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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극한직업’ 이병헌 감독, 작정하고 코미디 ‘완전 OK!’
시나리오 읽자마자 연출 결정…“내가 잘할 포인트 많았다”
“이래도 될까 싶을 정도로 매 장면 코미디 집어 넣었다”
2019-01-29 00:00:00 2019-01-29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충무로에선 각색작가로 유명세를 떨쳤다. 영화 과속스캔들’ ‘써니’ ‘타짜-신의 손각색에 참여하면서 흥행에 힘을 보탰다. 영화계에서 시나리오 각색은 상당히 어려운 작업으로 통한다. 기본 골격이 갖춰진 시나리오를 해체하고 재구성을 하는 작업이다. 때문에 각 장르에 대한 이해도는 물론 영화적인 센스가 남달라야 한다. 이병헌 감독은 이런 작업에서 충무로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화인이다. 이미 스물’ ‘바람바람바람으로 자신의 연출작을 선보이며 코미디분야에선 사실상 타짜로 불릴 정도로 적수가 없는 상태다. 그가 각색에 참여한 작품 라인업만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도 알 수 있다. 그는 코미디 장르의 완벽한 타짜다. 그런 이 감독이 제대로 웃겨보겠다고 시나리오 한 편에 다시 손을 댔다. 이런 타짜가 맘먹고 달려들었다. 이 정도면 안 웃고는 버틸 재간이 없다. 충무로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과 만났다.
 
이병헌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가 개봉하고 며칠 뒤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이 감독은 특유의 유쾌하고 밝은 분위기였다. 달변은 아니지만 질문에 대한 답변 자체에 특유의 위트가 녹아 있었다. 그의 답변을 듣고 있으면 지금까지 만들어 온 영화 속 유머가 만듦이 아닌 그의 성격 자체임을 느끼게 했다. 사실 그는 상당히 우울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고 그 순간에 극한직업시나리오 연출 제안을 받게 됐었단다.
 
“’바람바람바람연출을 끝내고 좀 슬럼프라고 할까. 약간 감정의 굴곡을 느끼고 있었어요. 뭔가 다른 얘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때 제작사 대표님으로부터 극한직업시나리오를 건네 받았어요. 우선 이번 영화는 제가 쓴 걸로 아시는 분들이 많은 데 제 글은 아닙니다(웃음). ‘완벽한 타인을 쓰신 배세영 작가님 작품인데, 읽자마자 이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가 하면 잘 할 수 있는 포인트가 아주 많았어요. 우선 저부터 너무 웃었거든요. 하하하.”
 
그가 이 영화 연출을 결심하면서 한 가지 원칙을 세운 것은 매 씬(scene)마다 무조건 유머 코드를 집어 넣는 것이었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작정하고 웃을 수 있게 만들기였단다. 이 원칙을 세운 뒤 자신의 장기인 각색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충무로 최고 각색작가답게 그는 완벽하게 구축된 틀을 조금씩 자신의 색깔에 맞게 해체하고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이병헌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우선 배 작가님이 쓴 재미있는 대사를 거의 손을 안 댔어요. 예고편에 나온 대사들은 모두 작가님의 솜씨에요(웃음). 전 연출자이기에 전체 시나리오에서 기술적인 지점에 손을 좀 댔죠. 리듬적인 지점과 구조를 조금 바꾸고 인물 등에서 수정을 했어요. 사실 크게 손을 댈 지점도 없었어요. 분량 면에서 원래 시나리오보다 20페이지 정도가 줄어들었죠. 처음에는 수정을 하면서 이래도 될까싶을 정도로 코미디를 다 집어 넣었어요. 걱정도 됐는데 나중에는 편집에서 덜어내자는 생각이었죠.”
 
이 감독은 단 세 편(?) 연출로 충무로 최고의 코미디 달인으로 등극했다. 그가 각색 작가로 참여했던 과속스캔들’ ‘써니도 꽤 강도 높은 코미디 요소가 곳곳에 포진해 있다. 그에게 코미디는 장르가 아닌 분신과도 같은 의미가 됐다. 이 정도면 본능적인지 훈련에 의한 것인지도 궁금했다. 그가 손을 대면 어떤 장르도 코미디로 탈바꿈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단 세 편(?)이지만 그게 시간이 아주 길었죠. 하하하. 제가 좋아하는 것이기에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에요. 예전에는 습작으로 호러물도 써보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저랑은 절대 안 맞더라고요. 하루 종일 무서운 생각만 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 싫었어요(웃음). 그리고 아이디어도 안 떠오르더라고요. 코미디를 할 때 가장 아이디어가 잘 떠올라요. 그래서 사람은 하고 싶은 걸 해야 하나 봐요. 하하하. 사실 전작 두 편도 코미디 영화라고 불리지만 웃기는 게 우선은 아닌 영화였어요.”
 
