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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삶에 말 걸어온 연주, ‘SEOUL JAZZ WEEK’
재즈공연기획사 페이지터너 기획…‘생을 이야기한 재즈 뮤지션들’
2019-11-29 10:33:11 2019-11-29 10:33:11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저는 오늘 마일스 데이비스가 이러했다는 식의 재즈 역사를 읊진 않을 겁니다. 그건 결국 바깥 이야기를 제 입으로 다시 전하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지난달 18일 저녁 8시,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에 위치한 전 레바논 대사관 건물. 1층 통유리창 뒤로 비치는 밤하늘을 등지고 재즈 베이시스트 최은창씨가 일종의 ‘자기 선언’을 했다. 대신 그는 자신의 삶과 음악을 한 권의 책처럼 읽어주기 시작했다. 
 
자신은 누구일까, 자신의 음악은 어떤 의미였을까에 관한 고민들, 질문들. 자기 의미를 찾아간 이들을 읽고 들었던 경험들. 최근 그의 꿈 속에는 전설적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찰리 헤이든이 나온다. “늘 ‘격언’을 주십니다. ‘헤이 맨~’ 이라는 그 말투로 시작하죠. ‘네 자신이 되거라, 네 스스로의 멜로디를 연주해 보렴.’” 
 
재즈사를 읊거나 연주만이 주가 되는 일반 재즈 공연은 그날 없었다. 팻 메스니와 찰리 에이든, 헨리 맨시니의 곡들은 그의 무수한 삶의 고민, 방황, 꿈이 됐다. 2014년 세월호 사건 직후 율동감 강한 스윙 곡들을 연주하며 느낀 고통과 괴리, 음악을 세상에서 인정받는 도구로 쓰려다 느낀 부끄러움, 껍데기 같은 음악을 하진 않겠다는 자신 만의 다짐, 외침…. 
 
지난달 18일 저녁 8시,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에 위치한 전 레바논 대사관 건물에서 열린 '최은창 X 김대호' 공연.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이날 공연은 재즈 공연기획·음반제작사 페이지터너가 마련한 ‘SEOUL JAZZ WEEK’ 일환으로 열렸다.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계적 실력을 갖춘 재즈 뮤지션들을 발굴해 무대 기회를 주는 행사. 연희동 인근 연남장, 전 레바논 대사관 건물(식스티세컨즈 라운지), 근대건축 거장 김중업(1922~1988)이 설계한 건물(음악서점 라이너노트) 등 총 5곳에서 지난달 보름 남짓 릴레이식으로 열렸다. 
 
“제가 쓴 곡은 ‘Eternal Rest’, 영면 입니다.” 지난달 27일 오후 4시반 경, 김중업이 설계한 한 건축 공간. 다움트리오의 드러머가 의미심장한 곡명을 이야기하며 설명했다. “치매 걸리신 할머니를 어머니와 간병했습니다. 지난해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화장 이후 뼈를 보고 느낀 감정을 곡으로 담아봤습니다.”
 
장엄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피아노, 더블베이스 연주는 곧 그가 흔드는 종의 단선적 울림들로 이어졌다. 치열한 할머니의 생, 영면을 맞닥뜨린 그가 느꼈을 감정, 이 짧은 여행 같은 생을 살 우리들이 그려졌다. 30여 관객들의 고요한 숨소리 만이 공간 안에 흘렀다.
 
자기 삶을 입힌 재즈 뮤지션들의 연주, 그 음악들은 단순히 재즈를 재즈로 듣지 않게 했다. 연주가 주는 즐거움을 넘어, 자기 생에 관한 무수한 성찰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SEOUL JAZZ WEEK’ 내내 계속해서 음악은, 재즈는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20대 중반 저는 고작 음악을 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 정도의 고민들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살고 있는 그 나이 대의 어떤 친구는 생을 이어가야 할지, 말지 고민합니다.” 최은창씨는 공연 마지막 즈음, 빌 에반스의 ‘We will meet again’을 선곡했다. 베이스 현의 울림이 우리들은 언젠가 다시 만날 거라고 말을 걸어왔다. 잃어버린 이들을 언젠가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다독였다.
 
지난달 27일 오후 4시반 경, 김중업이 설계한 건축 공간에서 열린 다움트리오의 공연. 이 공간은 페이지터너의 새 사옥으로, 공연장과 서점을 갖춰‘문악관(文樂館)’이라 불린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이 기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2019 인디음악 생태계 활성화 사업: 서울라이브' 공연 평가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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