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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생일’ 설경구 “나도 그렇게 터질 줄 몰랐다”
스케줄 불가능했던 ‘생일’, 시나리오 읽고 ‘무조건 출연’ 결심
“‘세월호’라 출연?...이종언 감독 진심 그리고 우리 이웃 얘기”
2019-04-08 00:00:00 2019-04-08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배우 설경구는 영화 우상개봉을 앞두고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세월호 참사를 겪은 유가족들의 삶을 스크린에 옮긴 생일을 언급한 바 있다. 사실 이 영화는 출연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 다른 뜻이 아니다. 스케줄상 출연 자체가 불가능했었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읽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작품이 아니었단다. 무리하게 스케줄을 조정했다. ‘무리하다고 표현했지만 그에겐 무리한게아니었다. 그래야만 했었단다. ‘우상개봉을 앞두고 만난 인터뷰에서도 얼굴이 어두웠다. ‘우상유중식자체가 워낙 고되고 힘든 캐릭터였기에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메소드 연기로는 국내 최고 배우 중 한 명이 설경구 아닌가. 하지만 생일을 촬영하고 난 뒤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었기 때문일 듯싶었다. 구체적인 물음을 생일개봉 즈음으로 미뤘던 기억이 난다. 이미 전 국민이 트라우마에 시달릴 정도로 세월호 참사는 도저히 있어서도 앞으로도 있어선 안될 일이다. 그런 사건의 중심에 비록 영화였지만 오롯이 자신을 던졌던 설경구다. 그의 소용돌이치는 감정은 당연한 듯 하면서도 당연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배우 설경구.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불과 채 2주가 지나지 않아 다시 만난 설경구다. ‘생일개봉을 불과 이틀 앞두고 만난 그는 조용하고 차분했다. 새 영화를 선보이는 자리라면 비단 즐겁고 행복하고 흥행을 위해 제 몫을 다해야 하는 주연 배우들의 숙명은 당연하다. ‘재미있다’ ‘많이 봐달라’ ‘재미있다고 잘 써달라등 일종의 립 서비스 대화가 예의처럼 오간다. 하지만 생일은 그럴 수 없었다.
 
시나리오 리딩 때도 그랬어요. 이런 감정이. 뭐랄까. 누구 하나 울면 다들 난리가 나는 거죠. 지금도 상당히 침잠된 기분이에요. 이런 감정을 그 분들은 5년 가까이 끌고 가시는 거잖아요. 이게 어떻게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일까 싶었죠. 사실 스케줄 상으로도 도저히 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어요. ‘우상촬영이 자꾸 길어지면서 도저히 불가능했죠. 그런데 시나리오 읽은 뒤 해야겠다란 생각만 들었어요.”
 
해야겠다란 생각의 중심이 세월호였기 때문일까. 그런 이유도 분명히 있었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었다면 자신이 해보고 싶은 이유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영화를 준비하고 또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은 이종언 감독 때문이었다. 여성 데뷔 감독이다. 제작자인 이준동 대표(이창동 감독 동생)에게서 이종언 감독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고.
 
배우 설경구.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이준동 대표님이 제게 시나리오를 건네 주셨어요. 이종언 감독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주셨죠. 이 감독이 이창동 감독님 연출부로 영화 현장에서 많이 일을 했었죠. 뭐랄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굉장히 단단한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어요. 데뷔 감독으로서의 리스크도 분명히 안고 있을 텐데 이 얘기를 선택한 게 정말 대단해 보였죠. ‘잘 풀어가겠다란 확신이 들었어요. 출연 결정 전이고 촬영 전이었지만 확실한 믿음이 생겼죠.”
 
물론 그럼에도 생일출연 결정은 사실 쉽지 않았을 터였다. 이 영화가 기획될 당시는 탄핵 이전이다. 당시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치적 잣대를 들이밀던 집권 시기다. 출연 결정 만으로도 부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시기였다. 더욱이 상업 영화이지만 상업 영화로서 접근할 수도 없는 틀을 안고 있는 작품이 생일이었다. 잘못하면 대중들에게 따가운 비난의 화살을 온 몸으로 받아야 한다.
 
망설여지고 부담스러웠던 감정이 사실 왜 없었겠어요. 당연하죠. 우선 유가족 분들의 생각이 전부 다 다르기 때문에 망설여진 것도 있어요. 이 영화에 대해 시기가 좋지 않다는 주변 의견도 많았고요. 그런데 그게 이 영화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로 날 설득시키질 못했죠. 남아 있는 분들의 얘기였지만 이건 제 눈에는 세월호 참사소재라기 보단 우리의 가까운 이웃에 대한 얘기였어요. 그리고 세월호 참사가 소재로 등장을 하지만 시나리오에는 세월호란 단어가 단 한 마디도 없어요. 이건 우리 이웃의 얘기에요.”
 
