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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6400억으로 330명을 왜 못 쓰나?
2019-11-05 07:00:00 2019-11-05 07:00:00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는 것을 둘러싸고 논란이 뜨겁다. 국민 여론은 반대가 높다. 국회에 대한 불신이 심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도 문제는 정치권이다. 자신들에 대한 불신이 심해서 의원 증원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다면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자중할 일이다. 그리고 의원들이 누리는 특권을 없애고 연봉을 삭감하는 등 자구노력에 앞장서야 한다. 그런데 거대 정당들은 오히려 국민들의 정치불신을 이용해서 정치개혁을 방해하려 하고 있다.

이것이 왜 말도 안 되는 상황인지는 변호사 숫자의 예를 들어 설명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한 해에 배출되는 변호사 숫자가 300명 수준이었다. 그래서 '변호사 사무실 문턱이 높다', '변호사들이 특권을 누린다'는 비판이 많았다. 이에 대해 언론, 정치권 등에서 내놓은 해법은 '변호사 숫자를 늘라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 해에 배출되는 변호사 숫자가 300명에서 500명이 되고, 지금은 2000명까지 늘어났다. 그 결과 변호사 사무실의 문턱이 낮아졌다. 오로지 공익을 위해 일하는 공익변호사들도 늘어났다.

그렇다면 의원들의 특권, 부패가 문제 되는 지금, 해야 할 일은 의원 숫자를 줄이는 게 아니라 늘리는 것이다. 변호사의 예에서 봤듯 어떤 시대나 사회에서 직업의 특권을 없애려면 기득권을 누리는 자들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 숫자가 많아지면 제대로 일할 의원들이 국회에 들어가게 된다. 변호사 숫자가 늘면서 공익을 위해 일하는 변호사가 증가했듯이 말이다.

국회예산은 더 안 늘어나도 된다. 올해 국회예산은 6400억원이다. 적지 않은 금액이다. 이 돈으로 300명이 아니라 330명, 360명의 의원을 쓰지 못할 이유가 뭔가. 주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같은 돈으로 더 많은 의원을 쓰는 것은 예산낭비가 아니라 이익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들어가면, 국민들이 더 지지할 것이다. 현재 1억5000만원이 넘는 의원 연봉을 반으로 줄이자. 국민들이 느끼기에 일도 잘하지 못하는 의원들에게 지금처럼 많은 연봉을 줄 이유가 없다. 의원들이 고액연봉을 받는 근거는 '국회의원은 장·차관급 대우를 받아야 한다'라는 특권 의식밖에 없다. 그러나 의원들의 눈높이는 장·차관으로서의 대우가 아니라 국민들에게 맞춰져야 한다. 의원이 국민들을 대변하는 기관이라면 국민들 평균소득 정도로 연봉을 받는 것이 적절하다.

그리고 의원별로 9명의 개인 보좌진을 두고 있는 것도 줄여야 한다. 국회사무처에서도 7명 수준으로 줄이는 방안을 검토했을 정도로 지금의 개인 보좌진 규모는 과도한 편이다. 개인 보좌진 운영실태를 보면 지역구 관리를 하느라 의원회관에서 보기 어려운 보좌진들도 있다. 의원은 국가의 일을 하라고 뽑아놓은 것인데, 이렇게 지역구 관리용 개인 보좌진을 둘 이유가 뭔가.

그뿐만 아니라 의원들이 엉터리로 사용하는 예산들을 대폭 줄여야 한다. 특수활동비라든지 특정업무경비 같은 낭비예산도 줄여야 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지난 4일 YTN과 뉴스타파가 공동으로 보도한 것처럼 국회예산에는 원내 교섭단체 정책위원회에 지원하는 예산도 있는데, 이런 돈까지 엉터리 해외출장에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예산도 다 줄여야 한다.

시민들도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의원 숫자를 늘리는 데 반대하는 사이에도 국회예산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도 국회예산은 전년의 6400억원에서 6700억원대로 증가할 예정이다. 의원 숫자가 많아지는 데 반대하는 사이에 우리 세금은 더 낭비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발상을 바꿔야 한다. 의원 연봉을 삭감하고 의원 숫자를 늘려야 한다. '지금 연봉을 깎았다가 나중에 다시 올리면 어떻게 하느냐'라고 걱정하는 분도 있다. 이 문제는 앞으로 국회의원 연봉을 독립기구에서 정하도록 하면 된다. 영국이 그렇게 하고 있다.

물론 지금 의원들은 그렇게 하기 싫어할 것이다. 그럴수록 새로운 정치세력이 국회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국회와 정치문화가 바뀐다. 그것을 위해서는 의원 숫자를 늘리고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의원 숫자를 늘려서라도 선거제도 개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 정치를 바꾸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천했던 노 전 대통령의 생각이 옳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haha96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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