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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버티고’, 우리를 응원하고 위로하는 한 마디의 진심
한 여자 그리고 두 남자 관계, 그 속에서 ‘버티는 각자의 이유’
각자 상처와 이유, 버티는 삶의 목적 달라도 ‘응원-위로’ 시선
2019-10-15 00:13:10 2019-10-15 00:13:1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버티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해 버티는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버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버티는 것에 대한 삶의 고단함은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영화 버티고속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삶이 그랬다. 이들은 각각 다른 이유로 살아가고 싶어했다. 버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있지만 그들은 버텨야만 한다.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각자의 삶을 버티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 고통은 아픔을 주진 않는다. 사실 우리가 모두 버티는 삶 속에서 이유를 찾는 것이라면 이 영화 속 한 여자와 두 남자의 각기 다른 삶의 버팀을 받아 들이면서 위로를 느끼고 그 위로 속에서 버텨야 하는 진짜 삶의 동력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화 버티고의 이유이자 궁극적인 위로의 진심이다.
 
 
 
세 사람이 등장한다. 먼저 서영이다. 슬픔이 묻어있는 얼굴이다. 애써 웃으려 한다. ‘애써는 본인은 모르는 감정이다. 그를 바라보는 관객의 감정이다. 서영은 자신의 내면 속 상처를 숨기고 싶다. 그래서 사람에게 집착한다. 매달린다. 그 남자와의 사랑이 육체가 됐던 정신이 됐던 그건 슬픔을 묻어 버릴 수 있는 도피처다. 아무도 없는 불 꺼진 사무실에서의 섹스가 그에겐 버티고 있단 증거다. 섹스와 함께 눈에 비친 풍경은 고요하다. 몸은 뜨겁다. 하지만 정신은 차갑다. 그의 눈은 육체의 반응을 따라가지 않는다. 그의 육체를 탐하는 남자의 손길을 느끼지 않는다. 서영은 이 건물에 갇힌 물고기일 뿐이다. 어항 속에 갇힌 물고기다. 사방이 꽉 막힌 어항 속에 사는 물고기에게 세상은 그 어항이 전부다. 서영에게 세상은 버텨야 할 이유가 아니다. 살아가야 할 이유도 버티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섹스와 그 섹스의 상대가 이유가 아니다. 그의 눈은 세상을 향하고 있다. 섹스 이후 거리로 나온다. “오늘 하루도 잘 버텼다. 거리는 튼튼하다. 이제 안심이다.” 이 한 마디가 서영의 진심이다. 그저 버티고 있단 것에 대한 지금을 확인하고 싶었다.
 
사실 서영은 버티기 힘들다. 그가 버틸 수 있는 공간은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회사다. 스스로의 존재가 증명되는 공간이 바로 회사다. 자신의 진짜 공간인 오피스텔 원룸에선 버티기 힘들다. 아버지와 이혼 후 다른 남자와 사는 엄마의 푸념은 휴대폰 넘어 그를 찌른다. 고통스럽다. 스스로도 버티기 힘든 상황에서 서영은 버티는 삶과 버텨야 할 삶의 경계선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영화 '버티고' 스틸. 사진/(주)트리플픽쳐스
 
다시 회사다. 가장 먼저 출근하는 서영이다. 자신을 가둬놓는 어항 같은 회사다. 하지만 어항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서영이다. 그 공간에서 서영은 아주 조금 힘을 낼 수 있다. 실낱 같은 활기를 낸다. 섹스의 대상이던 회사 과장 진수가 눈에 띈다. 두 사람은 동료들의 눈을 피해 비밀 연애 중이다. 서영은 현실에서 벗어날 이유를 진수에게서 찾고 있다. 진수와의 사랑 그리고 섹스가 그에겐 돌파구이자 탈출구다. 섹스와 사랑의 경계를 흐리게 만드는 감정은 서영과 진수 두 사람의 관계다. 공개될 수 없는 이들의 관계는 그래서 버티는 삶의 이유가 되는 것에 위태로움을 더한다.
 
