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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家서 의료 외길…여장부 이인희 전 고문의 동반자였던 조운해 전 이사장
2019-03-04 18:04:06 2019-03-04 18:04:14
[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이리 오세요." 
 
어두운 극장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던 나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맡겨둘 수밖에 없었다.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의 남편인 조운해 전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이사장이 회고록에서 밝힌 아내와의 첫 상견례 대목이다. 조 전 이사장은 1948년 11월 박준규 전 국회의장의 소개로 이 고문을 아내로 맞았다. 박 전 의장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모친인 고 박두을 여사의 조카로, 박 여사에게 자신의 경북중학교 1년 후배인 조 전 이사장을 소개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 전 이사장은 책에서 1948년 이 고문과 첫 만남에서 발생한 '작은' 사건으로 인해 앞으로 '통 큰 여장부'와 '숫기 없는 남자'로 살아갈 운명을 예감했다고 한다.
 
그는 이 고문에 대해 "수완이 탁월할 뿐 아니라 사업가적 재질이 뛰어난 전형적인 삼성가 출신"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꼬장꼬장한 자신과 달리 아내는 남자처럼 걸걸한 편이어서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뒤바뀐 부부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국 재벌사회에서 오너 일가의 사위가 된다는 것은 며느리 못지않게 세간의 관심을 받는 부담을 감내해야 한다. 좋은 시선만 있는게 아니다. 신데렐라에 비교해 '남데렐라'라는 부정적인 색채가 강한 별칭을 얻는 이들은 사방에서 지켜보는 시선을 이겨낼 수 있는 '담력'을 갖춰야 한다.
 
또한 사위들은 그룹 경영에 참여해 '능력'을 보이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아예 경영에서 멀어져야 한다. 재벌가 사위들 가운데 상당수가 기업 경영과 상관없는 전문직, 즉 의사와 변호사, 대학교 교수 등이 이름을 올리는 이유다.
 
이런 사위들 가운데 조 전 이사장은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의 맏딸 이 고문과 결혼해 오너 일가의 사실상 모든 것들을 지근거리에서 목격했다. 의료인을 천직으로 알고 평생을 바치는 한편, 경영수완이 뛰어난 부인을 외조 했다. 이 고문의 업적은 조 전 이사장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특히, 그는 장인어른인 호암이 살아 있을 때와 별세 후에 벌어진 처남들 탈선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등 맏사위로서 집안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 조 전 이사장이 지난 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지난 1월30일 먼저 부인을 보낸 뒤 한달 만이다. 태어난 해는 달라도 떠나는 해가 같은 부부는 진정한 천생연분이라고 했다. 국내 최고기업의 맏사위라는 타이틀보다 의료인으로서 명성이 더 컸던 그는 삶의 마지막도 부부의 도리를 다한 인사로 기억될 전망이다.
 
조 전 이사장은 경상도 명문가인 한양 조씨 일문 조범석 가의 3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인 부친은 일찍이 금융계에 투신해 대구금융조합연합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조씨 가문은 해방 이후 박사만 14명을 배출하는 등 경북 일대의 명문 집안으로 유명했다.
 
시인 조지훈(본명 조동탁) 또한 조 전 이사장과 같은 가문 출신이다. 조 전 이사장은 경북대 의대(옛 대구의전)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대학원에서 소아과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서울대학교병원 근무를 시작으로 의료계에 뛰어들었다 . 
 
이 고문과 결혼 후 고려병원 원장,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병원협회장과 아시아병원연맹 회장을 지내는 등 국내 의료계 발전에 일평생 헌신했다. 
 
조 전 이사장은 모교인 경북대에 대한 사랑도 각별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경북대 총동창회장과 의과대학 총동창회장을 역임했으며, 은퇴 후에는 자신의 호를 딴 효석장학회를 설립해 모교인 경북대 후배들을 위한 장학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조 전 이사장은 슬하에 조동혁 한솔케미칼 회장,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조옥형씨, 조자형씨 등 3남 2녀를 두었다.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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