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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블랙머니’, 검은색 vs 흰색 vs 회색…당신은 어느쪽인가
70조원 짜리 거대 은행 단돈 1조 7000억 ‘매각’…“도대체 어떻게?”
‘론스타 먹튀 사건’ 집중 조명한 정지영 감독 시선…“지금의 시선은”
2019-11-05 00:00:00 2019-11-05 15:54: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분명 숨겨진 뒷거래가 있다. 이건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 자산가치 70조 원짜리 국내 대형 은행이 단돈 1 7000억원에 외국계 투기 자본에 넘어가게 생겼다. 이 같은 상황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금융감독위원회에 보고된 단 5장의 팩스로 이뤄졌다. 이건 누가 봐도 문제다. 문제 정도가 아니다. 국내 시장경제 체제를 완벽하게 붕괴시킬 초대형 금융범죄다. 하지만 금융감독위원회, 해외 투기 자본, 그리고 그들을 비호하는 전직 정부 고위 경제 관료들로 불리는 이른바 모피아는 이 불가능한 작전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IMF막바지 국내 경제는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은 단 몇 명의 모피아출신들이 주도권을 잡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이끌어 가고 있었다. 그들 나름대로 신념은 있다. 부실 은행에 대한 정리를 통해 국내 금융 시장을 안정시키고, 외국계 자본을 끌어 들여 국내 시장의 활성화를 이끌어 내겠단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맹신이다. 물론 이 같은 신념은 모피아그들의 속내에서만 존재한다. 이건 누구라도 알 수 있다. 1 7000억원의 인수 자금 가운데 정부 보조금은 1조원, 외국계 투기 자본이 내놓은 돈은 불과 1600억원. 나머지 5000억원은 자금 출처가 불분명하다. 여기서부터 이 검은 거래의 내막과 이면은 시작된다.
 
 
 
영화 블랙머니. 연출을 맡은 정지영 감독은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 '국정교과서 516' 등 현대사의 굵직한 족적을 남긴 논란의 행적을 언제나 추적해 왔다. 이번 영화는 일반인들이라면 한 번은 무조건 들어봤을 법한 외환은행 론스타 먹튀 논란사건이다. 외피와 내피는 거의 대동소이하다. 외피가 사실과 팩트에 입각한 묘사라면 내피는 추론이다. 현재 이 사건은 ISD(Investor-State Dispute-해외투자자가 상대국의 법령·정책 등에 의해 피해를 입었을 경우 국제중재를 통해 손해배상을 받도록 하는 제도) 소송 전이 진행 중이다. 실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해 2012년 하나은행에 매각하면서 무려 5조원의 차익을 챙겨 국내 금융시장에서 발을 뺐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매각 승인 지연으로 손해를 봤다며 ISD에 소송을 제기했다. 수십조짜리 기업을 수십분의 1 수준으로 매입해 투자 대비 몇 배의 이익을 챙기고 오히려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소송까지 진행 중이다. 이 소송에서 정부가 패할 경우 5조원의 돈은 고스란히 세금에서 빠져나가게 된다. 정 감독은 이 해괴한 초대형 금융 거래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영화 '블랙머니' 스틸.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다시 영화다. 시작과 함께 한 남자와 여자가 있다. 이들은 금융감독원 소속 직원들이다. 두 사람은 교통사고를 당한다. 남자는 죽는다. 여자는 살아 남았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목숨을 위협받고 있다. 결국 이 여자도 얼마 뒤 자살한 것으로 판명된 사건의 주인공이 된다. 이 여자는 죽기 전 교통사고로 죽은 남자의 사건을 조사하던 양민혁 검사(조진웅)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단 휴대폰 문자를 남겼다. 죽은 남자와 여자는 70조짜리 은행 매각에 깊게 연루된 듯한 대화를 주고 받는다. 앞뒤가 기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배후가 있단 얘기다. 양 검사는 알리바이를 위한 희생양인 셈이다.
 
