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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절망'을 빨아들이는 포용국가
2019-02-22 06:00:00 2019-02-22 06:00:00
'대충 사람의 씰루엣을 하고 있지만 도저히 사람으로는 볼 수 없는' 물체가 어느날 주인공의 남편이 된다. 정세랑 소설 <옥상에서 만나요> 주인공은 직장에서 갑질과 성희롱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하루를 버텨내는 인물이다. 비슷한 처지에 있던 절친 회사 언니들이 하나둘씩 결혼하며 떠나가자 주인공도 버거운 삶을 결혼으로 떨치길 바라는 마음에 '비법'을 전수받는다. 옥상에서 마법주문을 외우면 남편이 나타난다는 '믿기 어려운' 비법을. 그녀는 속는 셈 치고 주문을 외우는데 '사람'이 아니라 그 무엇인가가 나타난다. 운명이라 생각하고 집에 데려다 놓은 주인공. 새로 얻은 물체 같은 남편은 그녀에게서 '절망'을 빨아들인다. 남편은 절망을 빨아먹어야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판타지 소설 같기도 한 <옥상에서 만나요>는 생활고에 지친 이들에게 '절망'을 빼앗아 가면 얼마나 삶이 나아지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주인공은 본인의 절망이 더 남지 않자 공무원 시험 오수생, 왕따에 시달리는 여중생, 기르던 돼지를 구제역 파동으로 생매장한 축산업자 등을 집으로 데려와, 남편이 절망을 빨아들이게 한다. 절망을 없앤 사람들은 한결같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간다.
 
최근 발표되는 경제지표들의 결과를 보면 항상 '최악'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고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고, 분배는 점점 더 '빈익빈 부익부'화 돼간다. 소득주도성장이 무색하게 빨간불 '지표'들 뿐이다. 국민들의 삶에 점점 더 '절망'이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 오늘 통계청이 발표한 작년 4분기 소득분배지표는 더 벌어졌다. 특히 소득 하위 20%1분위의 가계소득은 17.7%나 급락했다. 상위 20%5분위는 10.4%나 증가했는데 말이다. 무엇보다 1분위의 근로소득은 36.8%나 떨어졌다. 1년 전 100만원을 벌었다면 이젠 632000원밖에 벌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더 이상 놔둘 수 없다고 본 정부도 다양한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특히 올 들어서는 '포용국가 복지정책'에 집중하며 돌봄부터 노후까지 아우르는 '2022년 달라지는 삶'을 제시했다. 모든 국민이, 전 생애에 걸쳐, 기본생활을 영위하는 나라라는 포용국가 청사진을 내놓은 것이다. 돌봄, 배움, , , 노후 등 국민 생애주기에 따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기본생활'을 보장하겠다는 내용이 뼈대다. 국가가 '기초생활' 보장을 넘어 국민이 더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도록 뒷받침하겠다는 취지다. 온종일 돌봄체계 구축, 고등학교 전면 무상교육과 대학 입학금 폐지, 사회서비스 일자리 34만개로 확대, 52시간 근무 안착, 치매 부담 비용 절반 줄이기 등의 내용이 담겼다.
 
문제는 3년 후, 정말 저렇게 달라진 삶으로 살고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는 데 있다. 국민들조차 '다함께 잘사는' 대한민국이 정말 오긴 오는 걸까 반신반의하는 모습이다. 대책들은 계속 쏟아져 나오는데 피부로 느끼는 체감과의 간극은 점점 커지면서다. '절망'은 직업, 직책, 소득, 부동산, 학력 등 상대적 박탈감에서 크게 느낀다. 포용국가를 외치는 정부라면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손에 잡히지 않는 뜬구름 같은 정책이 아닌, 좀 더 세밀한 정책으로 다가와야 한다. 서민들은 '절망'을 줄여주는 정책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김하늬 정책부 기자(hani487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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