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인터뷰)‘판소리 복서’ 엄태구 “너무 이상한데, 그게 끌려요”
“너무 재미있게 본 단편, 장편 주인공 누굴까 싶었는데 나한테”
“‘판소리+복싱’ 대부분 롱테이크 촬영…복싱? 너무 힘들었다”
2019-10-13 00:00:00 2019-10-13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허스키한 목소리, 그리고 각진 얼굴. 누가 봐도 착한 구석이라곤 없다. 눈을 씻고 찾아 보려고 해도 없다. 이 배우가 대중들에게 얼굴을 제대로 알린 작품은 2016년 김지운 감독의 밀정’. 친일파 고등계 형사 하시모토’. 그 유명한 장갑 따귀의 주인공. 그냥 나쁜 남자가 아니다. 그냥 나쁜 놈이다. 본질적으로 나쁜 인간이다. 누가 봐도 이 배우, 엄태구는 나쁜 사람이다. 그런데 아는 사람은 안다. 벌레 한 마리 제대로 죽이지도 못할 만큼 심약한 심성의 소유자다. 충무로 배우들 사이에선 아주 유명하다. 험상궂게 생긴 외모와 귀를 거슬리게 하는 목소리는 상대를 움츠리게 만든다. 하지만 엄태구는 극도로 심성이 고운 남자다. 이건 명백한 사실이다. 그와 함께 작업을 한 배우들은 도대체 어떻게 연기를 하는 배우가 됐는지 모를 정도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다. 물론 엄태구의 연기 실력은 이제 충무로 최고라고 해도 절대 과언은 아니다. 그래서 이 배우는 정말 엇박그 차제다. 외모와 연기가 선입견이 제대로 맞물리질 않는다. 어쩌면 영화 판소리 복서의 병구는 엄태구를 위한 배역이었는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배우 엄태구. 사진/CGV아트하우스
 
영화 개봉을 며칠 앞두고 만난 엄태구는 이미 방송과 영화 관계자 그리고 주변 배우 동료들의 전언처럼 부끄러워하고 조심스러워하며 또 심약하다고 느낄 정도로 인터뷰어에 대한 예의가 넘쳤다. 질문 하나하나에 고민고민하고 조심스럽게 대답을 했다. 조금이라도 실수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대답의 템포를 늦추고 또 늦췄다. 엄태구 측 관계자는 저 모습이 바로 엄태구다고 웃었다. ‘판소리 복서의 병구가 그대로 스크린 밖으로 나온 모습이었다.
 
정혁기 감독의 단편 뎀프시 롤: 참회록의 팬이었어요. 너무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었죠. 이 단편이 장편으로 만들어 진단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뻤어요. ‘혹시 나한테 제의가 올까란 생각은 해본 적도 없어요. 그저 누가 할까란 궁금증은 있었죠. 그런데 제게 제안이 와서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단편의 주인공인 배우 조현철씨가 주인공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는데 감독님이 태구씨가 잘 할 것 같다고 하셔서 도전했죠.”
 
단편은 사실 되게 이상한 내용이었다. 이번 장편 역시 이상하다. 여기서 이상하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도저히 교집합이라곤 보이지 않는 복싱판소리를 결합한 내용이다. 내용의 흐름과 리듬감 역시 완벽하게 엇박자로 논다. 그냥 이 영화는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상한느낌이다. 엄태구는 딱 그 단어를 선택했다. 그 단어가 너무도 좋게 다가왔다고.
 
배우 엄태구. 사진/CGV아트하우스
 
, 맞아요. 그 이상한 게 너무 좋았고 끌렸죠. 이상하게 웃긴 데 슬퍼요. 또 이상하게 슬픈 데 웃겨요. 쟤네 뭐하고 있는 거야. 이런 느낌이 묘하게 끌렸어요.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그냥 제 취향이 이 영화와 맞았나 봐요. 제가 느꼈던 이 기묘하고 이상한 기분을 관객 분들도 느끼시면 흥미롭고 재미있게 영화를 관람하실 수 있을 것 같았죠.”
 
영화에서 엄태구가 연기한 병구는 현실과 환상을 오간다. 현실에서의 병구와 환상 속에서의 병구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감정 상태가 완벽하게 다르다. 현실에서의 감정도 다르다. 웃고 있는 병구, 웃음을 잃은 병구, 심각한 병구, 바보 같은 병구. 모든 장면에서 병구의 감정은 각기 다르다. 복싱 영화이기에 복싱 장면에서의 감정도 전혀 다르다. 배우 입장에서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어렵다고 생각하면 정말 어렵게 되더라고요. 이번 영화에서 제가 주안점을 둔 것은 상황이었어요. 그걸 제일 크게 생각하고 접근했어요. 바로 직전 상황에서 뭐했지? 내가 어떤 상황이었지? 그걸 생각하며 연기를 했어요. 그 상황을 잡고 감독님이 조금 더 디테일하게 디렉션을 주셨죠. 복싱 장면도 마찬가지였어요. 매 라운드 별로 감정이 다르니 좀 힘들기는 했어요. 감독님이 원하는 것에 무술 감독님이 주신 걸 더했죠. 그렇게 저와 감독님 무술감독님이 함께 만들어 나갔어요.”
 
