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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기획2050)24-평화국가를 위한 문명론적 접근
한국, 중국문명 유입과 서구문명 수용 등 2번의 '융합문명' 경험
'문명의 충돌' 중재할 초협력적·평화공존의 문화역량 요구
2019-07-08 07:00:00 2019-07-08 07:00:00
글로벌 평화국가론의 핵심적 개념은 '문화적 다양성 속의 평화'와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21세기 평화'라는 담론은 국가 사이의 전쟁과 평화를 넘어 개인과 공동체, 대륙, 문명 등에 다차원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는 조화로운 다양성을 통해 평화를 만드는 것이다. 21세기 지구적 과제는 기후변화 등 환경문제 대응 등 보다 긴밀한 글로벌 거버넌스를 문화적 다양성 속에서 준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개별 국가나 문명 단위의 소통과 협력을 넘어 문화적 다양성을 기초로 지구적 규범에 기반한 평화를 구축하는 게 지구적 현안으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다양성 속 평화와 글로벌 융합문명 중심지 전략

평화국가론은 문화적 다양성과 글로벌 융합문명의 개념을 기반으로 한다. 21세기는 하나의 세계와 다양한 문화(One World, Multi Culture)의 시대로, 20세기의 국가 간 협력이 아니라 하나의 지구적 규범이 새로운 형식으로 모색되는 단계다. 국가 간 협의체인 국제연합(UN) 체제를 넘어설 초기적 형태의 세계정부에 대한 모색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융합문명은 자연 생태계와 같이 문화적 다양성 속에서 규범적 통일성 추구한다. 대한민국의 평화국가 전략은 21세기의 문화적 다양성에 기초한 평화와 이를 통한 글로벌 융합문명 출현에서 선도적 역할을 모색하는 것이다.

글로벌 평화국가론에서 대한민국의 공간 전략은 글로벌 융합문명 중심지가 되는 안이다. 한국문명은 태반문명을 기반해 2번의 세계화를 거쳐 왔다. 유목민족 계열의 고유한 태반문명을 형성하다가 고조선 후반기 한나라에 의한 한사군 설치로 중국문명이 유입되면서 1차 세계화를 겪었다. 2차 세계화는 19세기 서세동점의 시기에 서구문명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진행됐다. 한국문명은 이 과정을 거쳐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과 봉건적 동아시아 천하체제의 붕괴라는 독특한 경험을 얻게 됐다. 
 
세계는 미국문명과 중국문명의 충돌로 전쟁을 포함한 새로운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플리커
 
이런 경험 덕분에 한국문명은 융합문명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받는다. 한국문명은 동아시아의 문명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서구의 문명을 잘 융합하면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후 근대화에 성공했으나 서구의 종교 등을 받아들이는 수용성에선 적극성이 부족했다.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로 인해 서구의 문화적 다양성이나 정신문화를 수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 반면 한국문명은 서구문명의 물질적인 근대성뿐만 아니라 정신적 가치도 대담하게 수용했다. 예컨대  조선후기부터 서구 종교인 가톨릭이 수용되고 해방 이후엔 가톨릭과 개신교가 주류 종교로 성장했다. 한국문명은 서구의 가치인 인권, 민주주의, 평화 등도 동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선도적으로 수용했다.

21세기 문명융합의 시대에 한국이 글로벌 문명의 중심지로 성장할 가능성이 큰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서구의 주류적 문명충돌론은 제국의 변경에서 문명의 단층선이 생겨나고, 단층성에서 문명 간의 갈등이 생기고 극단적인 경우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페르시아 전쟁 이후 신흥 강국 아테네와 전통 강국 스파르타의 충돌에 의해 발생했다고 본다. 2018년 그레이엄 앨리슨은 쓴 '예정된 전쟁(Destined for War)'이라는 책에선 미국문명과 중국문명의 충돌로 두 문명의 단층선인 한반도에서 전쟁의 발생할 가능성을 제기했다. 투키디데스와 아놀드 토인비, 새뮤얼 헌팅턴 등은 문명의 충돌로 제국의 변경에서 갈등이 격화되고 전쟁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7세기 이븐 할둔은 제국이나 문명의 변경에서 새로운 문명이 탄생한다고 보았다. 한국문명은 미국과 중국문명의 충돌 속에서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갖고 있는 셈이다. 두 문명의 갈등과 충돌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지만 두 패권국가의 문명 단층선에서 융합적인 문명의 생성될 수 있다는 말이다.
 
21세기 지구적 문명으로서 세계 융합문명 구상

개별 국가가 아닌 문명으로 보는 21세기는 문화적 다양성 속에선 하나의 새로운 글로벌 융합문명이 생성되어 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 융합문명은 개별 문명의 총합이 아니라 보다 상위개념의 규범을 생성하면서 진화할 것으로 관측된다. 21세기 인류문명은 하나의 초협력사회로 진화하고 있다. 인류는 수렵채집의 시대의 작은 협력을 시작으로 20세기에선 수백만의 도시와 국가적 협력으로 진화했다. 앞으로 21세기는 이를 넘어선 초협력사회로 진입할 것이 분명하다.
 
한국문명은 동아시아문명과 서구문명을 기반으로 해서 21세기 글로벌 융합문명으로 성장할 잠재성을 충분히 갖고 있다.
 