이병헌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극한직업을 위해선 그의 전작 두 편에 대한 질문이 이어져야 했다. 상업 영화 데뷔작 스물과 두 번째 연출작 바람바람바람은 그의 말을 빌리자면 전작 두 편은 감정을 따라가는 코미디라면 이번 극한직업은 상황을 따라가는 코미디다. 그 상황을 만들어 주고 현장에서 배우들이 어떻게 하는지 만을 관찰하면 됐단다. 결과적으로 촬영 당시에는 자신이 할 일이 별로 없었다며 웃는다.
 
전작 두 편이 감정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보니 제가 배우들에게 질문을 많이 받았죠. 그런데 이번에는 반대였어요. 전작들에선 어투나, 감정, 리듬 등으로 재미가 바뀌다 보니 제가 원하는 대로 요구를 많이 했어요. 이번에는 이거 재미있어요?’라고 많이 물어봤죠. 조금이라도 과하지 않을까 비현실적이지 않을까 조심했죠. 일부 장면에선 너무 웃겨서 손을 대려 했다가 제가 아니다라고 포기한 적도 많아요(웃음)”
 
이번 영화의 가장 유명한 대사인 류승룡의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에 대한 탄생 배경을 두고 한 말이다. 그는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주인공 고반장역에 무조건 류승룡을 첫 손가락에 꼽았단다. 다른 스태프들도 이견을 달지 않았다고. 사실 이 작품 전까지 류승룡은 충무로 흥행 보증 수표에서 흥행 부도 수표로 불릴 정도로 흥행 타율이 좋지 않았다.
 
이병헌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그냥 류승룡 선배였어요. 맨 먼저 캐스팅이 됐죠. 누가봐도 류승룡이었어요(웃음). 최근 영화들의 결과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죠. 이 코미디는 제가 알기론 류승룡 선배 외에는 달리 대안이 없었어요. 예고편의 그 대사를 시나리오로 읽을 때 승룡 선배가 구사한 그 어투가 머리 속에 그려졌었거든요. 그걸 눈앞에 그대로 구현하셨죠. 제가 어떤 주문도 안 했어요. 너무 웃겨서 조금 수위를 낮출까란 생각이 아주 잠시 들었는데. 곧바로 아니다. 내가 흠집을 내는 것 같다란 생각에 섬뜩했었죠. 그 대사의 맛은 오롯이 승룡 선배의 몫입니다(웃음)”
 
류승룡이 캐스팅되자 다른 배우들의 라인업도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크랭크인 전 주변에선 이번 영화 속 조합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었단다. 하지만 이 감독은 특유의 감각과 센스로 지금의 배우 라인업을 밀고 나갔다. 자신이 믿고 있는 지점이 있었고 그 지점을 지금의 배우들이 분명히 완성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그 믿음은 고스란히 결과물로 이어졌다.
 
이하늬와 진선규의 조합은 뭔가 전형성을 좀 벗어나고 싶었죠. 그런데 그 둘을 붙여 놓으니 상당히 유니크한 커플이 되더라고요. 너무 마음에 들었죠. 특히 진선규는 범죄도시이후 곧바로 이 작품에 합류했어요. 주변에서 우려도 있었는데 사실 뭘 해도 범죄도시속 위성락 캐릭터만 아니면 신선할 것이라 확신했죠. 진짜 어려운 역은 이동휘 였어요. 극 전체의 중심을 잡아줘야 했는데 그 완급을 기가 막히게 해줬어요. 공명 역시 너무 마음에 들었죠. 뭔가 언밸런스한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딱 나왔잖아요. 하하하.”
 
이병헌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워낙 웃기고 강한 코미디 장치가 넘치는 영화이기에 구석구석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많았다. 큰 틀에서 이 영화의 가장 궁금한 지점들은 치킨’ ‘경찰’ ‘마약등이었다. 치킨은 수원왕갈비통닭에 대한 궁금증이다. 실제로 온라인에선 영화 속 치킨 가게를 찾는 열풍이 불고 있다. ‘경찰은 영화 속 캐릭터들의 직업이고 워낙 묘사가 디테일 했다. 여기에 마약은 스포일러에 해당하지만 기묘한 장치로 흥미롭게 사용됐다.
 
하하하. 수원왕갈비통닭은 처음 시나리오에서부터의 설정이에요. 당시에는 갈비맛 치킨이 없었는데 지금은 프랜차이즈 치킨 브랜드에서 나왔더라고요. 좀 놀라긴 했죠. 영화 속 자영업자에 대한 위트와 표현은 제가 예전에 작은 우동집을 하다가 망한 적이 있어서 제 경험이 좀 녹아있어요. 아픈 기억이죠(웃음). 경찰들은 제 매형도 경찰이고 친구들 중에 경찰이 많아요. 그래서 조언을 많이 들었죠. 과장이 섞여 있지만 그분들도 상당히 고된 생활의 연속이더라고요. 마약은? 스포일러인데. 하하하. 영화로 봐주세요(웃음)”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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