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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백두산’ 이병헌 “할리우드에 비교해 손색없는 퀄리티다”
“너무 완벽한 시나리오 오히려 매력 못느꼈는데…하정우 ‘투톱’ 기대”
“두 명의 감독, 색다른 경험…국내 상업 영화 시스템이 주목해 봐야”
2019-12-26 15:44:30 2019-12-26 15:44:3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매년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꾸준히 작품을 선보여 왔던 이병헌이다. 한때는 할리우드에서 최고의 주가를 올리며 한류 배우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구축해왔다. 지난 해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으로 이병헌은 이병헌이다를 여지없이 증명해 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리고 2019. 이병헌은 조용했다. 드라마와 영화, 모두에서 이병헌이 사라졌다. 궁금했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이병헌은 이내 북한의 한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있었다. 영화 백두산에서 그는 북한과 대한민국 모두를 상대하는 이중스파이 리준평으로 돌아왔다. ‘백두산은 한반도를 멸망시킬 백두산 화산 폭발을 막기 위한 남과 북 두 남자의 사투를 그린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 재난을 이병헌은 하정우와 함께 막아내기 위해 고군분투를 한다. 사실상 이병헌의 손으로 이 재난을 막아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백두산은 자칫 잘못했다면 충무로의 대재앙으로 기록될 영화였다. 물론 그 재앙은 스크린을 뚫고 나오지 못했다. 그건 오롯이 이병헌이란 이름 석자가 만들어 낸 힘이었다.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순 제작비만 무려 260억이 투입된 초특급 대작이다. 영화의 절반 이상이 컴퓨터그래픽(CG)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래서 이례적으로 영화 개봉 하루 전 언론 시사회가 진행됐다. 국내를 넘어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VFX(시각효과)업체 덱스터스튜디오가 이 영화의 제작을 맡았다. 이병헌 역시 개봉 하루 전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상영 버전을 보게 됐단다. 극장 개봉 이후 만난 그는 기대감이 컸다.
 
전 오히려 이 영화에 부정적이었어요. 시나리오가 너무 잘나온 거에요. 전 그런 시나리오는 오히려 매력을 못 느껴요. 결핍이 느껴져야 내가 들어가서 뭔가를 채우는 작업을 할 여지가 보이는 데 백두산은 그게 안보일 정도였죠. 근데 하정우가 캐스팅이 되고 제가 정우에게 전화를 받았죠. 언젠가는 정우와 작업해 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닿은 거죠. 두 감독님과 제작자인 김용화 감독까지 만난 뒤 확신이 생겼죠. 단순한 재난 영화가 아니라 두 남자의 버디물로서의 가능성을 봤죠.”
 
개봉 하루 전 언론시사회를 통해 본 백두산은 주연 배우인 이병헌의 눈에는 아쉬움도 크고 기대감도 컸다. 아쉬움은 통상적으로 주연 배우들이 느끼는 후회일 것이다. 정말 심혈을 기울여 찍은 장면이 편집을 통해 포함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기대감은 이 정도 사이즈의 재난 영화를 관객들이 어떤 시선으로 봐줄지에 대한 기대감일 것이다.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자기 영화를 만족스럽게 보는 배우나 감독이 있을까요. 후반 작업이 길게 필요한 영화였기에 다행스럽게 잘 나온 것도 있지만 아쉬운 게 분명히 눈에 보였죠. 제 분량이 정말 많았는데 영화의 흐름상 편집이 된 지점이 많았어요. 그게 많이 보였죠. 정말 잘되면 나중에 제작사와 투자 배급사에서 감독판을 공개해 주지 않을까요. 하하하. ‘내부자들도 그랬었으니 기대해 봐야죠(웃음)”
 
그가 연기한 리준평은 이중스파이다. 북한 무력부 소속 1급 요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에 포섭된 인물이다. 여기에 중국과 러시아까지 상대를 해야 한다. 전투력도 상당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장면만 봐도 웬만한 전쟁 영웅을 능가한다. 완벽하고도 완벽한 히어로 느낌이다. 하지만 코미디가 가득하다. 능청스럽고 의뭉스럽다. 이중스파이란 정체성 때문일지 한 마디로 속을 알 수 없는 캐릭터가 바로 이병헌이 연기한 리준평이다.
 
그런 느낌은 두 감독님의 디렉션에도 있었고, 시나리오에도 명확하게 나와 있었어요. 첫 등장부터 전라도 사투리를 쓰잖아요. 북한 사람이(웃음). 딱 거기에서 리준평이 어떤 인물인지 느낌이 오더라고요. 북한 사투리에 남한 전라도 사투리, 중국말에 러시아말까지. 완벽하게 스파이에 특화된 인물이죠. 반대로 빈틈도 많아요. 조인창과의 대화나 행동에서 의도하지 않게 툭툭 나오죠. 그런데도 날카로울 땐 칼날 같고. 한 마디로 설명이 안 되는 인물이에요. 하하하.”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선 이병헌과 하정우의 투톱 시퀀스가 거의 대부분이다. 긴박함과 생존을 위한 사투가 영화 전체에 강하게 묻어 있지만 의외로 코믹하고 웃음이 가득한 장면이 많다. 이 장면 대부분이 두 배우의 애드리브를 의심케 할 정도로 능청스럽게 표현이 돼 있었다. 하정우의 유머 감각은 충무로 배우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하다. 이병헌의 순발력 역시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다.
 