배우 엄태구. 사진/CGV아트하우스
 
영화에서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지만 주된 정서는 코미디와 휴먼이다. 엄태구는 구체적으로 판소리 복서의 정서를 휴먼 드라마로 규정했다. 그 안에서 웃고 울리고 때로는 넋을 빼놓기도 한다. 장구 장단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은 엇박자로 어긋나면서 복싱과 기묘하게 결합을 한다. 그런 감정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었던 것은 상대역인 혜리와의 호흡도 큰 몫을 했다.
 
너무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이런 장르에서 상대의 기운은 정말 중요해요. 혜리는 정말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친구에요. 보통 현장에서 배우들은 촬영할 때와 촬영 안 할 때의 에너지가 거의 달라요. 그런데 혜리는 똑같더라고요. 카메라 앞이나 뒤에서 모두 혜리가 저 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들 스태프 전체에게 준 영향이 엄청나요. 전 진짜 혜리에게 업혀서 간 거나 다름 없어요(웃음)”
 
가장 눈길을 끄는 점은 아무래도 복싱 장면이다. 직접적으로 엄태구가 링에 올라서 복싱을 하는 모습은 영화 하이라이트 부분에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 중간중간 혼자 쉐도우 복싱을 하고, 영화 오프닝에선 바닷가에서 동틀녘을 배경으로 멋진 장면을 연출해 내기도 했다. 단순하게 흉내를 내는 게 아니라 제대로 멋들어지게 복싱을 해낸다. 꽤 오랜 시간 연습을 했던 듯싶다.
 
배우 엄태구. 사진/CGV아트하우스
 
영화 촬영 전 2~3개월 정도 꾸준히 배웠어요. 진짜 복싱을 배우면서 복싱 선수들을 존경하게 됐어요. 정말 너무 힘들어요. 죽을 만큼 힘들어요. 처음에 제가 좀 의욕이 과했던 것 같아요. 목표를 너무 높게 잡고 시작했죠. 진짜 선수들이 봐도 가짜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거든요. 운동을 거의 안 하던 사람이 하루에 5시간 정도를 했으니 당연히 몸에 무리가 왔죠. 몸 안에 염증 수치가 치솟아서 고생했어요. 지금 원상 복귀 됐습니다(웃음)”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가장 궁금한 것은 판소리 복싱이었을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 병구의 마지막 희망이자 꿈이 판소리 복싱의 완성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도 않은 복싱과 판소리가 결합을 한다. 영화에선 병구의 연인 지연(이설)이 장구를 치고 그 장단에 맞춰 복싱 선수인 병구가 스텝을 밟는다. 이 기묘한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 일까.
 
하하하. 저도 너무 궁금했죠. 감독님이 단편의 주인공인 조현철 배우와 대학 동기에요. 어느 날 운동장에서 누군가 판소리를 하는 데 그때 현철씨가 복싱을 취미로 배우고 있던 시기였대요. 그 판소리 장단에 쉐도우 복싱을 했대요.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단편을 구상하고 이번 장편까지 이어진 거죠. 판소리 복싱 장면은 영화에서 거의 롱테이크로 찍었어요. 너무 힘들어서 한 테이크를 찍고 나면 거의 쓰러질 정도였죠.”
 
배우 엄태구. 사진/CGV아트하우스
 
엄태구는 이번 영화에서 자신의 최대 약점으로 지적되는 목소리 톤이 오히려 장점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극도로 허스키한 목소리가 병구의 어수룩한 모습과 결합돼 진정성 있게 표현이 됐다. 물론 데뷔 초기 엄태구를 세상에 알린 독립영화 잉투기속의 모습과 발성에서 분명히 진화했다. 지금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진화를 거듭하고 또 그 모든 것을 즐기면서 행복하게 이뤄가고 있는 엄태구다. 참고로 그의 친형은 엄태구 필모그래피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잉투기’ ‘가려진 시간을 연출한 엄태화 감독이다.
 
요즘도 계속 틈만 나면 성경책을 읽어요(웃음). 그게 참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뭐 아주 독실한 신자는 못되지만 꾸준히 교회를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지금은 이제 박훈정 감독의 낙원의 밤을 찍고 있는데, 평소 박 감독님의 느와르에 출연해 보고 싶었거든요. 지금 아주 제대로 즐기고 있습니다. 형은 불러주면 다시 출연하고 싶은데 글쎄요.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네요(웃음)”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