위태로움은 불안하다. 불안함은 언제나 빠르게 다가온다. 진수가 서영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밀어내는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서영의 감정이 관객의 감정이다. 이유가 등장하지 않는다. 갑자기 찾아온다. 혼란스럽다. 하지만 이유를 모르겠다. 서영의 감정이 흔들릴수록 주변은 더욱 소란스럽다. 회사 동료들의 수근거림, 서영 엄마의 푸념, 때때로 찾아오는 서영의 이명. 서영은 버티기 힘든 상황 속에서 안간힘을 내고 버티고 있다. 그런 서영의 모습을 바라보는 한 사람이 있다. 서영의 회사 건물 고층 외벽을 청소하는 로프공 관우다. 서영은 지금도 거대한 어항에 갇혀 이리저리 헤엄치는 물고기다. 그 외벽 너머 위태로운 한 가닥 줄에 매달린 관우는 그런 서영이 안쓰럽다. 서영의 안간힘은 관우의 불안함과 교차되는 감정이다. 서영의 안간힘은 관우에겐 익숙하다. 행복했던 가족이었던 듯싶다. 하지만 어느 날 누나가 죽었다. 누나의 죽음은 관우에게 불안함을 안겼다. 관우의 불안함은 외로움이 됐다. 외로움은 관심을 이끌어 낸다. 관우는 자신의 눈에 비친 서영의 버팀에서 외로움을 봤다. 그 외로움이 관심이 됐다. 이제 관우가 버텨야 할 이유는 관심이고 그 관심은 서영이다.
 
영화 '버티고' 스틸. 사진/(주)트리플픽쳐스
 
서영 그리고 진수 그리고 관우. 이들 세 사람은 우리의 모습이다. 이들 세 사람은 드러낼 수 없는 아픔을 갖고 있다. 서영은 삐뚤어진 가족애 속에서 자라온 삶의 목적성이 일반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버렸다. 그는 평범하고 싶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괴롭히는 현기증(VERTIGO) 나는 일상성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진수는 일상성의 탈출을 통해 진짜 본인에 대한 부정을 선택하고 싶었다. 관우는 오히려 스스로를 열어 버린 가능성의 무게가 폭력이 됐다. 그 폭력은 누나의 죽음을 바라본 뒤 자신을 가둬 버린 시간이 됐다.
 
어렵다. ‘버티고는 어렵고 힘들다. 하루 하루가 일기예보 날씨처럼 명확하지도, 때로는 어긋나는 삶이라면 흐름의 변화 속에서 새로움을 추구할 수 있을 듯싶다. 하지만 우리 삶이 어찌 그런가. 똑같은 일상의 반복 속에서 변화를 추구하지만 그 변화의 동력은 언제나 상처의 아픔에서 고개를 쳐들 뿐이다. 그 상처가 아프고, 그 아픔이 고통스럽다면 대면하고 바라보는 삶의 버팀이 버틸 수 없는 해답을 가져온다는 것이 영화 버티고의 대답인 듯싶다. 물론 그것을 제시하는 게 영화 버티고의 결말은 아니다.
 
영화 '버티고' 스틸. 사진/(주)트리플픽쳐스
 
버티지 못하면 포기뿐이다. 버텨야 하기에 안간힘을 쓰고 붙잡고 있던 삶의 의욕은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있다. 그것을 놓아 버리면 추락할 뿐이다. 추락하는 것은 결국 죽음이다. 현기증 나는 삶의 버팀이 고통스럽고, 스스로의 존재를 부정해서라도 진짜 자아를 찾아야 하는 삶의 목적이 증명된다고 해도 자신을 가둬버리는 가능성의 포기는 우리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영화 '버티고' 스틸. 사진/(주)트리플픽쳐스
 
영화 버티고는 그래서 위로를 건 낸다. 버티고 있는 당신의 삶을 위로한다. 절대 떨어지게 놔두지 않는다고. ‘버티는당신에게 건 내는 버티고의 위로는 진심이다. 버티고 있는 당신에게 건 내는 위로이자 응원이다. 절대로 무너지지는 말자. 버티면서 삶을 응시하고 또 바라보자. 이게 영화 버티고의 버티는 이유에 대한 해답이다. 이 영화의 위로와 응원은 진심이다. 개봉은 10 17.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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