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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시장이 해결해 주지 않는다
2020-01-09 02:00:00 2020-01-09 02:00:00
자칭 시장경제를 옹호한다는 사람 중 일부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모든 규제는 악이며 철폐의 대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오랫동안 노력해 온 금융시장의 규제 완화가 자유방임(laissez-faire)을 의미하지 않는 것은 명백하다. 금융은 기본적으로 규제산업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돈이 자기자본이 아닌 예금, 위탁금 또는 예수금이라 칭하는 고객의 것이다. 고객 돈으로 사업을 하다 보니 까다로운 규제가 따른다.
 
만일 국제결제은행(BIS)이 자기자본비율을 정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수많은 은행이 도산했을 것이다. 또 정부가 일정 수준 이상의 담보대출을 규제하지 않는다면 이미 선진국 수준인 아파트 가격이 결국 은행의 부담이 될 것은 자명하다. 시장이 수요와 공급을 통해서 자율적으로 조절한다는 생각은 여러 전제가 충족된 이상적인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작동하는 완전경쟁시장을 현실에서 찾기는 어렵다.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에 참여한 각자가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더라도 의도치 않게 모두가 이익이라는 것으로 아담 스미스가 ‘도덕 감정론’과 ‘국부론’에서 쓰고, 이후 왈라스가 경쟁시장의 균형모델로 발전시켰다. 다소 애매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의미는 뚜렷하다.
 
사실 오늘날의 모든 정부는 시장에 개입한다. 특히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는 조세회피 지역(tax haven)을 제외하고는 점점 강해지는 추세다. 일부 나라는 ‘법의 역외적용’이라는 개념으로 조세회피 지역을 넘나드는 거래도 규제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이들 지역을 이용한 돈세탁과 탈세·횡령이 만연했을 뿐만 아니라 일부 국가는 금융중심지의 위상을 누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한편 이상적인 시장을 추구하던 금융권은 일찍이 증권거래소를 만들었다. 원래 길거리나 커피숍에서 이루어지던 거래가 구체적인 시설공간으로 옮겨졌고 규정도 만들었다. 그들이 원하던 거래는 ‘정연하고 공정한 거래(orderly and fair trade)’였다. 몇 줄에 불과하던 규칙은 일반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백 쪽의 규정으로 변모했다. 사람이 하던 시장운영도 수천 대의 서버가 대신한다. 
 
그러나 주식거래소 역시 완전경쟁이 이루어진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대체로 또는 평균적으로 경쟁적이라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오히려 상당한 수의 시세조종이 적발되고 허수성 호가와 같이 조작을 위한 기교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나라마다 시장을 감시하기 위한 복잡한 시스템이 있고, 변동성이 급변하거나 주문불균형이 심화되면 언제든지 거래에 개입한다.
 
흔히 말하는 “시장에 맡기자”라는 말 속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 보인다. 잘 알지 못하고 막연한 환상을 가지거나 이해관계로 인해 악의적인 경우다. 시장이 해결해 줄 것이라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일은 나타나지 않는다. 최근 벌어진 파생연계펀드(DLF)와 헤지펀드 운용사 사태를 보면 시장과 자율에 맡기는 것이 얼마나 큰 위험을 수반하는지 알 수 있다. 시장은 사회·문화 및 경제적 조건이 완숙된 곳에서만 작동한다.
 
그러면 규제가 반드시 필요하며, 여태껏 외쳐온 규제완화는 공염불인가? 아쉽게도 우리는 철폐해야 할 규제와 필요한 규제의 구분에 익숙하지 않다. 철폐 대상인 규제 중 많은 부분이 진입규제로 남아있다. 핀테크의 발달에 따라 영역이 모호해지는 상황에도 전통적인 금융영역에 따른 허가요건의 구조는 변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핀테크로 혁신금융을 꽃피우는 시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역사가 일천한 우리 수준은 스스로 작동하는 시장과 자율의 힘으로 글로벌 금융을 따라잡기에 역부족이다. 규제완화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아예 손을 놓아서는 안되는 이유다. 규제당국은 세밀한 모니터링과 즉각적인 개입 능력을 통해 위험을 차단하고 전이를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방임하거나 사사건건 간섭한다면 시장의 실패보다는 금융감독 실패로 나타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스스로 규제하는 자율규제(self-regulation)가 바람직하지만, 엉뚱하게 사적 집단이익 추구로 변질될 수 있다. 우리에게 선진국이 경험한 시행착오와 보정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규제가 필요없을 정도의 성숙성은 시장이 아닌 우여곡절 속의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최욱 전 코넥스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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