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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윤리적인 손쉬운 실천 한 조각”
아동 노동 착취를 없애는 공정무역 초콜릿
2019-02-11 08:00:10 2019-02-11 08:00:10
2017년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가공식품 세부시장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초콜릿 시장규모는 2015년 기준으로 1조1567억원이다. 최근 5년간 꾸준히 1조원 이상으로 집계됐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평균 초콜릿 소비량은 607g이다. 한 사람이 1년에 8개가량의 판(板)초콜릿을 섭취하는 셈이다. 
 
그러나 초콜릿 생산 과정에 대한 관심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2000년대 초반, 영국 BBC방송에 의해 초콜릿 원료인 카카오 생산 과정에서의 아동 노동 착취 실태가 밝혀졌다. 이후 국제적인 논의가 이어졌으나 실상은 아직 변한 게 많지 않다.
 
아이들의 눈물로 만들어진 달콤한 초콜릿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5~17세의 아이들은 전기톱이나 칼을 가지고 나무를 오르내리며 카카오를 수확한다. 그들은 수확한 카카오를 머리에 이고 험한 산길을 이동한다. 농장에서는 병충해에 취약한 카카오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화학 물질과 농약이 사용되지만, 아이들에게 안전 장비나 보호구는 제공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칼날의 길이가 40cm에 이르는 ‘마체테’라는 칼을 이용해 껍질을 벗긴다. 아이들은 종일 뙤약볕 아래서 카카오를 말리고 자루에 담는 고된 노동을 반복한다.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지만 정작 이들은 초콜릿을 먹어본 적 없고 카카오가 초콜릿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세계 카카오 생산의 약 70%를 차지하는 서아프리카에서는 지금도 220만여명의 아동이 카카오 재배 노동에 동원되고 있다. 이는 한국 청소년의 4.5%에 해당하는 숫자다. 2016년 기준 가나의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아동의 하루 평균 임금은 0.45달러, 코트디부아르는 0.34달러다.
 
아동이 학교에 다니는 대신 착취 수준의 노동 현장에 내몰리는 상황이지만 또 다른 심각한 문제가 있다. 코트디부아르 카카오 농장에서는 말리 공화국, 부르키나파소, 토고 등의 서아프리카 주변 최빈국에서 아이들을 데려와 임금을 주지 않고 강제 동원해 ‘노예’로 부린다. 대부분 납치돼 농장주들에게 헐값에 팔려오거나 학교와 일자리를 마련해준다는 불법 브로커의 말에 부모들이 2만~3만원을 받고 넘겨 오게 됐다. 코트디부아르에만 약 1만2000여명의 인신매매 피해 아동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강제로 끌려온 아이들은 중노동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학대와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아동 노동이 인간의 존엄성과 자존감을 박탈하며 어린이의 정신적, 육체적 성장에 악영향을 준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초콜릿 제조업체들은 아동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코코아기구(ICI)를 만드는 등 개선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미국에선 정부 차원의 대응이 이루어졌다.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 톰 하킨과 하원의원 엘리엇 엥겔은 코트디부아르에서 카카오를 수입하는 초콜릿 제조업체들과 2001년 ‘하킨-엥겔 협약’(Harkin-Engel Protocol)을 맺었다. ‘코코아 협약’이라고도 불리는 이 협약은 ILO 조약 182호에 따라 카카오 생산 단계에서 ‘가혹한 형태의 아동노동’을 2005년까지 근절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기업들에 해당 농장에 아동노동이 전혀 없다는 점을 직접 증명하도록 할 것”, “기업들은 아동 노동자들이 각자 자기 나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할 것” 등의 항목이 의무사항에 포함돼 있다. 
 
2017년 12월 무역의 날을 앞두고 서울 강남구 무역센터 앞에서 열린 '메이크 트레이드 페어' 캠페인에서 공정무역단체 아름다운커피 관계자들이 공정무역 확대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공정무역 커피를 배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아동 노동 착취 근본 원인은 왜곡된 초콜릿 시장
 
아동노동 근절을 목표로 한 하킨-엥겔 협약의 기존 이행 마감은 2008년이었으나 2010년으로 미뤄졌다. 문제 해결 시간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초콜릿 제조업체들은 “2020년까지 서아프리카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는 아동 40만명을 노동에서 해방하겠다”는 2010년에 설정한 목표에 집중하고 있다.
 
