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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현의 만인보로 보는 일상사-22화)유언비어 요지경
“쉬쉬쉬 소문이 떠돌았다”
2019-03-18 08:00:00 2019-03-18 08:00:00
지난 2월 8일 자유한국당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이 5·18 망언으로 그들의 지지자를 제외한 국민들의 분노를 사더니, 그들이 영웅시하는 전두환은 3월 11일 광주 법정에 출석해 예상대로 혐의를 전면 부정하고 사죄를 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꾸벅꾸벅 조는 모습으로 광주 시민의 가슴을 다시 한 번 멍들게 하고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설상가상으로, 3월 12일 국회 연설에서 ‘좌파정권’, ‘대통령은 김정은의 수석대변인’ 운운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3월 14일 ‘반민특위로 인해 국민이 분열했다”는 놀라운(!) 발언을 함으로써 자신의 역사인식 수준을 드러내 보였다. 가히 ‘망언대행진’의 봄이다. 
 
고 조비오 신부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을 받고 나온 전두환씨가 경호차량에 탑승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친일부역정신’의 계승? 시대착오적 색깔론
 
2019년 오늘, 아직도 입만 열면 ‘종북’, ‘빨갱이’ 운운하는 정치인들을 봐야 하는 것에 피로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매카시즘의 광풍이 시작되었던 해가 1950년, 그로부터 거의 70년이 흘렀는데 대한민국의 일부 정치인들은 아직도 구닥다리 극우반공 색깔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정부의 심기를 거스를까봐 눈치를 보고 한반도에 평화가 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식민지 과거사의 청산도, 남북·북미회담의 순풍도 반갑지 않을 것이다.
 
친일부역자들을 조사해 처벌하려 했던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은 친일파로 무장된 이승만 정권의 방해로 무산되고 말았는데, 이 반민특위를 ‘국민 분열’의 원인으로 보는 정치인 부류와 이승만 정권의 큰 공통점은 ‘빨갱이’ 색깔론에 있다. 이승만은 1949년 5월 ‘국회 프락치 사건’을 만들어 반민특위 위원들과 그들을 옹호하는 국회의원들을 ‘빨갱이’로 몰아 구속했는데 이 사건을 친일부역자들이 담당했고, 같은 해 6월 역시 친일부역자들인 경찰이 반민특위 청사를 기습·테러했다. 친일부역자들로 무장된 이승만 정권이 그 존재 기반상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을 처단할 수 없고 ‘빨갱이’ 논리로 자기 존재를 지탱해야 했듯이, 광주민중항쟁을 ‘북한군 특수부대’ 운운으로 매도하는 이들 역시 그 존립 근거상 자기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낡아빠진 색깔론에 매달리는 것이 아닐는지.
 
‘빨갱이 색깔론’과는 달리, ‘색깔정치’에서 자유한국당은 2012년 새누리당 시절부터 빨간색을 당색으로 하고 있으니 일종의 아이러니라 하겠다. 이는 순전히 박근혜의 비상대책위원회가 총선·대선을 앞두고 유권자의 확대 포섭을 위해 꾀한 이미지 변신이었을 뿐, 그들이 약속한 ‘경제민주화’나 ‘복지정책’의 실현 같은 진보적(빨간색으로 상징되는) 공약의 이행과는 거리가 멀었다.
 
제19대 대통령 선거일인 지난 2017년 5월9일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침통한 표정으로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긴급조치 시대의 유언비어
극우 논객 지만원이 퍼뜨린 일명 ‘광수’(북한군 특수부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대표적인 유언비어가 되었다. 2월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이른바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를 열고 그를 초대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이 유언비어의 추종자임을 입증했다. 오랜 시간 동안의 조사, 재판, 수많은 증언들과 검증을 통해 확인된 광주의 사실을 왜곡하는 이런 ‘진짜’ 유언비어도 있지만, 사실에 근거해 떠도는 소문이나 국민이 내는 불만의 목소리가 유언비어 취급을 받기도 한다. 언로가 차단된 독재 권력의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지난 2월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에서 5.18단체회원들이 항의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그가 태어난 고장
선산 도리사 밑 밭두렁에는
캐내지 못한 바위가 박혀
혼자 거무튀튀하다
그 바위를 닮아야 했다
여름 햇볕이 쨍!
그는 그렇게 척박했다
 
일본 육군의 모범장교였다 천황의 금시계 받았다
좌익이었다
좌익을 팔아넘기고
우익이었다
기구한 육군 소장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녹슨 쇳소리
그의 파쇼는 성난 독사였다
탄압과 건설이
행여 뒤질세라 마구잡이 솟구쳤다
 
< … > 
 
1970년 초 서울에는
쉬쉬쉬 소문이 떠돌았다
박정희 육영수는
총 맞아 죽을 운명이라는 것
 
어느덧 춘궁기 보릿고개가 사라졌고
전란 이후
휴전선 이남의 산야는
천박한 근대화 조국 근대화
개발의 나라
성장의 나라였다 가발공장에서 원자로였다
그런 어느날
쉬쉬쉬 또다시 소문이 떠돌았다
감옥 지붕의 비둘기들이 우르르 날아오르며
(‘박정희’, 11권)
 
