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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100세 앞에 선 고독과 이별의 슬픔
2019-02-11 07:00:00 2019-02-11 07:00:00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
“시집 가고 싶지 않다”는 처녀의 말, “밑지고 판다”는 상인의 말, 그리고 “빨리 죽고 싶다”는 노인의 말은 널리 알려진 3대 빈말이다. 그러나 NGO 활동을 함께 하는 친구 모친이 하시는 말씀과 정부위원회에서 같이 일하는 기초의학 전문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연로한 어르신들께서는 배우자가 있어도 외로움을 심하게 탄다. 친구 자당께서는 가끔 말씀하신다. “사는 게 참 무료해. 자꾸 오지 말고 나 죽거든 와.”
 
이쯤 되면 “빨리 죽고 싶다”는 노인들의 말씀은 빈말이 아닐지도 모른다. 80대 중반이 고비인 것 같다. ‘계모임은 언제쯤 막을 내릴까’, ‘동창회는 언제가 마지막일까’, ‘언제까지 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 ‘산책은 언제까지 가능할까’, ‘죽음은 언제 찾아올까’ 이 모든 화두가 노인들을 엄습한다. 주변 친구들의 죽음은 노년의 외로움을 특히 가중시킨다. 터키의 고전 ‘투티나메(Tuti Nameh)’는 수많은 이별을 감당하기 어려워 영생까지 포기하는 이야기를 전한다.
 
이슬람 문명권에서 ‘아라비안 나이트’와 비교되는 ‘투티 나메’는 14세기 페르시아 시인 낫셰비에 의해 페르시아어로 번역된 이후 수 세기에 걸쳐 각국 말로 소개되면서 세계적 고전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년 전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로 출간되었다. 이 고전은 시리아의 사냥꾼에게 붙잡힌 지혜로운 앵무새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코바트 황제의 고문이 된 앵무새는 황제를 독살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사형을 언도받는다. 고문 앵무새는 인생의 지혜가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며 하룻밤 처형을 유예 받는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 속에 의술 앵무새 이야기가 다시 나온다.
 
의술 앵무새는 자기를 총애하는 왕에게 생명수 열매를 바쳤다. 왕은 이를 먹지 않고 심었더니 많은 열매가 달렸다. 열매를 먹은 사형수가 죽어버렸다. 격노한 왕은 앵무새의 처형을 명했다. 앵무새는 “그리스 공주를 사모한 중국황제의 이야기를 들어보지 않겠느냐”며 처형을 면했다. 날이 새고, 왕이 앵무새의 말을 듣고 나무를 불태우자 아래에서 구렁이가 나왔다. 왕이 그 열매를 먹자 젊어졌다. 왕은 회춘을 꿈꾸는 노년을 대변한다.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 ‘살로모 왕과 영생’이 등장한다.
 
어느 날 터키의 살로모 대왕은 아끼던 앵무새가 방자하게 굴자 사형을 명했다. 방자 앵무새는 대왕에게 살 방도를 간청했다. 대왕은 불사의 방법을 알아오면 살려주겠다고 답했다. 며칠 후 앵무새는 대왕에게 말했다. “불사의 비결을 찾았나이다. 아뢰옵기 전에 여쭙겠나이다. 영생하시오면 손자의 손자까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끝없이 지켜보실 터인데, 그 수많은 이별을 어떻게 다 감당하시겠사옵니까?” 크게 감탄한 살로모 대왕은 앵무새를 사면했다.
 
불사의 노년은 수많은 이별을 감당하기 어렵고, 과거를 거슬러 회춘한 노년은 가족과 친지들과 어울릴 수 없다. 고전의 가르침대로 회춘도 영생도 마다하고 그대로 늙어가려니,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외치지만, 내심 무료하고 고독하다. 육신은 고달프고 정신의 총기도 떨어진다. 저축한 돈을 곶감 빼먹듯이 쓰고 연금으로 생계를 지탱하지만 삶이 재미가 없다고 느낀다. 정든 곳에서 살던 대로 살다가 죽고 싶음에도 자식들은 “부모 시중이 어렵고 다칠 우려가 있다”며 “요양병원에 들어가시라”고 등을 떠민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 우리나라 노인들의 좌표가 이렇다. “어떻게 살 것인가?(How to live?)”는 청년부터 노년까지 따라다니는 철학적 명제이다. 만 99세의 김형석 명예교수는 고독을 면하고 건강을 유지하려면 “늙어도 열심히 일하고 사회에 봉사하라”고 권한다. 사회봉사는 개인적 과업이지만 일자리는 사회공동체, 시장 및 정부의 공동과업이다. 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는 빈곤퇴치를 으뜸으로 꼽는다. 노년빈곤의 방치는 경제와 복지 양면에서 치명적이다.
 
4차 산업혁명을 앞세운 첨단 일자리는 청년들의 몫이다. 월 100만원 내지 60만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는 노년의 일자리들은 첨단이 아닌 재래산업에 있다. 월 50만원의 정부 지원금에 그쳐서는 아니 된다. 교육, 자문, 안내, 경비, 관리, 판매, 농업, 자원순환 등에서 노년형 일자리를 개발하여야 한다. 노년의 일자리는 노인을 무료함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만드는 복지정책이다. 조기 퇴직 후 여력이 있어 노는 데 몰두하는 베이비부머들은 쉴 만큼 쉰 다음 사회봉사를 통해 존재가치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doctorch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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