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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봉준호가 사랑한 ‘기생충’ 이정은의 무한 매력
“내가 최선 다할수록 ‘기생충’ 장르 무너진단 평 재미있더라”
‘국문광-오근세’ 부부 사연…“명훈씨와 정말 대화 많이 했다”
2019-06-18 00:00:00 2019-06-18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해당 기사에는 영화 기생충의 핵심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단언할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의 신작 기생충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개봉 이후 누적 관객 수 800만을 넘어섰다. 이 두 가지 결과의 가장 큰 이유가 봉 감독이 그토록 강조했던 이상함에 있었다고 하면 그 이상함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힘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배우 이정은의 힘이다. 이건 이견을 달 수 없는 지점이다. ‘기생충을 본 관객들은 이정은이 연기한 기생충속 기괴함에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평범하면서도 괴이하고 괴아하면서도 기괴한 캐릭터 톤은 희극과 비극의 극단을 넘어서며 기생충의 완벽한 색깔을 맞춰 낸 것에 화룡점정 역할을 담당했다. 얼굴은 워낙 낯이 익은 배우이다. 하지만 그의 이름 석자는 사실 너무도 낯설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 옥자에서 그는 CG캐릭터이자 주인공이던 돼지 옥자의 소리를 연기했다. ‘옥자이전에는 마더에서 대배우 김혜자와 드잡이를 하는 피해자 가족으로 등장했다. 두 작품의 인연 때문이었을까. 이정은은 기생충속 존재감에 대해 전작 두 작품에 대한 보은 차원이었던 것 같다고 농담을 했다. ‘기생충속 그의 캐릭터 이름 국문광처럼, 요상하고 이상한 그의 존재감처럼 인터뷰 내내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배우 이정은. 사진/윌엔터테인먼트
 
영화 개봉 이후 한 참이 지난 뒤 이정은과 만났다. 영화 속 그의 남편이자 존재 자체가 스포일러인 배우 박명훈과 마찬가지로 이정은 역시 스포일러에 해당하는 존재감을 자랑한다. 칸 영화제에서 레드카펫도 함께 밟았지만 드러내 놓고 자신을 홍보할 수는 없었다. 영화 전체의 흐름을 좌우할 키메이커 역할로서 등장한 이정은, 그리고 그가 연기한 국문광은 기괴함으로 다가오지만 의외로 귀여운 구석도 있는 인물이었다.
 
제가 의외로 귀여운 얼굴이에요(웃음) 그런데 이상한 역으로 화제를 모아서 참 기분이 묘해요. 하하하. 영화에서 인터폰 장면이 화제잖아요. 시나리오에는 술에 취한 문광이 상처를 입고란 설명으로 나와요. 이게 어떻게 보면 두서가 없는 설명이잖아요. 하하하. 전 그저 그 장면에서 최선을 다한 것인데 그 장면이 의외로 공포감을 만들었단 설명도 재미있었어요. 제가 최선을 다할 수록 장르의 붕괴점으로 다가선단 얘기가 독특했죠.”
 
봉준호 감독은 마더옥자에 이어 기생충에서 다시 한 번 이정은을 선택했다. 이정은의 기억대로라면 봉 감독은 그를 선택할 때마다 이상한 말을 전했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이상한 것을 시킬 것이란 것이다. 그래서 옥자에선 존재하지 않는 슈퍼 돼지 옥자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이번 기생충에서도 마찬가지였단다. ‘아주 이상한 영화라고 기생충을 소개하고 자신의 배역을 전했다는 것.
 
영화 '기생충' 스틸. 사진/CJ 엔터테인먼트
 
전 그 말이 되게 재미있었어요. 이상한 영화라고 하니 반대로 굉장히 흥미로울 것이라고 봤죠. 봉준호 감독이잖아요. 일종의 신비주의라고 해야 할까. 되게 관심이 생겼고 도전하고 싶었죠. 우선 기생충은 얘기 구조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부자와 가난한 자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존재. 그 충격이 공개됐을 때 관객들이 어느 정도로 충격을 받을까. 아주 흥미로운 작업이 되겠다 싶었죠. ‘기생충속 모든 배우들이 마찬가지였을 거에요.”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기생충속 그의 이름이다. ‘국문광이란 이름. 분명히 생소한 작명이다. 봉준호 감독이라면 어떤 뜻을 담고 있었을까. 주인공 기택네 가족이 모두 자 돌림이고 엄마가 충숙인 점은 기생충의 제목과 연관돼 있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 영화의 진짜 기생충인 국문광-오근세 부부의 이름에 얽힌 뒷얘기는 드러나지 않았다. 이름에 걸맞게 독특한 외모도 눈길을 끌었다. 부잣집 가사 도우미이지만 겉 모습은 안주인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외모는 이정은의 설정에서 시작됐다.
 
이름은 사실 감독님에게 안 물어봤어요. 물어보셔도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실 게 뻔해요(웃음). 문광의 문이 문(door)이랑 상관 있나. 문이 달(moon)인가 싶기도 하고요. 하하하. 외모는 가사 도우미이지만 우아함과 식견을 갖춘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어요. 실제로 제 주변에 박사장네처럼 엄청난 부잣집이 있는 데 그 집에 계신 분도 그래요. 그 분 뿐만 아니라 주변에 봐도 외제차 몰고 다니시고 출퇴근 하시는. 도대체 저 분은 어떤 인물일까. 그런 궁금증이 생겨야 실체가 드러날 때의 반전 충격이 클 것이라 생각했죠.”
 