검찰 내부에선 막프로란 별명으로 불리는 양 검사다. 앞뒤 계산 없이 사건이라고 느껴지면 그대로 직진한다. 그래서 막프로. ‘성추행오명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불명예다. 양 검사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파헤쳐 나간다. 검찰 내부에서의 견제도 극심하다. 하지만 직진이다. 그 과정에서 예상 밖의 흑막이 하나 둘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건 자신의 오명이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든 상상 초월의 게이트. 수십조원짜리 거대 은행이 종잇값도 안되는 헐값에 매각이 됐다. 그 이면에는 정부 고위 관료 출신들이 줄줄이 개입이 된 정황이 포착됐다. 자신에게 성추행 검사오명을 쓰게 만든 여성과 교통사고로 죽은 남성은 애인 사이였다. 이들은 이번 은행 헐값 매각 사건의 이면을 쥐고 있는 증인이었다. 하지만 미심쩍은 사건으로 인해 모두 죽었다.
 
영화 '블랙머니' 스틸.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70조 원짜리 거대 은행 단돈 1 7000억원에 외국계 사모펀드에 넘어갔다. 이 같은 상황을 가능케 한 것은 팩스 5장이 전부다. 금융위원회, 전직 경제 고위 관료 집단인 모피아’, 그리고 이들과 이면 계약을 통해 막대한 부를 대한민국 정부에서 빼낸 외국계 사모펀드. 이 모든 과정을 국가 신인도 위한 선의의 목적으로 포장하는 금융자본주의의 폐단. ‘블랙머니는 제목 그대로 검은 돈의 실체가 지닌 시커먼 속내를 바라본다. 이건 포장이 불가능한 과정과 결과이며 그리고 현재 진행형인 실체다.
 
현실 속에서 론스타는 매각 명령에 시간을 끈 우리 정부를 상대로 5 3000억 규모의 ISD소송을 냈다. 이 소송에서 우리 정부는 패소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돈은 고스란히 국민의 혈세로 충당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은 앉은 자리에서 자신의 코와 귀를 베이게 되는 셈이다.
 
영화 '블랙머니' 스틸.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블랙머니의 정지영 감독은 목적은 간단하다. 이건 알아야 한다는 목소리다. IMF와 같은 국가 경제 붕괴는 일반 시민들의 피부 체감률이 높았다. 직격탄이었다. 반면 론스타 먹튀 논란은 기업 관련 매각 문제였다. 과정의 정당성이 극심하게 문제된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체감률이 낮은 것은 일반 시민들의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통로가 극히 한정돼 있었던 점이다. 물론 최종 결론으로 이어진다면 5조원의 돈은 우리의 주머니에서 나가게 된다. 5장의 팩스, 그리고 몇 명의 전직 고위 경제 관료들의 불법과 탈법 편법을 넘어선 행태로 인해.
 
하지만 이 영화의 시선이 지금 시대의 눈에 어떤 광경으로 비춰질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듯싶다. 영화 속 양 검사와 김나리는 모피아로 불리는 완벽한 흑막을 걷어내기 위해 불법도 서슴지 않는다. 이 지점에 대해선 영화 속 양 검사와 김나리의 대화로도 드러난다. 편법으로 대한민국을 두 동강 낸 바 있는 한 전직 정부 고위 관료의 과거 행적을 절대로 용서하지 못했던 절반의 국민이 이 영화의 시선에는 어떤 판가름을 낼 지가 흥미롭다. 결과를 위해 과정의 정당성을 차치하고 나서야 할 때인지 아니면 과정의 부당성은 결과의 선의로 인해 묻혀진다고 해도 그 자체로 정당함을 인정 받을 수 있는지가 사실상 블랙머니가 묻는 단 한 가지의 질문일 듯싶다.
 
영화 '블랙머니' 스틸.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검은 색과 흰 색 그리고 지금의 세대를 유지하는 회색이 충돌한다. 명확한 것은 검은 색은 나쁘다. 흰색은 착하다. 그럼 회색은 뭐라고 해야할까. 영화 마지막의 선택은 많은 것을 질문하게 만든다. ‘블랙머니조차 사실 내지 못한 결론을 드러낸 선택 같다. 개봉은 오는 13.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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