2014년 초콜릿 제조업체 10곳은 세계코코아재단(World Cocoa Foundation)을 통해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의 30만명 농부에게 제공할 생산성 향상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그러나 2015년 코트디부아르 교육기관 엔시아(ENSEA)와 함께 연구를 진행한 툴레인대학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의 아동 노동 비율은 2010년보다 되려 2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기구와 여론의 거센 비판에 기업들이 문제 해결을 선언했으나 20년 가까이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아동 노동 착취의 근본적인 문제는 초콜릿 시장의 구조에서 비롯된다. 카카오 가격 결정자는 초콜릿 업체를 위해 일하는 브로커들이다. 브로커들은 기업의 이윤을 위해 1킬로그램에 1.5달러라는 터무니없는 값으로 카카오 가격을 책정한다. 자유무역 구조 아래 무한 경쟁에 내몰린 농장주들은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법을 어기면서까지 아동을 고용한다. 아동을 납치하거나 사고파는 일도 일어난다. 이렇게 만들어진 초콜릿의 이윤은 대부분 소수의 다국적 초콜릿 제조업체와 유통 회사에 돌아가고 카카오 생산자들은 소비자가 내는 초콜릿 가격의 6% 정도에 해당하는 금액을 손에 쥔다. 서아프리카가 세계 카카오 생산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빈곤과 아동 노동 착취의 악순환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원인으로 불합리한 국제 카카오 시장 구조가 지적된다.
 
아동 노동 착취 근절 대안, 공정무역
 
전문가들은 아동 노동 착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기업의 자발적 의지를 견인할 국가, 시민사회, 소비자 등 다양한 주체들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으로 ‘공정무역’ 인증제를 꼽을 수 있다.
 
공정무역은 자유무역 형태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영세한 노동자의 자립을 돕고 지역공동체의 지속적인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국제 무역 시장 모델에 기초해 조직된 사회 운동이다. 이 운동은 개발도상국 생산노동자에게 기존 교역보다 나은 수준의 대가를 보장한다. 이를 통해 노동자의 권리 보장과 빈곤 퇴치에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원료 채취와 상품 생산 과정에서 훼손되기 쉬운 환경을 보호하는 데에도 주효하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열대 우림을 없애 경작지를 넓히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행위를 막아 생태계 파괴를 줄이는 것이다.
 
세계공정무역기구(WFTO)가 발표한 공정 무역 10원칙에는 아동 노동과 강제 노동 금지, 양호한 노동조건 보장 등 노동자 학대 방지 기준이 명시돼 있다. 생산자 인권 보호는 공정무역의 주요 목적 중 하나이며 공정무역기구는 정기적으로 생산지를 관찰해 원칙 준수 여부를 확인한다. 
 
공정무역 초콜릿은 카카오 생산 노동자에게 정당한 카카오 가격 및 생산지의 사회적 개발을 위한 공동체발전기금(Social premium)을 지급한다. 공동체발전기금은 개인이 아닌 생산자 조합 차원에서 쓰이며 지역 사회 인프라 구축에 활용된다. 실제로 가나 쿠아파 코쿠 협동조합은 공정무역 수입으로 우물을 만들어 마을의 물 부족을 해결했다. 더불어 공정무역은 코트디부아르 코코아 농가의 여성 리더십 학교 개설, 아동 및 강제 노동 퇴치를 위한 프로그램 등 장기적인 교육을 제공하고 추가 교류를 통해 지속 가능한 삶을 촉진하고 있다.
 
공정무역기구(FL)의 2016년 ‘공정무역과 코코아(Fair trade and Cocoa) 보고서’에 따르면 20개국에 129개의 공정무역 인증 카카오 생산자 단체가 있으며, 약 17만9800명의 농부가 공정무역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해당 단체의 수익은 카카오 협동조합의 시설 정비와 생산자 노동 환경 개선 등을 위한 기초 자금으로 활용되고 있다.
 
