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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유령 아닌 인간의 이야기, 뮤지컬 '팬텀'
새롭게 해석한 '오페라의 유령'…세 번째 시즌 개막
2018-12-13 07:57:42 2018-12-14 10:26:01
[뉴스토마토 정초원 기자] '팬텀은 왜 오페라극장 지하에 숨어살게 된 것일까?'
 
뮤지컬 '팬텀'이 펼치는 이야기는 이 질문 하나로부터 출발한다. 흉측한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채 모두를 공포로 몰아넣는 '오페라의 유령'이 아니라, 인간 '에릭'이 유령이 될 수밖에 없었던 숨겨진 과거를 한국적 감성으로 풀어냈다.
 
사진/EMK뮤지컬컴퍼니
 
지난 1일 국내 세 번째 시즌을 시작한 뮤지컬 '팬텀'은 가스통 르루의 대표작 '오페라의 유령(Le Fantome de l'Opera)'을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사실 관객들에게 더 친숙한 작품은 동일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일 터. 같은 뿌리를 갖고 있지만 두 작품이 인물을 해석하는 관점은 판이하다. 이미 '오페라의 유령'을 접했던 국내 뮤지컬 팬들이 '팬텀'을 전혀 다른 작품으로 받아들이고 수차례 재관람에 나서는 이유다.
 
'팬텀'의 이야기 줄기는 크게 두 가지로 뻗어 나간다. 크리스틴 다에가 오페라 가수로서의 재능을 꽃피우는 '성장기', 그리고 팬텀이 지하세계에서 가면을 쓰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숨겨진 배경'이다. 선발주자였던 '오페라의 유령'이 주인공 세 남녀의 감정선과 특유의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극의 전면에 내세웠다면, '팬텀'은 개인의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물론 '팬텀'에서도 여주인공인 크리스틴 다에를 둘러싼 두 남자의 삼각관계가 펼쳐지기는 한다. 하지만 극의 주요 서사라고 보기에는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아, 원작과 비슷한 러브라인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생경하게 느껴질 수 있다. 팬텀이 크리스틴에게 사랑을 느끼는 이유 또한 그의 숨겨진 비밀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어, 결국은 남녀간의 사랑보다는 팬텀의 아픔 그 자체에 극의 무게중심이 실린다.
 
사진/EMK뮤지컬컴퍼니
 
무대가 시작되면 1막에서는 화려한 오페라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 중심에 크리스틴 다에가 있다. 노래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가진 크리스틴은 우여곡절 끝에 오페라 의상팀 보조직원으로 일하게 되고,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본 팬텀은 직접 노래를 지도해주기 위해 그녀 앞에 나선다. 특히 크리스틴이 새로운 디바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 '비스트로'는 성장스토리 특유의 희열을 극대화한 넘버다. 이 장면을 통해 크리스틴 역을 맡은 배우 이지혜의 기량이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1막 내내 '디바'보다는 '사랑스러운 여인'에 가까웠던 배우의 음색과 연기가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철저히 절제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관객들은 뒤늦게 알아채게 된다. 
 
사진/EMK뮤지컬컴퍼니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 마담 까를로타의 활약도 1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까를로타는 오페라 극장장인 남편을 둔 덕에 형편없는 실력에도 오페라 디바 자리를 차지한 인물. 극 중에서 '미워할 수 없는 악역'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시즌에 이어 까를로타 역할을 맡은 뮤지컬 배우 정영주는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로 극을 환기시키며 공연의 완성도를 높인다.
 
그중에서도 까를로타가 '아이다', '라 트라비아타', '발퀴레' 등 고전 오페라를 '공연 속 공연' 형태로 선보이는 장면은 배우 스스로 "1막의 백미"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인상적인 대목이다. 크리스틴의 무대가 관객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만찬이었다면, 한바탕 소동에 가까운 까를로타의 오페라는 전체 극에 감칠맛을 더하는 양념이다. 각 오페라신의 콘셉트에 맞춰 준비한 화려한 의상과 디테일한 소품 또한 관객의 눈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한 장치다. 
 
사진/EMK뮤지컬컴퍼니
 
다만 오페라 하우스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샹들리에 추락신은 그 박진감이 다소 미약하다. 무대 상단에 매달린 채 공연 내내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 '팬텀'의 샹들리에는 제작팀의 노고가 느껴질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다운 외형을 자랑한다. 하지만 샹들리에가 추락하는 1막 엔딩 장면을 보는 순간, 선발주자인 '오페라의 유령'이 비슷한 장면을 통해 전달했던 무게감과 비교하게 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객석 천장에 있던 대형 샹들리에가 관객 위를 가로지르며 떨어지는 스릴 넘치는 연출은 '오페라의 유령'을 대표해온 명장면이다. 반면 '팬텀'에서는 분노한 주인공이 샹들리에의 줄을 거칠게 내려 제한된 무대 공간 안에 안착시키는 정도에 그친다. 물론 기존 '오페라의 유령'의 연출을 알지 못한 상태였다면 '팬텀'의 샹들리에 장면을 보고도 별다른 흠을 잡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결국 후발 작품인 '팬텀'을 괴롭히는 핸디캡이자 최대의 숙제는 이미 뮤지컬계의 전설이 돼버린 '오페라의 유령'과의 비교를 원하든 원치 않든 당할 수밖에 없다는 점 아닐까. 
 
사진/EMK뮤지컬컴퍼니
 
2막에서는 팬텀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인간 에릭의 과거사가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팬텀을 남몰래 도와주던 제라드 카리에르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관객은 알면서도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는 감성 코드에 노출된다. 팬텀과 제라드가 하모니를 이루는 극의 막바지, "알고 있었어요/흐르는 세월에"로 시작하는 노랫말이 흘러나오면 당초 팔짱을 낀 채 무대를 지켜보던 관객이라 할지라도 팬텀의 슬픔에 감정을 이입하게 될 듯하다.
 
김주원 등 국내 정상급 무용수들이 클래식 발레로 표현하는 제라드 카리에르와 벨라도바의 사랑이야기도 2막에서 느낄 수 있는 색다른 재미다. 한 편의 공연 안에서 뮤지컬부터 발레까지 다양한 장르를 종합선물세트처럼 선사하려는 '팬텀' 팀의 야심이 엿보인다.  
 
올해 세 번째 시즌을 맞은 '팬텀'은 오페라 극장 지하를 떠도는 팬텀 역에 임태경, 정성화, 카이를 캐스팅했으며,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크리스틴 다에 역에 김순영, 김유진, 이지혜를 낙점했다. 공연은 내년 2월17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다. 
 
정초원 기자 chowon61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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