이 형사, 호구를 쫓고 있다. 호구가 사기 범죄에 연루돼 큰 돈을 쥐고 있단 정보를 입수한 형사다.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꼬인 일 앞에 더 꼬이는 상황이 벌어진다. 사라진 애인 연희(전도연)가 등장한다. 연희는 어떤 사건에 연루가 된 것 같다. 알고 보니 연희도 짐승이었다. 연희와 미란(신현빈) 그리고 진태(정가람)도 뒤섞인 지저분한 관계다. 그리고 연희가 태영 앞에 나타났다. 연희를 쫓던 사채업자 박 사장이 다시 등장한다. 그리고 중만이 연루가 된다. 연희와 태영 중만 그리고 박 사장은 채무 관계 정리를 위해 윽박지르고 무릎 꿇고 빌고 거짓말을 하고 진실을 토해내고 뒤통수를 치고 또 배신을 하고. 물고 물리고 쫓고 쫓기게 된다. 도대체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되고 어디서 연결이 됐고, 무엇으로 관계가 맺어졌는지 얽히고설킨 실타래는 꼬이고 꼬이기 시작한다.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스틸.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이 영화는 동명의 일본 소설이 원작이다. 이 소설을 기반으로 쓰여진 시나리오를 기획하고 쓰고각색하고 연출한 김용훈 감독은 초짜 데뷔 감독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는 퍼즐게임을 그려냈다. 도대체 무슨 얘기인지, 누가 어떻게 어디에서 시작됐고, 끝이 어디로 가는지 모를 정도로 뒤죽박죽인 얘기다. 하지만 이 얘기는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서 퍼즐게임의 조각처럼 모든 인물의 관계가 밀리미터 단위로 세밀하게 재단이 된 것처럼 이빨을 맞춰 버린다. 모든 조각이 맞춰지고 드러난 그림은 굶주릴 때로 굶주려서 악만 남은 채 이빨을 드러낸 사나운 짐승들조차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현실의 지옥이다.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스틸.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각각의 짐승들은 따로 때어 놓으면 전혀 아귀가 맞지 않는다. 어울리지 않는다. 따로 논다. 하지만 기괴할 정도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털끝만큼 남은 흠집으로 서로가 연결이 돼 있다. 6개의 조각으로 나눠진 얘기는 기묘하고 괴상하다. 현실이지만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각각이 끔찍하고 잔인하고 음습하고 어둡다. 하나의 애기가 끝나면 또 다른 얘기가 시작이 된다. 얘기와 얘기는 조각이다. 조각과 조각의 연결 고리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영화 마지막 그 조각들이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있단 것을 알게 될 뿐이다. 그래서 짐승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서 그 안에서 악다구니를 치며 살겠다고 이빨을 드러낸 채 서로 물어 뜯고 뜯기고 있었을 뿐이다. 겨우 끝이 뭔지를 보기 위해서.
 
흐름을 쥐고 조율하고 흔드는 감독의 연출력은 절묘하다. 태영을 연기한 정우성의 아우라를 벗겨내 버린 감독의 선택은 완벽하게 옳았다. 그는 지금까지의 모든 이미지로 규정된 정우성단 세 글자를 이 영화를 통해 지워버렸다. 지금까지의 정우성은 완전히 잊고 들어가면 이 영화 속에서 흐름을 타고 춤을 추며 현실의 지옥을 끌어 내는 태영의 모습만 고스란히 안고 나오게 된다.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스틸.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전도연은 전례 없는 인간의 잔인성을 그려낸다. 데뷔 이후 이런 인물은 그에겐 없었다. 최강 포식자 상어로 만들어 내고 싶었던 이유는 영화 속 배경 평택항 앞바다에 살고 있을지 모를 괴물의 실체를 끌어 올리고 싶었던 감독의 의도였을 것이다. 그 바다를 지배하는 괴물은 전도연이 만들어 낸 최연희다. 하지만 영화 속 전도연의 최연희는 뱀이다. 음흉하고 습하다. 감정이 없다. 역대 최고의 사이코패스. 물론 최연희는 짐승이다. 짐승의 최연희도 흐름의 운율을 너울거리며 타고 흔든다. 춤을 춘다.
 
배성우 정만식 신현빈 정가람 윤여정 그리고 진경. 모두가 짐승들이다. 정우성 전도연의 짐승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각자의 공간에서 괴물이 되고 인간을 버린 채 굶주림을 드러낸다. 먹이를 보고 침을 흘리며 웅크리고 있는다. 그래서 이 영화의 모든 인물은 짐승이 됐고, 인간을 지웠다. 배우들의 소화력과 감독의 연출력은 완벽하게 무게 중심을 잡고 조율한다. 결과적으로 조율을 당한 건 관객이다.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스틸.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짐승들의 내림굿 한 판에 넋을 빼앗기고 홀리게 된다
 
P.S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염려로 인해 2월 12일 개봉 예정에서 잠정적으로 연기가 됐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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