마루, 이퀄, GEPA 초콜릿 등 공정무역 제품이 많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중에서도 세계적으로 가장 인지도가 높은 공정무역 제품은 ‘디바인 초콜릿’이다. 디바인 초콜릿은 1990년대 후반 가나 협동조합 쿠아파 코쿠와 서구 공정무역 단체의 협력으로 세워진 기업이다. 쿠아파 코쿠는 공정무역의 보호를 받으며 카카오를 단순 생산하는 일에 그치지 않고 완제품 초콜릿을 만들고자 했다. 이들은 영국 개발협력기구 트윈트레이딩과 바디숍의 창업자 아니타 로딕과 협업해 기업을 만들었다. 디바인 초콜릿의 상징은 가나의 전통 문양이 들어간 패키지다. 조합 대표자들은 회사 지분 절반가량을 가지고 있어 의사 결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디바인 초콜릿’은 지속 가능한 발전과 상업적 성공까지 거둬 지금까지 대표적인 공정무역 초콜릿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18년엔 ‘미닝 아웃(meaning-out)’이 소비 트렌드를 이끈 것으로 분석된다. ‘미닝 아웃’이란 소비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신념을 표현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사회적 공분을 산 ‘갑질 기업’의 상품을 보이콧하거나, 조금 더 비싸더라도 지속 가능한 가치를 추구하는 ‘착한 기업’의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공정무역도 ‘미닝 아웃’의 일환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공정무역의 한계…아동 노동 착취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
 
한계는 남아있다. 일부 소비자들의 의식 있는 ‘착한 소비’만으론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아프리카 정부, 초콜릿 제조업체, 국제기구와 시민단체의 복합적인 협력이 필요하다. 최근 코트디부아르 정부는 카카오 재배로 인한 삼림 파괴와 아동 노동 착취를 막기 위한 세부 계획안을 발표했다. 10년 이내에 국토의 20%를 녹지화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할 충분한 자본이 없어 지난해 5월 초콜릿 제조업체와 기부자들에게 11억달러 규모의 재정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유럽연합(EU)과 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UNEP FI)는 지속가능한 카카오 생산을 위한 금융 모델 도입을 제시했다. 네슬레, 허쉬, 페레로 등 12개의 초콜릿 제조업체도 100% 합법적인 카카오 납품만 허용하겠다는 시행 계획 및 합의 방안 등을 내놨다. 
 
다만 정책의 목표가 아동 노동 착취가 아닌 삼림 보호에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아동 노동 착취를 통한 원료 생산으로 거듭 논란이 됐던 초콜릿 제조 업체인 네슬레 또한 삼림 벌채 근절을 목표로 하는 국제 캠페인을 후원하는 등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2017년 국제환경단체 마이티어스(Mighty Earth)는 초콜릿 산업이 지금과 같은 상태로 유지되면 2030년 코트디부아르의 열대 우림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고 다음 해 EU는 산림 개간을 위해서 입법이 필요하다는 타당성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코트디부아르 가나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의 국가는 초콜릿 제조업체들과 함께 서부 아프리카 삼림 파괴 근절 합의안에 서명했다.  
 
코트디부아르 정부는 아동 착취 노동을 없애고 아동을 학교로 돌려보내기 위해 2011년부터 학교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다. 정부는 2000만유로를 투입해 전국에 1만8000여개의 교실을 만들었지만, 개별 농장에 과도한 카카오 생산을 요구하는 초콜릿 제조업체 때문에 아동노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학교가 있어도 근본적으로 저소득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등록금이나 교복, 책과 같은 기타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어 아이들이 다시 농장으로 돌아가는 것도 또 다른 문제다.
 
공정무역은 단순 원조 아닌 정당한 가격을 통한 가치 있는 거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욱 복합적이고 단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카카오 생산 노동자들 일부가 카카오 생산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 우선사항이 될 수 있다. 공정무역이 확대되면 카카오 생산 노동자의 자녀들에 대한 후원과 양질의 교육이 가능해진다. 교육은 생산 노동자나 생산 노동자 자녀가 카카오 생산을 떠나 다른 직업에 종사할 가능성을 높인다. 카카오 생산 종사자를 줄여나가 궁극적으로 남은 이들이 합리적인 이익을 얻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공정무역이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 또한 공정무역의 원칙을 지키도록 촉구해 현지 아동 인권을 신장하는 데에 유용한 역할을 한다. 
 
이혜란 아름다운커피 홍보캠페인팀장은 “공정무역은 단순 원조가 아닌 정당한 가격을 통한 가치 있는 거래”라며 “공정무역을 통해 일부 노동자를 카카오 생산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남아 있는 노동자들이 적절한 대가를 받고 아동 노동 착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들의 공정무역 소비와 더불어 대기업의 공정무역 참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선은 KSRN 기자
편집 KSRN집행위원회(www.ksr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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