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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투자자보호 때문에 이러는 거 맞죠?
2019-06-12 06:00:00 2019-06-12 06:00:00
고금리 발행어음 특판상품이 나왔기에 정기적금 삼아 저축하려고 근처 지점엘 방문했다. 이날 하루만에 준비한 금액이 완판됐다는데 점심시간에 찾은 모 지점은 한산했다. 아마도 다른 지점에 고객이 몰렸거나 거액이 들어왔나 보다. 
 
지난주 <세모이배월>에서도 적금처럼 소개한 상품이지만 그래도 사인해야 할 서류는 많았다. 직원이 내미는 서류마다 인적사항을 적고 사인을 반복했다. 작성한 서류가 몇 장인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많았다. 
 
원금 손실 위험이 낮지만 그렇다고 없는 것은 아니니까 ‘투자자 보호’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 서류엔 그 상품에 투자하는 데 따르는 위험 등 꼭 알아야 할 내용이 빼곡하게 적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다 읽어보고 사인하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다. 그냥 가리키는 곳에만 사인하는 데도 20~30분이 걸리는데, 내용을 전부 확인하고 모르는 것을 물어보며 가입하자면 족히 서너 시간은 걸리지 않을까? 직원들도 그걸 알기에 꼭 필요한 곳에만 형광펜을 그어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일 게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알아야 하고 알려야 할 내용은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는데 정작 투자자가 가입절차를 통해 취득하는 정보는 사실 별로 없다. 그래서 해당 상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가입했다가 나중에 거칠게 항의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로 인해 불신의 벽만 높아진다.
 
가입서류에 사인하느라 또 받느라 서로들 많이 수고하지만, 이걸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라고 받아들이는 고객은 많지 않다. 금융회사들이 책임을 면하기 위한 행정편의주의 쯤으로 여기는 쪽이 더 많을 것이다. 그보다 훨씬 위험한 투자에 대해 보이는 태도를 보면 그렇다.  
 
몇 년째 계속되고 있는 증권사들의 주식수수료 무료 이벤트는 이제 신용거래 이벤트와 함께 진행되고 있다. 신용거래는 일정 이자를 주고 투자자가 보유한 예수금 이상으로 주식을 살 수 있게 만든 제도다. 그렇게 매수한 주식이 오르면 레버러지 효과 덕분에 투자원금 대비 수익을 크게 불릴 수 있지만, 반대로 주가가 하락하면 원금이 팍팍 깎이다 못해 금세 반토막나게 된다. 
 
투자원금이 하나도 남지 않고 전액 손실이 난 계좌를 ‘깡통계좌’라고 부른다. 원금만 갖고 주식을 매매해서 일부러 0원을 만들려고 노력해도 그리 되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깡통계좌는 신용거래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증권사들은 현금 등 혜택을 내세워 신용거래를 하라며 홍보하고 있다. 
 
이자수익을 만들어 보려는 증권사의 노력을 깎아내리는 것이 절대 아니다. 투자자 보호가 증권사들의 편의에 의해 정의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얘기다.
 
위 증권사 지점을 나서기 전 여전히 이 증권사 ISA는 상장펀드를 매수할 때 전화로 주문해야 하는지 물었다. 그렇다고 한다. 이것도 투자자 보호 때문이라는데 여전히 이해는 안 된다. HTS로 해외주식도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게 열어놓은 마당에. 
 
금융당국은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가끔은 규제완화인지 행정 편의주의인지 헷갈릴 때도 있지만 아무렴 어떻겠는가. 그게 진짜로 투자자를 위한 것이기만 하다면야.
 
김창경 증권부장·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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