애드리브요? 되게 많아요(웃음) 의외로 영화 속에 등장한 드라마 다모얘기는 시나리오에 있었어요. 영화 보신 분들은 아마도 애드리브로 착각하실 부분인데 아니에요(웃음). 대신 그 뒤에 이어지는 정우와 함께 한 말줄임 대사들은 전부 애드리브에요. 북한 사람이고,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쓰는 말 줄임에 낯설어 하는 모습이 재미있을 거 같아서 했죠. 처음에는 리준평도 거북스러워하지만 나중에는 재미있어 하잖아요. 아마도 진짜 그러지 않았을까요. 하하하.”
 
백두산을 보면 사실 진짜 깜짝 놀랄 부분은 따로 있다. 백두산 화산 폭발도 놀랍고, 영화 초반 등장하는 강남 일대 붕괴 장면도 두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다. 하지만 무엇보다 진짜 놀라운 것은 특급 카메오의 출연이다. 극중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리준평의 아내로 너무도 뜻밖의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배우 전도연이다. 이병헌은 캐스팅 단계는 물론 촬영 전날까지도 몰랐다고.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저도 진짜 몰랐어요. 너무 놀랐죠. 촬영 전날까지 몰랐어요. 다만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도대체 누가 이 배역을 맡을까 궁금했었죠. 물론 너무 강한 배우가 이 배역을 맡아서 관객들이 느낄 백두산의 재미가 반감되진 않을까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런데 개봉 날 이후 보신 여러 관계자가 리준평의 가족사가 굳이 감정적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전도연을 통해 그려졌다는 말씀들을 많이 해주셔서 너무 다행이고 (전도연에게) 고마웠죠.”
 
할리우드에서 여러 편의 작업을 경험한 이병헌에게 백두산은 어떻게 달랐을까. ‘백두산은 국내 상업 영화에선 보기 드문 제작비가 투입된 작품이다. 순 제작비만 260억이 투입됐다. 여기에 영화의 절반 이상이 CG작업이 투입됐다. 공동 연출을 맡은 두 감독이 촬영 이후 언론시사회 전날까지 후반작업에 매달릴 정도로 분량도 막대하고 엄청났다. 이병헌은 분명히 할리우드와 국내 시스템은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당연히 다르죠. 아직은 국내 시스템이 할리우드를 따라가긴 힘들죠. 돈의 규모 자체가 다르니. 물론 국내가 후진적이란 것은 절대 아니에요. 그런데 이번 백두산은 최대한 할리우드 시스템과 거의 흡사하게 돌아갔어요. 굉장히 발전된 시스템에서 오류를 최대한 줄이는 과정을 택한 거죠. 두 감독님이 정말 많은 노력을 하셨어요.”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데뷔 이후 수 많은 작품을 소화한 그도 연출자가 두 명인 감독을 경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란다. 할리우드에서도 드문 케이스이긴 하다. 그는 두 명의 연출자가 있는 현장의 장점이 뚜렷하고 단점이 뚜렷했다고 웃었다. 사실 감독이 두 명이란 것을 백두산에선 중반 이후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였단다.
 
장점은 생각을 더 많이 할 수 있기에 더 좋은 장면이 나올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우선 감독이 두 명이잖아요(웃음). 그런데 단점도 있긴 하죠 하하하. 제 생각이나 설명을 꼭 두 번씩 말하고 설명해야 되요. 그거 의외로 고달펐어요(웃음). 근데 중반 이후에는 감독님이 두 명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두 분이 요일별로 나눠서 현장을 지휘했어요. 이 감독이 월수금 김 감독이 화목토 이런식으로. 되게 합리적인 시스템 같고 국내 상업 영화에서도 사이즈가 좀 큰 영화라면 고려해 볼 방법이라고 봐요.”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마지막으로 할리우드 작품 스케줄 여부가 궁금했다. 이병헌은 국내 배우 가운데 가장 성공적으로 할리우드에 안착한 배우다. 최근 배우 마동석이 마블 세계관에 입성해 화제를 모았지만 그 이전 이병헌이 선배다. ‘지아이조시리즈로 국내는 물론 북미 지역에서도 이병헌의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킨 바 있다.
 
하긴 해야 하는데, 아마도 내후년이나 되야 할 듯해요. 내년까진 국내 스케줄이 꽉 찼어요. 할리우드는 정말 스케줄 맞추기가 어려워요. ‘우리가 널 왜 기다려야 돼?’ 이런 느낌이죠. 결국 할리우드 작품 소화를 위해선 그냥 그 곳에 올인해야 돼요. 마동석씨도 그러고 있잖아요. 국내 작품이 너무 좋아서 결정했는데 할리우드 영화가 들어오기도 해요(웃음). 병행하는 게 쉽진 않아요. 우선 올해는 백두산으로 좋은 마무리하겠습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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