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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기획2050)17-'석사 범용바우처'를 보편적 교육권리로
2년간 대학원 과정 지원…석사등록금·생활·학습지원비 등 개인당 2년 총 1억
입시위주 경쟁교육에서 탈피…특성·자질 개발하는 평생학습 시스템 구축
2019-03-25 07:00:00 2019-03-25 19:53:33
최근 한국에선 보편적 기본소득에 관한 논쟁이 무성하지만 제도적 현실성은 적다. 대안은 2년의 '석사 범용바우처' 도입이다. 35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2년 동안 석사과정을 거치는 기간에 학비와 생활비를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다. 단순 계산으로 1년간 석사 등록금 1000만원과 매월 300만원의 생활비, 400만원의 학습지원비를 지급할 경우 개인당 총 5000만원이 소요된다. 2년이면 총 1억원이다. 기본소득 대신 누구에게나 생애에 딱 한번 2년간 1억원의 쿠폰을 1장 받을 권리가 석사 범용바우처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2017년 기준 68.9%이다. 대략 70%의 한국인들이 대학 졸업장을 갖고 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30%에겐 사회적 정의의 관점에서 4년간의 학사 범용바우처를 적용할 수 있다. 학사 4년이면 총 2억원이다. 

2016년 6월 스위스에서 있었던 기본소득 국민투표는 직접 민주주의와 깊이 관련됐다. 이 국민투표안은 행정부나 의회에서 발의된 게 아니라, 국민발안으로 제기된 사안이었다. 스위스에선 국민발안 아젠다가 유권자 중 2%에게 동의를 얻으면 자동적으로 국민투표에 붙여진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측에선 매월 30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국민발안이 제기했다. 이 발안이 유권자 중 2%의 동의를 얻자 국민투표에 붙여졌다. 하지만 재정 상황 등을 우려하는 다수의 시민은 기본소득에 찬성하지 않았고, 투표는 부결됐다. 한국에서도 30년 뒤엔 기본소득에 관한 국민발안이 국민투표에 붙여지는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론 석사 범용바우처에 관한 논의도 국민발안과 국민투표로 가능한 날이 올 수 있다.

한국, 교육부문의 삶의 질 'OECD 10위'

포용국가를 위한 석사 범용바우처는 한국의 교육현실과 밀접히 관련됐다. 한국의 제도교육은 시민들의 삶의 질과 너무나 동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삶의 질 지수 중 교육부문에서 한국은 회원국 중 10위다. 일본은 6위이고, 노르딕 국가와 호주 등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교육부문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영역도 있지만, 전형적 외화내빈 구조다. 몇개 영역에서 높은 평가를 얻는 것과 달리 학생은 엄청난 사교육을 받고 학부모들은 사교육비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은 학생이 건강한 미래를 설계하는 삶과는 괴리됐다. 무엇보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100세 사회를 위한 평생학습에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OECD 삶의 질에서 교육부문은 교육이수와 학생의 인지역량, 기대교육 기간 등 3가지로 구성된다. 한국의 교육이수 수준은 86.9%로 OECD 38개 회원국 중 13위다. 사진/뉴시스
 
OECD 삶의 질에서 교육부문은 교육이수와 학생의 인지역량, 기대교육 기간 등 3가지로 구성된다. 한국의 교육이수 수준은 86.9%로 OECD 38개 회원국 중 13위다. 교육이수는 25~64세 중 고등학교 이상 상위 중등교육을 이수한 성인의 비율이다. 2016년을 기준으로 한국은 25-64세 중 인구 중 상위 중등교육 이수자 비율이 40.0%로 OECD 평균보다 낮지만 고등교육 이수자 비율은 캐나다. 일본, 이스라엘에 이어 4위다. 학생의 인지역량은 519점으로 회원국 중 5위다. 흔히 한국의 교육이 우수하다고 이야기되는 지점이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이 점수는 한국 교육의 허와 실을 보여준다. 학생의 인지역량은 OECD의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 데이터를 기준으로 만 15세 학생의 읽기·수학·과학 과목의 평균 점수를 의미한다. PISA는 원래 학생들이 한 사회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데 요구되는 지식과 기술의 활용능력을 평가하자는 취지다. 교과지식보다는 지식을 상황과 목적에 맞게 활용할 수 있는 기본 소양을 평가한다. 그래서 PISA의 목적은 학업성취도 점수를 기반으로 국가 간 순위를 매기는 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지식과 정보를 활용하고 창출할 수 있는 역량과 학습 가능성을 평가하는 데 있다.
 
PISA의 취지와 달리 한국의 입시위주 교육은 학생들에게 가장 압축적으로 학습역량을 쥐어짜는 환경이다. 만약 PISA 테스트를 만 35세의 청년이나 만 55세의 장년이 받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아마 회원국 중에서 하위권에 머물러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교육 패러다임은 한계에 왔다. 유교국가와 발전국가의 유산으로 암기 모방형 교육이 이뤄지고 효율성 중심으로 표준화된 대량교육과 주입식 교육은 순종형 인간을 양산해 개인이 창의성을 악화시키고 있다. 공교육 투자도 부실, 역량을 축적할 기회는 불평등해지고 학령기에 집중된 교육투자로 인해 생애 전반에 걸친 학습의지와 기초역량은 지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학습역량 쥐어짜는 제도권 교육…중장년층 될수록 창의역량 퇴보

앞으로의 교육 목표는 창의적 학습사회로 전환하는 것이다. 창의적 학습사회는 생애 전반에서 일과 삶, 학습이 통합돼 개인의 역량을 증진시키는 사회다. 창의적 학습사회의 인재상은 지적이고 창조적이며 사회적 역량을 바탕으로 팀지니어스(Team Genius)를 극대화할 수 있는 인재다. 이는 4차 산업혁명과 기술산업 융합시대에 사람중심 경제와 사람중심 사회를 선도하는 인재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OECD의 PISA 테스트에서 한국이 5위라는 건 오히려 허구적으로 보인다. 한국의 언어와 수리능력은 청소년기엔 최상위권이지만,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20대 초반부터 역량이 급격하게 퇴화되고 나이가 들수록 최하위 수준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기대교육 기간은 17.4년으로 회원국 중 18위다. 이는 5세 아동이 39세에 이르기까지 생애 동안 경험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정규 교육 지속 기간이다.

