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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분노의 언어, 갈등의 정치
2019-03-19 06:00:00 2019-03-19 06:00:00
정치는 분노와 갈등을 해결하는 장치이다. 정치가는 개인의 분노와 사회의 갈등을 제도적으로 해결해 준다. 그래야만 분노와 갈등이 개인과 사회를 파괴하지 않고 건설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분노와 갈등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정치는 절반 이상의 역할을 한다. 분노와 갈등을 낮추면 당사자들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는 그렇지 않다. 분노와 갈등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분노와 갈등을 확대시킨다. 나아가 정치가들이 먼저 흥분하고 먼저 분노한다. 분노가 없는 곳에 분노의 씨를 뿌리고 갈등이 없는 곳에 갈등을 부추긴다. 최근 정치인들이 극단적인 발언을 너무 자주한다. 대통령에 대한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는 발언, 5.18 민주화투쟁 폄훼발언, 탄핵 부인 발언, 상대방에 대한 무시, 막말 등 사례는 너무 많다. 이쯤 되면 정치인들은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줄 것인지, 어떻게 하면 분노와 갈등이라는 바이러스를 퍼뜨릴지 연구하는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분노와 갈등이 정치계에서 창궐하는 것은 분노와 갈등을 충동질함으로써 이익을 보는 자가 있기 때문이다. 분노와 갈등으로 이익을 보는 자는 분노와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분노라는 감정과 사회 갈등이라는 현상을 바탕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높이고 정권을 장악하고자 한다. 개인의 희생이나 슬픔은 관심 밖이다. 갈등으로 사회가 망가져도 상관하지 않는다. 
 
피해를 입는 사람은 시민들이다. 당장 카풀을 둘러싼 대립에서 피해를 본 사람은 택시운전수들이지 않은가? 시민들이 자신의 이익을 침해당하면, 그것도 중요한 이익을 침해당하면 분노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정치인의 충동질은 사람들의 분노를 파괴적인 방향으로 끌고 간다. 자신이 가지는 감정이 분노인지 슬픔인지 연민인지 분석할 틈도 없이, 그리고 분노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정치인의 분노를 따라간다. 시민의 분노는 정치인의 충동질에 따라 증폭된다. 정치인의 분노에 정당성을 얻은 시민들은 자신의 분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행동으로 다른 개인, 대부분 선량하고 양심적이며 윤리적이며 법 없이도 살 시민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니 마땅히 자신의 분노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정치인들은 권력을 얻는다. 
 
정치인들의 분노와 갈등 충동질을 중단시킬 방법이 있을까? 혐오발언을 금지시키거나 국회 윤리위원회에 회부하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좀 더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필요하다. 시민의 각성과 같은 추상적인 것이어서는 안되지만 정치인들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정치인의 분노와 갈등 충동질을 막기 위해서는 먼저 그 분노와 갈등에 정당한 근거가 있는지 살펴야 한다. 정당한 근거가 없는 막말, 분노와 갈등 조장은 아무리 강하게 주장해도 오래 지속될 수 없다. 근거 없는 막말과 분노는 시민들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에 퍼져나가지 못한다. 짧게는 하루 이틀에 끝나고 길어봤자 다음 선거까지만 계속된다. 사실관계를 파악하지 않으면 정치인이 퍼뜨리는 분노 바이러스에 전염된다. 분노 바이러스에 대한 가장 좋은 치료약은 사실관계 파악이다. 
 
근본적으로 분노는 상대방을 파괴하고 나아가 자신도 파괴한다. 분노한 자는 “눈에는 눈”이라는 법칙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 원칙에 따르면 간디의 말처럼 세상에는 장님만 남게 된다. 분노는 과거에 집착하므로 자신에게도 좋지 않다. 범죄자를 사형시킨다고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오지는 않는다. 세상에는 분노 이외에 슬픔, 연민, 자비, 사랑과 같은 수많은 감정이 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인들의 분노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분노를 넘어 인류가 같이 사는 세상을 호소했다. 
 
분노와 갈등은 미래를 향해 건설적으로 해소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분노를 조절하는 방안도 있으나 사회적으로는 분노와 갈등을 공식적, 이성적으로 해결하는 분쟁해결제도가 필요하다. 조정, 중재, 재판제도 등 분쟁해결절차와 타협과 협상의 정치가 필요하다. 좋은 사법제도와 정치는 정당한 분노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이를 발전적으로 해소한다. 결국 사법제도와 정치시스템이 개혁되어야 한다. 
 
최근의 선거제 개혁 논의가 중요한 것은 단순히 공수처, 검찰개혁 등 개혁법안 통과를 위한 협상이어서가 아니다. 잘된 선거제 개혁은 분노와 갈등의 정치를 끝낼 가능성을 높인다. 물론 같은 인물들이 선출되면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말이다. 정치가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넣는 시대를 넘어서야 우리에게도 미래가 있을 것이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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