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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혁신·벤처 스케일업 방정식의 해법
2019-05-03 00:00:00 2019-05-03 00:00:00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특히 혁신·벤처기업의 창업자는 거의 그럴 것이다. 5년 내 생존율이 20% 정도인 현실에서 아무리 뛰어난 아이디어와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선뜻 창업을 시작하고 나면 고난의 행군은 시작된다. 그래서 창업보다 안정적인 취업을 선택하는 젊은이가 압도적으로 많고 공시족이라는 말까지 나온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혁신·벤처기업에 대한 인식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또한 다양한 정책과 지원이 꾸준하게 시행됐다. 벤처투자를 전담하는 모태펀드를 중심으로 민간자금과 공적기금이 어우러진 매칭펀드가 원활하게 조성됐고, 스타트업을 위한 엔젤투자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시행하는 지원프로그램이 한편으로는 넘쳐나는 듯 보인다.
 
여기에 더해 올해부터 새로운 정책이 야심차게 추진될 예정이다. 이른바 데스밸리(death valley)를 넘어서서 유니콘(unicorn)으로 도약하기 위한 스케일업(scale-up) 프로그램이다. 자금을 조달받아 창업에 성공한 기업이 안정적인 상태로 정착하기 전, 창업 후 3년부터 7년 사이에 대부분 도산하는 현실을 빗댄 말이 데스밸리다. 그래서 가치가 1조원이 넘는 유니콘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지원 시스템이 스케일업 프로그램이다.
 
정부는 2022년까지 스케일업 전용펀드를 조성해서 12조원을 투자하고, 신규 벤처투자도 연 5조원으로 늘려서 제2의 벤처투자 붐을 조성할 것이라 발표했다. 더불어 M&A펀드도 조성하고, 유니콘 기업을 내년까지 20개로 늘릴 것이라고 한다. 아울러 규제 샌드박스도 확대하여 연내 100건 이상의 사례를 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실현 가능성을 떠나 진작 나왔어야 할 발표고 좋은 정책이지만 규모나 디테일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우선 스케일업 전용펀드의 규모가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이 될만큼 충분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올해를 포함해서 4년간 매년 3조원 정도를 스케일업 투자에 지원하겠다는 것으로 작년 기준 연간 국내 총투자의 2% 수준이다. 대기업의 잉여자금이 내부유보금으로 누적된지 오래됐고, 급기야 올해 1분기 투자 감소가 마이너스 성장의 주요 원인임을 감안하면 보다 큰 규모가 요구된다.
 
스케일업 프로그램은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보다 상대적으로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시장과 수익이 어느 정도 보이는 기업에 대한 수혈을 통해서 규모를 키우기 쉽기 때문이다. 다만, 유니콘은 비상장기업을 말하므로 지원초기에 자본시장으로 끌어들여 성장의 과실이 다수의 투자자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동안의 노력으로 벤처기업의 숫자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데스밸리를 넘어서는 기업이 늘어났지만 이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전체 규모가 적고 혜택이 고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니콘기업 20개라고 해도 20조원을 넘는 정도이므로 코스피시장(평균 시가총액 1조8000억원) 기준으로 보면 십여개사가 새로 생기는 꼴이다. 반면 코스닥 상장회사는 평균 규모가 1900억원으로 유니콘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국에서 들어온 유니콘이라는 용어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수많은 정책이 시행되고 다양한 혜택이 주어졌지만 혁신·벤처기업의 성공과 스케일업은 여전히 어렵다. 자금지원이 원활해도 다양한 이유로 기업은 성장의 한계치에 봉착한다. 협소한 국내시장과 해외시장 개척의 어려움, 대기업의 갑질, 기득권을 위한 규제가 기업을 궁지로 몰아 넣지만 경영진의 역량부족도 중요한 기업 실패의 원인이다. 한두가지 아이템으로 기업을 일궈도 새로운 기획 역량이 떨어지고, 규모가 커지면서 법률·회계 등에 대한 관리 능력에 한계가 오기 때문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멘토링·인큐베이팅 등의 이름으로 지원하는 여러 비영리기관의 역할이다. 아쉽게도 정부의 대책에는 이들 기관의 역할 강화와 지원이 빠져있다. 기관별 자율에 맡긴다는 취지라고 이해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특성상 이들의 역할을 강화해 기업의 부담을 줄이고 스케일업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혁신·벤처기업을 지원하는 이유는 결국 공정한 경제와 좋은 일자리 창출을 원하기 때문이라 믿는다. 가뜩이나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양극화에 정책으로 가속도를 붙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최욱 코넥스협회 상근부회장(choica@konex.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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