초협력사회는 문화적 다양성 속에서 개별적 문명을 넘어서는 새로운 글로벌 융합문명의 규범을 생성하고 있다. 하드파워보다 소프트파워가 더 중요해지고 국력의 원천도 정치·군사적인 것 못지않게 문화와 스포츠 등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패권주의와 달리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융합문명의 출현은 새로운 문명의 표준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문명은 역사적으로 두 번의 세계화를 거치면서 융합문명을 형성해 왔다. 고조선 이후 중국문명에 의한 세계화와 19세기 서구문명에 의한 세계화를 거치며 이질적 문명들을 하나의 융합문명으로 정착시키고 진화했다. 이 경험을 기초로 21세기 보편적 글로벌 융합문명의 규범을 선도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보여준 글로벌 소프트파워 역량과 방탄소년단 등 한류 컨텐츠의 글로벌 경쟁력 등을 고려한다면 한국문명은 글로벌 융합문명으로 성장하는 잠재력이 많다. 글로벌 융합문명은 초협력사회를 통해 진화할 것이며 20세기 문명 충돌의 가장 첨예한 갈등인 이슬람문명과 서구문명을 중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문명의 출현을 요구한다. 한국문명은 다종교 사회에서 극단적 갈등없이 평화공존의 문화역량을 갖추고 있다. 이슬람과 서구의 문명갈등에 중재적 역할을 모색할 수 있다. 문명 간 대화를 끌어내는 규범을 진화적으로 만들어 가면서 글로벌 융합문명의 중심지 전략을 국가전략으로 고려할 만하다. 

글로벌 거버넌스를 위한 평화국가론

평화국가론에선 3개의 동심원 전략이 그 토대가 될 수 있다. 3개의 동심원은 한반도와 아시아, 글로벌 공동체로 의미하며 각 동심원에 따른 특성과 중요성의 차이에 맞춘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동심원의 중심에 위치한 대한민국과 긴밀히 연계되는 구상이 필수적이며, 한반도는 중장기적으로 평화에 근거한 하나의 공동체로 사유될 수 있다. 문명과 미래, 평화의 관점에서 21세기엔 19세기 제국주의와 달리 글로벌 공공재로서 연성적인 세계정부'의 평화국가론이 제시될 수 있다. 한반도 평화와 평창올림픽, 한류 확산 등은 대한민국이 개방형이고 능동적 세계화론을 제기할 계기로 활용 가능하다.  
 
한국의 글로벌 평화국가론은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와 글로벌 공동체까지 3개의 동심원 전략을 바탕으로 구상할 수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역사적으로 글로벌 평화국가론으로 참고할 수 있는 것은 캐나다의 건국정신이다. 캐나다 헌법엔 다양성 속의 평화국가로서 '평화와 복지 그리고 좋은 정부'를 제안했다. 미국 독립선언문이 해밀턴주의와 제퍼슨주의가 논쟁하면서 '생명과 자유 그리고 행복추구'의 가치를 제시한 것과 대조적이다. 캐나다의 헌법정신이 미국보다 다양성에 대한 고려를 더 많이 하게 된 것은 캐나다의 태생적 여건 탓이다. 퀘벡 등에 살고 있는 프랑스계와 앵글로색슨계가 전쟁이 아닌 공존을 모색하기 위한 헌법정신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캐나다  헌법은 최대한 주정부 간 분권과 자율성을 인정하고 있다.
 
캐나다의 헌법정신에선 평화국가를 위한 자치분권의 자율성 확대와 질서유지 조화에 주목할 만하다. 캐나다 헌법의 원칙들은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함으로써 영국인과 프랑스인의 통합에 기여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한국도 남북관계에서 70년 이상의 단절과 그로 인한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 다양성과 공존을 통한 중앙정부-지방정부 관계는 미래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신북방정책과 신남방정책에서도 철학적 기초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거버넌스에서 한국의 공간 전략을 구상할 때도 문명의 단층선에 있는 보편문명으로서 한국을 제안할 수 있다. 서구에선 미국문명과 중국문명의 갈등으로 단층선인 한반도에서 세계질서의 패권을 두고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 예고 중이다. 반면 제국의 변경에서 새로운 문명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글로벌 보편문명으로서 한국문명과 소프트파워 전략은 평화국가론의 핵심적 정책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문명은 동아시아문명과 서구문명을 기반으로 해서 21세기 글로벌 융합문명으로 성장할 잠재성을 충분히 갖췄다. 한국문명은 동아시아문명의 유교문화, 관료제 등 역사적 유산을 유지하면서도 서구문명으로부터 온 민주주의, 인권 등 근대 가치를 제도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된다. 이는 동아시아문명과 서구문명의 융합이며,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궤도로 산업화와 민주화에 동시에 성공한 문명사례다. 
 
한국문명이 가진 보편문명의 문화코드는 글로벌 거버넌스 수도전략의 핵심역량이다. 한국이 경험한 융합문명의 문화코드는 세계시민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으며, 서울이 글로벌 거버넌스 수도가 되는 데 핵심역량으로 작용할 것이다. 행정수도로 진화하고 있는 세종시는 '아시아 데이터 수도' 전략을 갖고 있으며, 글로벌 데이터경제에서 집적된 힘은 서울의 글로벌 거버넌스 수도 전략과 상호보완하면서 대한민국을 글로벌 보편문명의 중심지로 성장시키는 기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 필자 소개 : 필자는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다.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 행정학 석·박사를 수료하고 동대학 한국행정연구소와 국가리더십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경희대에서는 세계화와 사회정책 등 글로벌 어젠다와 동아시아문명의 국정운영을 연구 중이다. 또 문재인정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공공정책분과 위원장으로 국가 미래전략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30년 후의 국가비전을 모색하는 이번 기획은 격주로 총 15회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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