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흐름으로 볼 때, 촛불혁명은 21세기 한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었다. 세계사적 의미에서도 새로운 민주주의의 등장을 알리는 주권자 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 내년 총선은 주권자 민주주의를 위한 헌법 개정이 가능토록 의회혁명을 추동하는 정치적 모멘텀이 될 수 있다. 2016년 촛불혁명과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을 통해 주권자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촛불개헌이 이루어져야 한다. 촛불혁명은 현재진행형이고, 총선은 또 하나의 분기점이 될 것이다. 혁명은 긴 호흡을 갖고 밀물과 썰물처럼 밀고 당기는 정치적 과정을 통해 한 걸음씩 변화해가는 과정이다. 촛불혁명 역시 단선적 과정이 아니라 혁명의 파고가 공세기와 수세기를 반복하면서 긴 호흡으로 변화해 간다.
2016년 11월26일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제5차 촛불집회가 서울 광화문에서 열렸다. 사진/뉴시스
촛불혁명 3주기…한국정치 과제는 현재진행형
올해 10월이면 촛불혁명 3주기가 된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정서적으로 촛불혁명은 오래된 사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정치적 격동기는 잦아들고 시민들은 일상으로 돌아가 언제 그런 거대한 사건이 있었느냐는 듯이 과거의 기억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탄핵의 대상이었던 정치세력도 탄핵 이전의 지지율로 거의 회복되고 있다. 촛불혁명 당시 소수세력으로 수세에 몰렸던 태극기부대가 지금은 가장 활발하게 광장에서 움직이는 정치세력이 됐다. 오히려 촛불세력이 휴화산처럼 비활동기에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시민적 공화주의의 화염은 주기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한국 정치의 중요 국면마다 재현될 것이다. 그 역사적 계기가 2020년 총선을 통한 개헌일 수 있다.
시민적 공화주의의 화염이 주기적이고 반복적일 것으로 예측하는 이유는 시민적 공화주의의 세계사적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한국의 짧은 공화주의 역사 속에서도 2008년 촛불집회 이후 10여년의 잠복기를 거쳐서 2016년에 다시 공화주의적 계기가 발화했다. 이런 역사적 계기가 내년 총선과 그 뒤 촛불개헌 국면에서도 나타날지 주목하게 된다.
총선 이후 촛불개헌 국면이 열린다면 그것은 어떤 개헌일까, 그 대답은 근대 공화정을 열었던 피렌체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근대 이후 민주주의는 크게 3단계로 변화하고 있다. 첫째는 1494년에 있던 피렌체 공화정의 직접 민주주의, 둘째는 영국의 청교도 혁명과 명예혁명 그리고 미국 독립전쟁 이후 나타난 대의제 민주주의, 셋째는 한국의 촛불혁명 이후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직접 민주주의다. 그러나 직접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보완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민주주의 역사의 긴 흐름으로 보면 촛불혁명으로 발화한 주권자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에 직접 민주주의 요소를 강화하는 것이다.
프랑스혁명 등 근대 시민혁명 이후 등장한 대의제 민주주의가 제도화되자 피렌체에서 시도된 직접 민주주의는 한동안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주변부로 밀려나게 됐다. 미국 독립선언의 기초가 된 '패더럴리스트 페이퍼(The Federalist Papers)'에서도 피렌체와 같은 작은 도시국가가 아닌 미국과 같은 영토국가에서도 민주주의가 가능한지 논쟁했다. 결론은 미국처럼 거대한 영토를 가진 나라에서도 민주주의가 가능하며, 그 방법은 간접 민주주의인 대의제를 도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18세기 이후 민주주의의 주류를 대의제와 간접 민주주의가 차지하게 됐다.
한국의 촛불혁명은 15~6세기 피렌체에서 발화한 시민적 공화주의, 17~18세기 영국과 미국, 프랑스 등 대서양 양안의 시민혁명에 이어 세 번째로 등장한 민주주의 패러다임의 변화다. 사진에 나오는 피렌체의 베키오궁전은 이 도시 지도자들이 회의를 열 때 사용한 건물이다. 사진/플리커
'촛불혁명 제도화'가 나아갈 민주주의 모습은?
촛불혁명은 영토국가에서도 간접 민주주의가 아니라 주권자가 스스로 결정하는 직접 민주주의가 발화하고 있음을 알린 사건이다. 촛불혁명 과정에서 광장으로 뛰쳐나왔던 1700만명의 시민들은 대의제를 통해 간접적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주권자로서 직접 대통령을 헌법적 절차에 따라 탄핵하고 새 대통령을 뽑았다. 지금도 정치적으로 가장 활발한 제도는 시민들이 국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대통령에게 요구사항을 알리는 '청와대 국민청원 제도'다. 촛불혁명 이후 민주주의가 변화한 모습이다.
촛불혁명이 대의제를 넘어서 어떤 민주주의로 나아갈 것인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삶의 질 지수에서 '시민참여' 분야를 확인하는 것으로 가능하다. OECD 삶의 질 지수에서 11개 분야 중 시민참여 분야는 다른 분야와 달리 독특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 11가지 분야 중 대부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국가들은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등 노르딕 복지국가와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등 대륙형 복지국가들이다. 그리고 분야에 따라선 영미권 국가 중 캐나다와 호주 등이 상위권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시민참여 분야에선 상위권 국가 목록에 앞서 언급한 나라들이 포함되지 않는다. 실제로 투표율에선 스위스가 38개 회원국 중에서 꼴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