배우 이정은. 사진/윌엔터테인먼트
 
진짜 반전은 박사장네 집 지하 벙커에 극중 자신의 남편 근세(박명훈)를 무려 4 3개월 17일이나 숨겨 생활해 왔던 것이다. 이 지하에 누구도 알지 못할 존재인 남편이 숨어 살았던 것이 기생충의 진짜 스포일러였다. 이 상황의 충격은 상당히 컸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근세의 존재가 드러난 뒤 국문광이 남편 근세에 처음으로 들이민 것에 대한 충격이다.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느낌마저 들었다.
 
제가 쫓겨나고 다시 찾아와서 지하 벙커로 내려가 남편에게 젖병을 물리잖아요. 근데 남편도 아주 능숙하게 그걸 빨고. 명훈씨하고 얘기를 많이 했는데. 문광에게 근세는 아기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4 3개월 17일 동안 남몰래 돌봐야 하는 존재. 남들 몰래 먹을 것을 먹어야 하고 키워야 하는 존재. 그런 존재가 쫄쫄 굶어서 쓰러져 있으니 빨리 뭘 먹일 수는 없고 뭐가 좋을까 싶다가 젖병을 떠올렸죠.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합당한 설정이라고 봤어요.”
 
또한 가장 궁금한 것이 이들 부부의 사연이다. 사채를 많이 써서 남편인 근세가 박사장네 지하 벙커에 숨어 들어왔다. 문광 역시 기택네 가족의 계획으로 박사장네 가사 도우미에서 해고된 뒤 쫓겨났다가 만신창이가 된 얼굴로 찾아왔다. 사채업자들에게 몹쓸 상황을 맞이하고 온 것이다. 이런 험악한 상황 속에서도 두 사람의 부부애는 상당히 애틋한 모습으로 설정돼 있었다.
 
영화 '기생충' 스틸. 사진/CJ 엔터테인먼트
 
되게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이라고 명훈씨와 설정했어요. 우선 문광-근세 부부에게 아이가 없잖아요. 그런데 관계가 너무 애틋해요. 그 원동력이 뭘까 명훈씨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도 이런 위험한 결정을 한 이유? 죽는 것 보단 사는 게 무조건 나으니까요. 그건 무조건 당연한 거잖아요. 만약 내가 반대 입장이라면 우리 남편은 어떻게 했을까. 당연히 똑같이 했겠죠. 주변에서도 보면 그런 분들이 많은 거 같아요. 어려울수록 더욱 애틋해지는.”
 
이정은은 기생충속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의외의 짧은 순간을 꼽았다. 워낙 유명한 명장면을 많이 만들어 낸 이정은의 존재감이라면 여러 포인트가 있지만 그의 눈에는 다른 지점이 마음에 들었다. 배우로서 이 작품 안에 온전히 들어가 있단 느낌을 받는 지점이 딱 한 순간 진짜로 느껴졌었단다.
 
기우(최우식)가 마신 커피잔을 들고 계단을 아주 건방지게 걷는 장면이 있어요. 별로 특별할 게 없는 순간인데 전 그 장면에서 짜릿했어요. 희열감이라고 할까. 나도 그 집에 얹혀 사는 주제에 내가 뭐라고. 겨우 가사 도우미로 일하면서 과외 교사 면접을 온 청년을 흘기면서 걷는 그 모습에서 뭔가 제가 이 작품에 붙는 희열이 느껴졌어요. 기정(박소담)이 저보고 빠져주세요. 아줌마할때도 묘하게 화가 났죠. 하하하. 그때 표정은 진짜 약간 수습이 안되는 표정이에요(웃음)”
 
배우 이정은. 사진/윌엔터테인먼트
 
연극 무대에서 활동하던 이정은은 정통 연기자 출신은 아니다. 연극 무대에서 연출을 준비하던 스태프였다. 조연출로 작품까지 소화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연기로 전향했다. 그래서인지 색깔이 뚜렷한 감독들의 부름을 많이 받는다. 이미 봉준호 감독은 가장 선호하고 신뢰하는 배우로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이정은은 꼽기도 했다.
 
영화 '기생충' 스틸. 사진/CJ 엔터테인먼트
 
글쎄요. 감독님이요? 하하하. 나랑 동갑이라서 그런가(웃음). 좋은 감독님들이 많이 찾아 주시는 건 정말 너무 고맙고 감사하죠. 그런데 공통적으로 느끼는 게 한 작품을 끝내고 나면 앞으로 또 작품을 할 수 있을까. 몇 작품이나 더 할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해요. 봉 감독님의 경우 촬영 때 오케이사인은 안주시면서도 항상 좋다고 하세요. 내가 틀렸나 싶기도 했죠. 뭐가 모자란 건가 싶기도 했고. 근데 그게 절 더 확장 시켜 주는 과정이었던 거 같아요. 결과를 떠나서 기생충처럼 절 확장 시킬 수 있는 작품을 또 한 번 만나보고 싶어요. 너무 즐거웠고 재미있었거든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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