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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낙하산’ 기업은행장은 명예로운가
2020-01-08 06:00:00 2020-01-08 06:00:00
새해가 밝자마자 국책은행에서 낙하산 인사로 소동이 벌어졌다. 윤종원 신임 IBK기업은행장이 3일 오전 첫 출근을 시도했지만 발길을 돌렸다. 2일 기업은행장에 임명된 윤 행장은 이날 오전 후문을 통해 들어가려다가 노조에 저지당했다. 
 
윤종원 신임 행장의 경력은 화려하다. 1983년 행정고시 27회로 공직에 입문한 후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과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특명전권대사, 연금기금관리위원회 의장,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등을 두루 지냈다. 이렇게 화려한 경력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다.
 
그는 그러나 금융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경제관료로서는 출중할지 모르지만, 금융계에서 전표에 도장 하나 찍어본 적이 없다. 은행 사외이사도 해본 일이 없다. 그러니 원천적으로 그에게 은행장 '면허'가 없다. 칼 세이건 같은 훌륭한 천문학자도 우주비행사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그는 두말할 나위 없는 낙하산이다. 기업은행은 국책은행으로서 정부가 인사에 관여할 합법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법적 권한 이전에 이미 나름대로 좋은 전통이 축적돼 가고 있다. 2010년 이후 3차례 연속으로 내부 출신이 은행장을 맡아온 것이다. 
 
그러는 동안 기업은행이 특별히 물의를 일으킨 일도 없다. 최근 시끄러운 파생금융상품 불완전판매 문제로 소비자나 기업을 울린 일도 없다. 그러니 외부인물이 치고들어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외부인물이 끼어들면서 좋은 전통을 다시 파괴하려 한다. 
 
내부 인물이 맡으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터지면 외부에서 누군가 들어가서 풍토를 쇄신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그런 경우 소신이 분명하고 실무경험도 풍부한 인물이어야 한다. 
 
그러나 윤종원에게는 그런 경험과 능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청와대의 설명대로 그가 문재인정부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그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경륜을 펼 자리는 은행장이 아니다. 정책당국자로서 다른 자리에서 활용해야 한다. 은행장은 그런 철학보다는 실무경험과 시장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정책이론가가 들어갈 자리는 아니다. 
 
지금의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시절이었던 2013년 당시 청와대가 기획재정부 차관 출신을 기업은행장에 임명하려 하자 거세게 비판했다. "관치는 독극물이고 발암물질과 같다"고 다소 거친 언사까지 동원했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스스로 독극물 또는 발암물질 같은 것을 기업은행에 주입하려 한다. 어찌 하나의 입으로 두 말을 할 수 있으며, 말과 행동이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 그런 언행 불일치가 오히려 독극물이고 발암물질 아닌가?
 
사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이후 낙하산인사가 근절되기를 모든 국민이 기대했다. 그것은 시대적 요구였다. 촛불혁명을 통해 출범한 정권으로서는 그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야 할 책임이 있다, 공기업을 일부 정객과 관료들의 낙하산 투하 훈련장으로 전락시켜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악습이 근절되기는커녕 여전히 독극물과 발암물질이 창궐한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같은 사태도 그래서 벌어졌다. 낙하산의 질도 나빠졌다. 해당분야와 아무 인연도 없는 인물이 밀고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결말마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강래 도로공사 사장이나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 일부 인사는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한답시고 중도에 자리를 내놓았다. 공기업이 정객들을 위한 휴게소라도 된단 말인가?  
 
본인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사실 불명예이다. 한때 머물렀던 기관의 임직원이나 해당분야 인사들로부터 두고두고 손가락질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임명했던 임명권자에게도 오점으로 남는다.
 
그러므로 문재인정부에서 낙하산인사로 자리를 차지했거나 차지하려고 하는 인사들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자신이 그 자리에 과연 어울리고, 자신의 처신이 명예로운지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도 이제 마음을 고쳐먹어야 한다. 권한을 갖고 있다고 함부로 행사해서는 곤란하다. 권한과 자유는 현명하게 행사해야 빛난다. 
 
기업은행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당장 낙하산으로 투입되는 기업은행장을 억지로 받아들이라고 임직원들에게 강요하는 일은 그만둬야 한다. 그것은 명예롭지도 않고 현명하지도 않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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