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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색동날개' 예쁘게 새단장해야
2019-04-10 06:00:00 2019-04-10 06:00:00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지난달 28일 스스로 짐을 쌌다. 박 회장의 사임은 그룹의 핵심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의 감사보고서가 회계법인에 의해 퇴짜 맞은 것이 계기가 됐다. 감사보고서가 다시 ‘적정’이라는 의견을 받아내기는 했다. 그렇지만 부채는 크게 늘어난 반면, 영업이익은 3분의1로 줄어들었다. 이런 부실한 회계가 사전에 회계법인에 의해 걸러졌으니 참으로 다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도 나중에 더 큰 혼란을 초래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 과정에서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아니 박 회장 자신에 대한 시장의 불신은 증폭됐다. 아시아나항공의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문제가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채권단이 채권 회수에 나설 경우 아시아나항공의 채무 불이행 사태가 초래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커졌다. 
 
기업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위험한 상황이 초래된 것이다. 때문에 박 회장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총수자리를 내놓을 수 밖에 없었다. 지난해 기내식파동 등으로 불거진 오너리스크의 귀결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오너 리스크는 2006년 대우건설 인수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금호산업은 대우건설 지분 72.19%를 사들였다. 자금이 부족하자 풋백옵션을 조건으로 투자자들에게서 3조원이 넘는 자금을 조달했다. 이는 너무나 무리한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박 회장은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도 갈라섰다. 
 
2008년 금융위기로 대우건설 주가가 폭락하자 인수 당시 맺은 풋백옵션 조건이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치명타가 됐다. 이 때문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박 회장은 경영권을 상실했다.
 
그러나 박 회장은 2015년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을 되찾았다. 이를 위해 박 회장은 여러 가지 묘수를 썼다. 특히 문화재단과 학교법인까지 동원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러니 투명경영을 기대하기는 애초부터 어려웠다. 
 
애꿎게도 아시아나항공은 박 회장의 경영권 회복을 위한 자금지원에 동원된 탓에 허약해졌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4월 주채권자인 산업은행과 재무개선약정을 맺었다. 이에 따라 보유 자산을 일부 매각하는 등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그러나 지난해 기내식파동에서 드러났듯이 박 회장의 무리수는 계속됐다. 게다가 기내식파동 와중에 아무 경력도 없는 딸을 계열사 임원으로 밀어넣기까지 했다. 마치 수성 산에 금성을 얹고, 그 위에 화성을 쌓아올리려는 듯이 적폐가 누적됐다. 급기야 지난달 최근 회계감사 사태까지 빚어지고 말았다.
 
박 회장의 퇴진은 결국 자업자득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지적했듯이, 잘못된 지배구조 탓이다. 
 
박 회장은 떠났지만 아시아나항공에는 상처만 남았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재무안정을 위해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다시 구원투수로 나서야 할 상황이다. 그 대신 박 회장은 사재출연 등 대주주 책임을 요구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연한 일이다. 잘못된 경영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하다. 
 
이 와중에 박 회장의 아들 박세창 아시아나IDT 사장이 경영권을 이어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돈다고 한 매체가 보도했다. 말하자면 ‘3세경영’ 체제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인간사회의 건전한 상식에 반하는 일이다. 좋게 말해 ‘3세경영’ 체제이지 사실은 기업을 망가뜨린 장본인의 아들이 후계자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을 안정시킬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사실 박 회장이 경영권을 무리하게 되찾으려 할 때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묵인 방조했다는 의심도 지울 수 없다. 그러므로 채권단은 박 회장의 경영복귀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복기하고 유사한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두 날개이다. 그런데 두 날개는 최근 세상을 몹시 시끄럽게 하면서 스스로도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임직원들의 잘못은 전혀 아니었다. 오로지 고질적인 ‘황제경영’의 결과일 따름이다.
 
이제는 두 날개를 다시 바로펴는 일이 시급하다. 한국의 튼튼한 ‘날개’로 거듭나야 한다. 박 회장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 첫걸음이다. 최근 들어 항공교통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채권단도 돕겠다고 하니 앞으로 착실하게 경영하기만 하면 된다. 차라리 유능하고 소신있는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색동날개’를 예쁘게 새단장하고 다시 날아올라야 한다. 
 
차기태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편집장(eramus414@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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