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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세상읽기)'식물성 양'과 '먹으면 죽는 토마토'
2019-12-27 06:00:00 2019-12-27 06:00:00
활판 인쇄술이 발명된 이후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성서다. 하지만 실질적인 베스트셀러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맨더빌 여행기』. 존 맨더빌은 영국의 기사다. 1322년부터 1356년까지 북아프리카와 소아시아의 성지를 거쳐 인도까지 두루 여행하고 돌아와서 병상에서 여행기를 남겼다. 남아있는 사본만 300개에 이르고, 프랑스어로 처음 출판된 후 영어, 독일어, 네덜란드어, 체코어 등 대부분의 유럽 언어로 번역됐다(심지어 한국어판도 2014년에 출간됐다). 맨더빌 여행기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콜럼버스를 비롯한 유럽인들에게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낯선 곳에서는 낯선 경험을 하는 법이다. 맨더빌은 인도에서 호리병박 모양의 열매 안에 들어 있는 작은 새끼 양을 먹어봤다. 맛은 엄청났다고 한다. 맨더빌보다 30년 앞서 이탈리아 수사 오도릭이 자기는 직접 경험하지 못했지만 여행 중에 '믿을 만한 분들'에게 들었다고 전한 희한한 나무를 맨더빌이 실제로 경험했다는 것이다. 수사가 믿을 만한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를 기사가 실제로 경험했으니 이 정도면 믿어줘야 할까?
 
상식과 어긋나지 않는가! 이때 전문가들이 등장했다. 꽤 많은 식물학자와 자연학자들이 '타타르의 식물성 양(vegetable lamb of tartary)' 열매가 열리는 나무가 실제로 있다고 주장했다. 어떤 이는 열매 속의 양털도 봤다고 했다. 그래도 의심하는 믿음이 부족한 이들이 몇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너무나 많은 '믿을 만한 분들'이 껍질 안에 있는 살코기를 맛있게 먹었고 보송보송한 순백의 솜털을 직접 봤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식물-동물 혼종에 관한 연구 사례마저 등장했다.
 
이쯤 되면 믿어야 한다. 신앙인이 전했고, 책에도 쓰여 있고, 수많은 전문가들이 증언하는 데도 의심하면 '마음에 병'이 있는 사람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실제로 이 믿음은 400년 가까이 이어졌다. 카를 6세의 명령에 따라 독일의 자연학자이자 탐험가인 엥겔베르트 캠퍼가 1683년부터 10년 동안 러시아, 페르시아, 인도를 거쳐 일본까지 여행하면서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한 후 "세상에 '식물성 양' 따위는 없다"라는 결론을 내린 후에야 사람들은 이성을 찾았다.
 
세상에는 상식과 어긋나는 사실이 많다. 토마토케첩의 발원지는 어디일까? 미국이 아니다. 중국이다. 토마토는 유럽보다는 중국과 한국 사람들이 먼저 먹었다. 
 
토마토를 먹는 방식도 유럽과 우리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는 주로 생으로 먹는다. 그러다보니 건강식품이라고 일컬어지는 토마토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딱히 성격이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토마토에서 나는 특유의 풀내음을 견디지 못하는 분들이다.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처럼 아마 유전자의 작은 차이에서 생기는 경향이니 주변 사람들이 이해해주면 된다. 유럽에서는 햄버거에 넣어서 먹는 게 아니라면 익혀서 먹는다. 케이크에 올라가 있는 방울토마토를 보고 질겁하는 서양 사람을 본 적이 있다. 마치 케이크에 오이가 올라가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익혀 먹으면 맛있다. 토마토에 많이 들어 있는 MSG 성분 때문에 감칠맛이 강해지기 때문이다(방울토마토는 생으로 먹을 때도 감칠맛이 많이 난다).
 
미국이 토마토케첩의 발원지가 아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분들이 많겠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19세기 초까지 토마토를 거의 먹지 않았다. 토마토를 먹으면 죽는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였다. 1820년 한 대령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토마토 20개를 한꺼번에 먹겠다고 공언했다. 사람들이 몰려 들었고 대령은 실제로 20개를 먹었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1980년대에 MBC의 '믿거나 말거나' 류의 방송에서 전해준 이야기다).
 
식물성 양이라든지 먹으면 죽는 토마토처럼 지금 우리의 눈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어떻게 그렇게 오래 지속될 수 있었을까? 왜 그렇게 널리 퍼졌을까? 그 누구도 식물성 양 열매를 실제로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말만 했을 뿐이다. 평생 살아오면서 겪은 경험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아무런 증거도 없이 덜컥 믿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400년 동안이나 말이다. 언뜻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우리는 다를까? 지금 당장 휴대폰을 열어서 단체 카톡방에 들어가 보시라. 나는 오늘도 꽤나 많은 '식물성 양' 같은 뉴스를 받는다. '믿을 만한 분들'이 전해주시는 가짜 뉴스 때문에 속이 까매질 정도다. '믿을 만한 분들'이 전하는 가짜뉴스 대신 <뉴스토마토>를 신뢰하시라.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penguin1004@me.com)
 
※ 이번 회를 끝으로 <이정모의 세상 읽기> 연재를 마칩니다. 2016년 여름부터 2019년 12월말까지 77편의 글을 통해 과학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친절하고 재미있게 전해주신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님과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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