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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곤의 분석과 전망)이것이 적대적 공생이다
2019-10-14 06:00:00 2019-10-14 06:00:00
장관 후보 지명 때부터 셈하면 조국 장관 정국이 두 달을 훌쩍 넘겼다. 총선이나 대선을 제외하고 단일 인물에 관한 이슈가 이렇게 오래 진행되는 것은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조국 장관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광화문에, 지지하는 사람들은 서초동에 모였다. 숫자 공방이 있었지만 양쪽 다 족히 수십만 수준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도 찬반이 각각 수십만을 줄세웠다.
 
이에 대해 청와대 강정수 디지털센터장은 "법무부 장관의 임명 및 임명 철회의 권한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에게 있다"면서 "조 장관 임명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견이 국민청원으로 올라온 점에 대해 청와대는 앞으로의 국정운영에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건 사실 별 의미 없는 이야기다. 다만 강 센터장은 문 대통령이 조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절차적 요건을 모두 갖춘 상태에서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 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된다"라고 말했던 것을 재인용했다.
 
돌아보면 당시 문 대통령은 "공평과 공정의 가치에 대한 국민의 요구와 국민이 느끼는 상실감을 다시 한 번 절감해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며 "정부는 국민의 요구를 깊이 받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조국 법무부 장관이 검찰개혁'안'을 앞다퉈 내놓는 것을 제외하면 상황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아니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언론과 시민들의 갈등도 깊어졌고 내부 갈등이 불거진 언론사들도 많다.
 
여권, 특히 지도부에선 상황이 이렇게까지 진행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조 장관에 대한 믿음 보다는 야당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9월 초까지 초기 한달을 돌아보면 야당의 지지율은 거의 변화가 없거나 소폭 하락하는 모습이었다.
 
나경원, 장제원 의원의 자녀 문제가 불거졌고 블랙 코미디 같은 삭발이 이어졌다. 그런 까닭에 "에이 아무리 그래도 한국당은..."이라는 분위기가 유지됐다. 중도층 등 지지층 일부가 이탈하는 기미가 보이지만 야당 지지로 넘어가진 않은 것이란 '합리적 계산'은 여권 내부에서 공유됐다.
 
그런데 아무리 밑빠진 독이지만 물을 퍼부으니 물이 올라오긴 올라오고 있다.
 
개천절과 한글날 광화문 집회에서 변화가 나타났다. 물론 온갖 막말과 볼썽사나운 모습은 여전했고 극소수 인물들이 폭력을 행사했지만 가족 단위, 중년, 청년 참여자들이 흔하게 눈에 띄었다. 지난 9일 <오마이뉴스>는 개천절의 광화문 집회 통신데이터, 생활데이터로 분석한 결과를 보도했다. "최소 40만 이상이 모였고 이중 62.3%가 60대 이상이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보도를 역산해보면 '광화문 광장에 50대 이하가 최소 15만명 이상 모였다'는 결과물이 나온다.
 
'동원'으로는 불가능한 숫자다. 그리고 말발이 먹혀야 동원도 잘 되는 법이다. '박근혜는 죄가 없다'는 식의 소수 강경 우파는 여전히 자기 주장을 반복하고 있지만 조국 장관에 반대하는 단일한 요구가 모이면서 우파가 확장성을 갖게 된 것이다. 3일 집회 흥행 성공의 기운이 이어진 9일 집회에선 폭력적 모습도 거의 안 보였다.
 
이러다 보니 한국당의 지지율도 슬금 슬금 올라왔다. 여론조사기관 마다 차이는 있지만 각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지도부 입에서 통합, 확장, 중도 이런 단어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여유가 생기다보니 장외 집회도 일단은 중단한다고 한다.
 
한국당 덕에 민주당이 버텼고, 민주당 덕에 한국당이 살아나는 형국이다.
 
신경림의 시 '파장'의 첫 연은 이렇다.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 목로에 앉아 먹걸리를 들이키면/ 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taegonyou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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