배우 설경구.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그에게 생일속 장면은 그 어느 장면 하나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상대역인 전도연을 더 배려했다. 아빠 정일을 연기한 자신보다 엄마 순남을 연기한 전도연이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오롯이 모든 고통을 홀로 받아 내야 했던 순남의 심정은 정일이 아닌 설경구로서도 상상하기 힘든 고통이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영화 속 정일의 방식은 그의 방식이기도 했다.
 
우리 주변 이웃의 얘기였지만 그럼에도 순남이 중심이잖아요. 정일을 용서할 수 없는 순남의 마음이 전 가슴이 깊이 박히더라고요. 아들 수호가 죽고 그 고통을 혼자 받잖아요. 전 올 수 없는 상황이었고.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아내의 모습에 뭐라 말을 못하는 거죠. 도연씨가 이혼 서류를 내미는 장면이 가장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남편의 상황을 알면서도 용서가 안 되는 거죠. 지금도 감당이 안 되는 데 그걸 주체하기 힘드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전 너무 이해가 됐어요.”
 
일부 관객의 입장이라면 오히려 정일이 더 슬픈 존재일 수도 있을 듯싶었다. 아들의 죽음에도 올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한 정일이었다. 차라리 순남은 그 슬픔이라도 느껴봤지만 정일은 그 슬픔조차 느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돌아온 집에서 아들의 방을 몰래 들어가 돌아 본 뒤 울음을 삼키는 장면은 아빠들의 가슴을 때리기에 충분했다. 아니 차고 넘쳤다.
 
배우 설경구.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정일에 대한 모든 건 감독의 주문이자 계산된 설정이었어요. 참사 5주기가 다가오고 있지 않나. 아마 많은 분들이 잊고 살 것이라 봐요. 잊고 싶기도 하고. 근데 그게 나쁜 거라고 손가락질 할 수도 없잖아요. 살아가야 하니깐. 결과적으로 이야기 중심에 들어오지 말고 정일의 어깨를 타고 슬며시 들어오길 바란다가 감독의 주문이었어요. 정일은 결국 직접적인 당사자이면서도 관객이고 또 관찰자인 셈이에요.”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생일 모임이다. 실제로 참사 유가족들의 모임이다. 이 장면은 정일-순남 부부와 수호의 동생 예솔 그리고 수호의 친구들과 유가족들이 함께 모여 수호를 기억하는 것을 만들어 낸다. 30여분에 가까운 이 장면은 롱 테이크로 촬영이 됐다. 이 장면에서 설경구가 연기한 정일은 내내 누르고 있던 감정을 단 번에 폭발시켜 버린다.
 
시나리오에는 굉장히 오열한다라고만 써 있었어요. ~ 저도 그렇게 터질 줄은 몰랐어요. 참고 참았던 고인 게 터져 버린 거죠. 정일 입장에서 처음 아내인 순남을 보고, 딸인 예솔을 보고 왜 안 울고 싶었겠어요. 감독님이 정일에게 너무도 가혹한 설정을 준 것 같아요. 참사 이후 2, 3년 뒤 가족들에게 돌아온 거잖아요. 근데 그때 와서 슬퍼해? 염치도 없이? 터트리지 못하고 누르고만 있었던 거죠. 지금에야 생각해보니 참.”
 
배우 설경구.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영화 생일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은 양분돼 있다. 당연히 비판의 시선도 존재한다. ‘하필이면 세월호 얘기를 영화로 만드느냐란 의견도 분명히 있다. ‘도저히 영화로 다시 그 고통을 느끼고 싶지 않다란 시선도 있다. 이 영화의 중심이자 또 관찰자였던 설경구로선 어떤 생각일까. 잠시 생각에 빠진다. 그리고 덤덤하게 말한다.
 
그냥 위로 한 마디 해주신다 생각하면 두 시간의 관람이 아깝지는 않을 듯싶어요. 이 영화가 마냥 울고 또 슬퍼하자고 만든 영화가 아니거든요. 또 위로 해달라고 만든 영화도 아니에요. 유가족분들에게 어떤 말을 전한다고 한들 위로가 될까요. ‘살아내야 한다란 표현을 쓰시더라고요.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생일 모임을 하고 있는 거고요. 잠시 그 모임에 오셔서 그저 바라봐 주시는 것만으로도 응원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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