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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배심원들’ 문소리, 강단 있는 그의 마지막 판결
“배심원 제도 존재하는지 몰랐다. 판사 판결 중압감 엄청 나”
“박칼린에게 판사 말투 코칭 받아…영화 속 판결 오래 남길”
2019-05-14 00:00:00 2019-05-14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2002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 오아시스잔상이 아직도 강력하게 남아 있다. 당시 그의 모습은 실제 중증 뇌병변 지체 장애인을 착각하게 만들 정도였다. 더욱이 여배우였다. 온 몸이 뒤틀린 채 고통스러워하는 듯한 모습의 외면은 보는 이들조차 눈을 의심케 했다. 분명히 배우 문소리라고 했지만 문소리는 보이지 않았다. 영화 속의 중증 지체 장애인 힌공주만 있었다. 지난 해 개봉한 리틀 포레스트의 엄마 역할도 깊은 잔상을 남겼다. 딸을 두고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엄마.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사연이고 선택이었다. 하지만 문소리였다. 그의 연기는 딸을 위해 자신을 위해 삶의 바름을 이끌어 내고 삶의 옳음을 소리 없이 가르쳐 주는 엄마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서 문소리였다. 오는 15일 개봉하는 영화 베심원들에도 문소리는 등장한다. 원리 원칙주의자인 판사 김준겸이다. 이 배역은 사실 시나리오 초기 남자였다. 하지만 문소리의 합류로 여자로 변경됐다. 그만큼 문소리는 확실하다. 그가 등장하면 뭐가 됐든 설득이 된다. 이 영화가 문소리를 통해 관객들을 설득할 준비를 마쳤다.
 
배우 문소리.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문소리는 워낙 카리스마도 있고 강단도 있고 화통한 성격으로도 유명하다. 거침이 없다. 스스럼이 없다. 그래서 모두가 좋아하고 모두가 그의 연기에 매료가 됐다. 이창동 감독에게 데뷔 초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쳤으니 지금의 문소리가 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문소리 역시 맞장구를 치며 웃는다. ‘배심원들촬영 당시 박형식과의 에피소드로 인터뷰 시작을 알렸다.
 
형식이가 너무 잘해줬죠. 사실 형식이가 좀 당황을 많이 했었어요. 영화는 처음이라 진짜 촬영 초반에는 울려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초반에 진짜 별거 아닌 장면인데 테이크가 27번까지 갖죠. 나중에 눈빛으로 절 부르더라고요. ‘누나, 제가 뭘 잘못하고 있나요라고 묻는데 하하하. 제가 형식아 지금은 그냥 감독님도 톤을 맞춰가는 과정이야. 난 이창동 감독님과 작업 할 때 30~40번은 기본이었다라고 하니 그제서야 안심을 하더라고요. 하하하.”
 
박장대소로 시작한 인터뷰이지만 영화 내용이나 준비 과정은 자못 진지하고 웃을 수 만은 없는 과정이 많았다. 우선 문소리는 판사 역할이다. 법은 일반인에겐 어렵고도 또 어려운 지점이다. 더욱이 배심원이란 개념은 생소하기 그지 없다. 외국 영화의 법정 장면에서나 나오는 소재인줄로만 알았다. 문소리는 국내에서도 배심원 제도가 있단 것을 전혀 몰랐단다. 사실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만은.
 
배우 문소리.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전혀 몰랐죠. 우리도 배심원 제도가 있단 걸. 물론 영화에서처럼 판결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대요. 우선 재판을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가서 참관을 했죠. 법원 사이트에 들어가면 누구나 참관이 가능해요.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리고 판사님들도 만나봤죠. 각각 재판 스타일도 다르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분들도 사람이라 정말 형량이 높은 판결을 하고 나면 굉장히 괴롭다고 하세요. 자신의 판결로 한 사람의 인생이 결정 되는 거니.”
 
영화 베심원들은 엄마를 죽인 아들의 사건을 두고 배심원들과 재판부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는 과정을 그린다. 재판부는 법에 대한 익숙함으로 기능적인 판결을 한다. 반면 배심원들은 감성적으로 접근을 한다. 국내에서 2008년 실제로 처음 진행된 국민참여재판이 모티브가 된 영화이다. 당시에도 그랬을 듯싶었다. 앞서 만나본 실제 판사들도 같은 고민을 한단다. 문소리는 독특한 경험을 했다고.
 
