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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이계진·박희태가 지금의 한국당을 본다면
2019-02-21 06:00:00 2019-02-21 07:42:17
최한영 정치부 기자
지난 2005년 11월21일, 이계진 의원이 한나라당 대변인에 임명됐다. 지금만큼 어지러웠던 여의도 정치권에서 이 대변인의 논평은 색달랐다. 임명 다음날 첫 브리핑에서 그는 추병직 당시 건설교통부 장관이 한현규 경기개발연구원장에게서 5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추 장관) 부인이 암 수술을 했다고 들었다. 지난해 총선을 치른 뒤 돈이 없어서 빌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이해한다는 논평을 했다.
 
이를 두고 당 내부에서 '분위기를 너무 모른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이 대변인은 "당직자 여러분 판단 기준에 맞지 않는 발언을 하더라도 이해해달라"며 소신발언을 이어갈 것임을 드러냈다. 이후로도 이 대변인 특유의 부드러운 화법은 이어졌다. 내용은 뼈아프더라도 사용하는 언어만큼은 순화시켰다. 정치권에서 사라진 '말의 품격'을 되찾기 위한 신선한 실험이라는 호평이 나왔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민주정의당(민정당)·민주자유당(민자당) 시절 '촌철살인의 명 대변인'으로 불렸다.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스캔들(내로남불)' '정치 9단' '총체적 난국' 등의 어록도 남겼다. 박 전 의장은 몇 년 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그래도 예전엔 위트가 살아 있었다. 요즘은 아주 막말을, 그것도 아주 강한 말을 해야 말을 잘한다고 잘못된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좋은 말은 좋은 사례를 많이 접하고, 끊임없이 말을 다듬으며, 창의적으로 생각해야 얻는다"는 조언도 내놨다.
 
이계진·박희태가 몸 담았던 당의 후신인 자유한국당의 대표·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합동연설회가 화제다. 그 중심에 김준교 청년최고위원 후보가 있다. 김 후보는 지난 18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대구·경북권 합동연설회에서 "저딴 게 무슨 대통령인가. 저는 절대로 저 자를 우리 지도자로 인정할 수 없다" "제게 90% 이상의 표를 몰아주면 문재인은 반드시 탄핵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은 지금 나라를 팔아먹고 있다" "이대로 가면 자유 대한민국에는 북한 김정은이 독재하는 남조선 인민공화국이 탄생할 것"이라는 원색적인 발언도 있었다. 김준교 후보의 발언에 다른 후보들의 강성발언이 묻힐 정도였다. 김 후보의 발언을 듣는 두 전직 대변인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보수 정당 정치인들은 엄격한 자기관리와 절제된 언어. 예의바른 태도를 기본으로 한다. 김준교 후보가 사용하는 자극적인 언어들은 좋게 말해도 노이즈마케팅, 본질적으로는 분노를 유발해 흥행을 꾀하는 '분노상업주의'에 불과하다. 이 과정에서 한국당 전당대회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대선패배, 지방선거 참패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한 장이 돼야 한다는 본질도 사라졌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런 사람이 청년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선 한국당이라면, 그 미래는 암담하다"고 촌평했다. 김준교 후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여부가 한국당의 자생·자정능력을 검증하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런 분위기를 본인은 알고 있을까.
 
최한영 정치부 기자(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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