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초심으로 돌아가자
입력 : 2019-10-08 06:00:00 수정 : 2019-10-08 06:00:00
민주주의는 과연 위기에 처했나. 알렉시스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이 칭송했던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고 그를 대체할 민주당 대선주자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영국의 민주주의는 어떠한가. 브렉시트로 혼돈에 빠져 3년 이상을 허우적대고 있지만 아직도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프랑스 민주주의라고 해서 별다르지 않다. 노란조끼운동 기세는 한풀 꺾였지만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럼 한국은 어떠한가. 이른바 ‘조국 정국’으로 인해 쪼개진 진보와 보수진영은 2개월 넘게 격렬히 싸우며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갈등양상을 빚고 있다.
 
위기를 극복할 해법은 무엇일까. 국가별로 사안이 모두 다르니 단일 해답을 제시하기는 무척 어렵다. 다만 프랑스의 경우 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국민참여를 확대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도입하고 있다. 위기에서 얻은 교훈이 프랑스 민주주의를 성숙하게 만드는 것일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하고 반년도 안 돼 노란조끼운동이라는 폭발적인 시민운동에 직면해야 했다. 폭력이 난무하고 곳곳이 불타 프랑스 대혁명기의 자크리운동(농민운동)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제5공화국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마크롱 대통령은 수습할 방안을 찾기 위해 깊은 고민에 빠졌고, 결국 국민과의 대토론을 시작했다. 와이셔츠를 걷어 부친 채 전국을 돌며 시민들을 만나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과 정치엘리트 간 괴리는 무엇인지 파악하는데 주력했다. 3개월간의 토론을 마치고 마크롱 대통령은 통치스타일을 바꾸기 시작했다. 정부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방법론을 도입했다.
 
뮈리엘 페니코드(Muriel Penicaud) 노동부 장관은 BFM TV와의 인터뷰에서 “(국민 대토론에서) 우리는 몇 가지를 배웠다. 참여민주주의에 있어 한걸음 더 나가야 한다. 시민들은 이제 더 이상 선출직들에게 위임하려 들지 않고 그들 스스로가 더욱 동참하길 원한다”라는 말로 지난 5일 시작한 정부의 새 방법론을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프랑스 정부는 우선 두 가지를 시도하고 있다. 먼저 기후변화를 협의하기 위해 시민과의 미팅을 6주 간 연다. 이는 지난 4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약속한 것이다. 추첨으로 150여명의 시민을 뽑아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해결책을 찾도록 연구하게 하고, 그들이 내놓은 제안들은 “국회나 국민투표를 통해 채택하거나, 아니면 곧바로 행정명령으로 처리될 것이다”라고 페니코드 장관은 밝혔다. 에두아르 필리프(Edouard Philippe) 수상은 “2020년 초부터 적용될 연금개혁을 위해 시민들이 온라인으로 상담할 수 있는 방법을 설치했다”고 발표했다.
 
이 두 가지 조치는 마크롱 대통령이 국민 대토론을 통해 행정부가 국민과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어 이뤄진 것이다. 특히 기후변화를 위한 시민과의 미팅은 협의체를 설치하고, 정부가 홈페이지를 통해 관련 내용을 발표하는 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는 마크롱 대통령 임기 초반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노란조끼운동이 일어나기 전까지 마크롱 대통령은 시민들 앞에서 주피터처럼 도도하고 위계적이었다. 오죽했으면 프랑스 언론이 마크롱 대통령에게 ‘주피터(Jupiter)’라는 별명을 달아줬겠는가.
 
브뤼노 코트레스(Bruno Caitres) 시앙스포 교수는 “마크롱은 노란조끼운동으로 정국이 미궁에 빠지자 해법을 찾기 위해 국민 대토론을 벌였고, 이를 통해 지난 대선에 임하던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하게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치학자인 레미 르페브르(Remi Lefebvre) 역시 “물론 에마뉘엘 마크롱은 포스트 노란조끼운동의 새로운 모습을 보이려는 염원이 컸다. 마크롱은 대선을 치룬 ‘전진(En Marche)’에서 영감을 다시 얻었다. 그 동안 프랑스 사회에서는 몇 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노란조끼운동을 보라. 이 운동은 휘발유값 인상으로 촉발되긴 했지만 시민발의 국민투표(RIC)를 제안하는 단계에까지 이르지 않았는가. 이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열망인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르페브르는 이 협의체가 프랑스에서는 아직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정치과정이라며 새로운 형식의 민주주의를 보고 있다고 흥분했다.
 
프랑스 제5공화국 역사상 정치경험이 가장 짧은 마크롱 대통령이 위기로 퇴진하나 싶었지만 결국 시민들을 만나며 초심을 찾고, 자신의 잘못된 통치스타일을 수정하는 모습은 역시 프랑스 민주주의의 역사를 대변한다. 여기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지 아니할 수 없다. 촛불혁명으로 일궈낸 한국 민주주의는 정쟁으로 답보상태, 아니 퇴보 위기에 서있다. 서초동과 광화문으로 나뉘어 숫자 싸움을 벌이기 바쁘다. 이러다가 나라꼴은 어떻게 될지 걱정이 앞선다.
 
물론 이 문제로 고심이 큰 건 그 누구보다도 문재인 대통령일 것이다. 청와대가 나서서 보수층들과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고 타협해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 2년5개월 전 대선기간 중 “진보만의 대통령이 아닌 온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던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분명 해답이 보일 것이다. 촛불정부가 민주주의를 퇴보시켰다는 오명을 써서야 되겠는가.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 최한영

정치권 이모저모를 소개합니다

  • 뉴스카페
  • email
  • face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