제가 참관한 재판 중 하나가 성폭행 범죄 재판이었어요. 이례적이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 재판에 피의자를 보는 데 누가 봐도 딱 범인이에요. 저도 범인 같네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증인이 출석해서 피의자를 대변하는 말을 막 하더라고요. 그랬더니 어 아닌 거 같네란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피의자를 보니 되게 인상이 좋게 보였어요. 배심원들이 참석한 재판인데 또 배심원들 얘기를 들으니 아닌가싶고. 되게 헷갈리더라고요. 나중에 재판 결과를 전해 들었는데 무죄였데요. 정말 생소한 경험이었어요.”
 
배우 문소리.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그만큼 재판이란 행위 자체의 어려움은 실제 판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귀띔했다. 문소리가 만난 모든 판사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랬다고. 이런 경험은 영화 속 김준겸을 만들어 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머리를 짧게 한 중성적인 이미지, 강직하고 이견을 낼 수 없을 만큼 똑 부러지는 말투. 여기에 자신의 생각을 절대 굽히지 않는 고집까지. 누가 봐도 문소리의 모습은 판사 김준겸이라고 믿게 됐다. 이런 과정 속에서 큰 도움을 준 사람이 의외의 인물이었다.
 
김준겸은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재판정에 앉아만 있어야 하기 때문에 큰 동작이 없어요. 말투로 모든 감정과 연기를 대신해야 하기 때문에 억양이 아주 중요했어요. 그래서 도움을 많이 받은 분이 박칼린씨에요. 사실 저희 부부(장준환 감독-문소리)와 인연이 좀 깊으세요. 남편이 대학 시절 하숙을 할 때 주인집 자녀가 칼린 언니에요(웃음). 언니가 귀가 워낙 예민하잖아요. 전화로 언니 들어봐요라며 억양과 톤 조절을 코칭 받았죠. 진짜 도움 많이 주셨어요.”
 
열 번 이상 언급해도 부족함이 없는 대답처럼 다가온 말은 영화 속 대사인 법은 사람을 처벌하지 않기 위해 있는 것이란 말이었다. 문소리 역시 이 대사를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으로 꼽기도 했다. 그는 배심원들촬영 전과 촬영 후 달라진 자신의 생각을 설명할 대사로 이 부분을 꼽았다. 이유는 명확했다. 자신이 만나왔던 판사들의 경험과 영화 속에서 자신이 느낀 경험 때문이었다.
 
배우 문소리.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저 말이 사실 처음에는 말장난처럼 다가왔어요. 쉽게 다가오지 않았죠. 하지만 영화를 찍고 나서 진짜 인간이 인간을 심판한다는 게 가능할까 싶었죠. 신 만이 가능한 것 아닐까. 같이 살아가는 데 피해를 준 사람은 경고를 주거나 격리를 좀 시키고. 이런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나라도 영화이지만 판결에 무게감을 줘야겠다 싶었죠. 정말 판사님들의 무게감이 엄청나단 걸 다시 한 번 느꼈어요.”
 
그 무게감은 영화에서도 실제로 드러난다. 영화 마지막 판사 김준겸은 자신이 쓴 판결문을 내용을 뒤집어 버린다. 영화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지점이었다. 배심원들의 의견에 김준겸도 설득이 된 것일까. 결과적으로 뒤집힌 판결문으로 인해 사건은 해결이 된다. 판사가 내리는 판결의 무게감은 마지막 장면에서 오롯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배우 문소리.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마지막 장면을 두고 영화적이라고 오해하실 수도 있어요. 그런데 확실한 건 재판에서 판결은 판사의 말이에요. 판결문을 유죄라고 쓰고 말로선 무죄를 선고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실제 판결에서 그렇게 하신 분도 있다고 들었어요. 감독님이 정말 많은 준비를 하신 시나리오에요. 2008년 국민참여재판 시작 이후 수백 건의 국민참여재판 자료를 공부하시고 또 법대에 가서 한 학기 정도를 청강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영화적이고 당연히 영화이지만 영화 속 판결의 의미가 오래오래 관객 분들의 기억에 남았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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