유신시대 박정희의 긴급조치 1호 3항은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고 되어 있으며, 악명 높은 9호의 1항 첫 줄 역시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는 행위”에 대한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 언론이 엄격히 통제되던 1970년대의 대한민국에서는 사석에서 말 한 마디만 잘못해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잡혀가던 일이 비일비재했다. 한 연구논문이 신문기사 보도를 인용해 소개한 사례들을 보면, 농부가 마을의 주점에서 술을 마시다 한 발언이 문제가 되어 구속되고, 택시를 타고 가던 승객이 정치를 비판하자 기사가 차를 바로 경찰서로 몰아 구속되거나 반대로 택시 기사가 대통령을 비난하자 승객이 이를 경찰에 신고하여 구속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술집, 찻집, 레스토랑에 칸막이가 출현하는 문화를 낳았는데, 안심하고 얘기를 나누기 위해 생긴 이 칸막이는 엉뚱하게도 퇴폐적인 밀실 문화로 이어지게 된다(채백, ‘박정희 시대 신문 독자의 사회문화사’, <언론정보연구>, 51(2), 28~29쪽).
 
사실, 술집에서 술 마시다가 던진 말로 구속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보니 ‘막걸리 반공법’이란 표현도 생긴 시절이었다. 이 막걸리 반공법으로 70년대에 형을 살고 나와 수십 년이 지난 최근에 무죄를 선고받은 경우도 있다. 1969년 “통일교 교인들과 만나 김일성을 찬양하고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발언을 한 혐의를 받아” 5년 뒤인 1974년 영장도 없이 체포된 한 부부는 2년 동안 징역을 살았다. 이미 사망한 부모를 대신해 자녀들이 청구한 재심에서 이 부부는 42년 만인 2016년 대법원의 최종 무죄선고를 받았다(CBS 노컷뉴스, 2016년 3월 10일).
 
한편, 1977년 지인의 집에 놀러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명 여자 탤런트 집을 드나들었다고 잡담해 허위사실을 날조·유포한 혐의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가정주부가 37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보도도 있다(세계일보, 2014년 4월 1일). 일상적 감시와 통제의 시대에는 공중화장실 벽에 낙서로 심정을 토로하는 경우도 많았음을 다음의 시가 보여준다. 
 
퀴퀴한 곳
구리구리한 곳
시금털털한 곳
 
왝!
왝!
약한 비위에는 으레 구역질
 
그런 공중변소마다 들어가
낙서를 하는 사람 있다
김철호
 
처음에는 음양을 그려
박는 것
박히는 것 그리다가
 
뒤에는 욕설을 썼다
갖은 욕설
그러다가 괜히
어떤 낙서 유신철폐를 괜히 흉내내어
유신철폐를 썼다
그러다가 괜히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감옥에 갔다
< … >
(‘공중변소 낙서꾼’, 10권)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열린 '정부의 가짜뉴스 근절대책 무엇이 문제인가?' 긴금점검토론회. 사회를 맡은 전규찬 한국언론정보학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세련된 유언비어, 가짜뉴스의 시대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유언비어가 일어나는 것은 근거 없이 생기기도 하고 혹은 기미가 있어서 생기기도 하는 것이니, 수령은 이에 대응함에 있어서 조용히 진압하기도 하고 묵묵히 관찰하기도 해야 할 것이다.”라고 했다(정약용, <목민심서>, 다산연구회 역, 창비 전자책, 2000년, 489쪽). 유언비어의 사전적 정의는 보통 ‘근거 없이 널리 퍼진 소문’을 가리키지만, 다산의 말처럼 “기미가 있어 생기기도” 한다.
 
권력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일부러 퍼뜨리는 유언비어도 있다. 1923년 일본의 간토(관동) 대지진 때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일본인을 습격하고 방화·약탈을 한다’는 유언비어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런가 하면, 증권가에 돌아다니는 소문들은 ‘기미가 있어 생기는’, 이른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가 적용되는 경우들이 적지 않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언론 탄압으로 인해 국민의 목소리, 말할 권리가 유언비어 유포로 둔갑되기도 한다. 결국 이 떠도는 말들이 누구에 의해, 왜,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잘 살펴볼 일이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유언비어는 단순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지 않고 훨씬 세련된 방식으로 발전했다. 의도적인 목적을 가지고 매체를 통해 ‘뉴스’의 형태로 확산되는 이 새로운 형태의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우리는 ‘가짜뉴스’(‘허위조작정보’)라고 부른다. 언론사들의 가짜뉴스부터 포털사이트 메인 게시판, 뉴스 댓글, 가짜뉴스의 온상지가 되어버린 유튜브와 부지런히 퍼 나르는 카톡의 단체 메시지 등 각종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파되는 가짜뉴스의 홍수에 대한민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러나 사이버 공간의 유언비어들이 현실에서 힘을 발휘하지 않게 하려면 ‘가짜뉴스 규제법’ 같이 언론 통제의 위험이 있는 입법 방식이 아니라, ‘팩트체크’의 강화와 디지털 교육, 소셜미디어 기업들의 자정 활동, 그리고 좋은 보도, 진실한 보도로 싸워나갈 기자들의 책임의식이 더욱 요구된다 하겠다.
 
박성현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역사학 박사(percept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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