교육을 종합적으로 평가했을 때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우수하다고 인정된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재직 기간 중 한국 교육제도의 우수성을 인용했다. 포용국가 달성 목표로 OECD 삶의 질 지수 10위 국가를 국정과제로 설정할 때 이미 10위를 달성한 유일한 지수가 바로 교육부문이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한국의 교육시스템은 우수하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제도와 철학은 ‘경쟁’에 기반, 세계사적 시대 흐름과 맞지 않은 산업 자본주의의 시대의 시스템에 머물렀다. 사진/뉴시스
 
그러나 한국 교육제도는 세계사적 시대 흐름과 맞지 않은 산업 자본주의의 시대의 시스템에 머물렀다. 그 교육철학의 기반은 '경쟁'이다. 경쟁이 가장 극대화된 형태가 대학입시 제도다. 매년 50만명의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지옥 같은 경쟁의 과정을 겪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바로 옆에 있는 친구는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상대다. 하지만 정작 자본주의는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 중요해지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교육도 경쟁이 아니라 협력의 철학을 기초로 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물론 당장의 교육제도를 바꾸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대신 협력의 교육제도는 평생학습 체계를 구축하는 데 적용될 수 있다. OECD 삶의 질을 평가하는 교육지수들은 39세 이전의 청소년 교육에 집중됐지만 100세 사회에선 학교 교육 못지않게 평생학습의 중요성이 커진다. 특히 한국은 OECD 국가 중 평생학습 제도가 미흡하다.

평생학습의 제도적 대안으로써 35세 이후에 2년제 대학원 과정의 석사 범용바우처를 설계할 수 있다. 청소년기 제도교육에선 경쟁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더라도 평생학습에선 협력을 바탕을 해서 제도를 설계될 수 있다. 한국의 교육구조에선 대학에 진학할 때 자신의 특성이나 소질을 고려해 응시하는 게 쉽지 않다. 학생들도 자신이 어떤 전공으로 어떤 진로를 계획할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런 상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취업시장에 나간다면 또 경쟁에 내몰려 자신의 잠재력이나 소질과 상관없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대학 졸업 후 5년 정도 직장생활을 하고 나면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일과 소질을 깨닫게 된다. 이 시점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교육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비로소 자신의 소질에 관련된 전공을 찾아 대학원에 갈 수 있다. 그것이 목공기술일 수도 있고 농업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기 주도형으로 대학원 과정을 설계할 수 있다.

석사 범용바우처 지급해 평생학습 기회 보장
 
그렇다고 매일 가족생계를 책임지는 가장들이 갑자기 직장을 관둘 수도 없다. 이때 정부가 2년제 대학원 과정을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하자는 게 석사 범용바우처의 취지다. 전국의 국립대학과 울산과학기술대, 광주과학기술대 등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학들에 다양한 형태의 석사과정을 마련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선 일부 지방 대학들이 학생 수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곳 대학원을 통해 석사 범용바우처를 연계할 수 있다. 유럽연합(EU)의 에라스무스 프로젝트는 대학교육이 지역을 살리는 제도로 활용되기도 한다.
 
에라스무스 프로젝트는 유럽연합(EU) 내 고등교육의 교류협력을 위해 1987년부터 시작된 학생교환 프로그램이다. 2011년에는 '모두를 위한 에라스무스'란 기조 아래 EU와 전세계의 교육, 학습, 청소년, 스포츠 등에 관한 제도를 통합하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사진/플리커
 
한국에서 기본소득은 생산주의적 방식에 익숙한 시민들에겐 수용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그 정도 재원이 있다면 차라리 교육투자를 하는 게 수용성이 더 높다. 300만원의 기본소득이 아니라, 300만원의 생활비를 지원하며 대학원에서 평생학습의 권리를 갖는 건 중장년층의 장래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석사 범용바우처는 향후 50년을 살아갈 실질적 교육기회를 보장해줄 것이다.

한국이 포용국가의 정책을 기반으로 OECD 삶의 질 10위 달성을 목표로 할 때, 11개 부문 중 이미 10위를 달성하고 있는 유일한 부문이 교육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하나씩 살펴보면 한국 교육은 입시경쟁 등으로 병들었다. 철저하게 근대 산업자본을 위해 설계된 경쟁 교육시스템이 한국 교육의 민낯이다. 시대적 흐름은 경쟁 위주에서 협력의 교육으로 변화하고 있다. 당장에 입시위주의 교육을 바꿀 수 없다면, 35세 이상이 대학원 과정을 통해서라도 새로운 교육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포용국가의 교육은 결국 사람에 대한 투자다. 그리고 투자의 우선순위는 35세 이상의 중장년층에게 부여되는 평생교육이다.
 
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 필자 소개 : 필자는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로, '미래, 문명, 평화'와 국정아젠다를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행정학을 전공했고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장으로 국내 26개 국책연구소의 국정 정책담론을 기획·평가하고 있다.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으로 국가비전2040을 수립하는데도 참여 중이다. 30년 후의 국가비전을 모색하는 이번 기획은 격주로 총 30회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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