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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반도체 가격, 오르지 않아도 된다
2020-01-15 06:00:00 2020-01-15 06:00:00
2019년 한국의 수출은 5424억1000만달러로 집계돼 2018년보다 10.3% 감소했다. 2009년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13.9% 감소한 이후 10년 만에 겪은 감소 기록이다.
 
사실 지난해는 금융위기 직후만큼이나 어려운 시기였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파고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독일이나 중국, 일본 등 제조업 비중이 큰 나라들 모두 비슷한 어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러니 한국의 수출이 두자리수 감소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일본까지 경제보복을 감행하는 등 악재의 연속이었다. 
 
한국의 경우 특히 반도체의 가격하락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작년 반도체의 연간수출은 939억달러로 2018년보다 25.9% 줄어들었다. 4분의1이 날아간 것이다. 한국의 20대 주요 수출품 가운데 감소폭이 가장 컸다. 반도체 수출 물량은 7월 이후 증가세가 유지됐다. 그런데도 가격 하락으로 말미암아 수출 금액이 그토록 큰폭으로 줄어든 것이다.
 
석유화학과 석유제품, 디스플레이와 무선통신기도 두자리수 감소를 겪었다. 20대 주요품목 가운데 14개 품목의 수출이 줄어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자동차는 2018년 1.9% 감소에서 지난해에는 5.3% 증가로 돌아섰다. 특히 전기차의 경우 물량이 아직 적기는 하지만, 82.7% 늘어났다. 바이오헬스나 화장품, 농수산식품, 플라스틱제품의 수출도 증가했다. 
 
더 다행스러운 것도 있다. 지난해 수출물량이 0.3%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20대 주요 수출품 가운데 12개가 증가세를 나타냈다. 그 덕분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3년 연속 무역액 1조달러를 돌파했다.  
 
지난해 제조업 가동률이 70%대를 유지한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결코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름 선방한 셈이다. 그러므로 이제 수출도 다시 바닥을 차고 오르는 일만 남아 있다. 단가만 오르면 된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과거와 같은 반도체 착시가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점이다. 지난 1990년대 중반 한국은 반도체의 비정상적인 호황에 완전히 속은 일이 있다. 반도체 수출이 급증하면서 호황을 구가하자 이를 생산하던 삼성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취했던 것이다. 재벌들은 너도나도 빚을 내면서 대형투자를 서슴지 않았다. 그 결과 IMF 구제금융 사태를 당해 모두가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잠깐 동안의 쾌락이 지나가면 쓰라린 후회의 시간이 다가오듯이 말이다.
 
반도체는 가격움직임이 국제유가처럼 급변하기에 지나치게 매달려서는 안된다. 경제의 실상을 옳게 인식하기 어렵게 하고 경제정책을 오도할 수도 있다. 자칫 깊은 나락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오늘날 석유를 비롯한 천연자원을 넉넉하게 보유하고 있는 나라들이 대체로 그런 모습이다. 1990년대 한국도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렇지만 이제 한국은 수출품목의 다양성이나 체질 등이 크게 달라졌다. 기초체력과 뚝심이 현저히 커졌다는 것이다. 반도체가 흔들리더라도 다른 품목과 업종이 그 공백을 훌륭하게 메워준다. 트로이전쟁에 출전한 그리스도시국가연합군의 영웅 아킬레우스가 죽었어도 오디세우스나 디오메데스 같은 맹장이 버티고 있었던 것처럼. 그렇기에 지금 반도체 가격이 오르지 않는다 해도 크게 걱정되지 않는다.  
 
지난해 전세계를 힘들게 했던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도 이제 끝이 보인다. 모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싶을 것이다. 그렇지만 올해는 또 어떤 어려움이 닥칠지 알 수 없다. 새해 벽두에 중동에서 미국과 이란의 전쟁 위기가 높아지면서 전세계가 긴장했다. 사태는 일단 진정됐지만,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사실 인생이나 국가경제나 끝없는 어려움의 연속이다. 하나의 어려움이 끝나면 또다른 어려움과 난제가 도깨비처럼 찾아온다. 따라서 그 어떤 악재가 닥쳐도 견뎌낼 수 있는 체력과 뚝심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장구한 세월을 두고 발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반도체 가격도 당분간 오르지 않는 것이 한국 경제의 앞날을 위해 차라리 더 좋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다른 업종과 품목의 균형있는 성장에 더 힘쓰게 되지 않을까 한다. 
 
새해 들어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의 주가가 날아오르고 있다. 반도체 가격이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기 때문인 듯하다. 사실이라면 반가운 일이다. 그렇지만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반도체가격이 다시 오른다 해도 문제의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 반도체 없이도 살아남고 발전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킬레우스를 대신할 장수를 널리 찾아내고 키워야 한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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