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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복지부와 국민연금에 묻는다…사회책임투자 밭은 언제 갈려하는가
2018-12-10 08:00:00 2018-12-10 08:00:00
중국 전한(前漢) 때의 유학자인 동중서(董仲舒)는 제자백가(諸子百家)를 퇴출하고 유교 확립의 길을 연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경제(景帝) 때 박사(博士)의 직위로 이미 관직에 있던 그는 무제(武帝)가 즉위 후 널리 인재를 구하자, 현량(賢良)으로 천거돼 정치 현안에 관한 무제의 ‘책문’(策問)에 그의 견해를 밝힌 ‘대책’(對策)을 내놓았다.
 
그의 대책은 무제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는데, 이른바 ‘원광원년거현량대책’(元光元年擧賢良對策)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대책’은 여기서 비롯됐다. 이 현량대책은 한서(漢書) 동중서전(董仲舒傳)에 기록돼 있는데, 우리나라의 현 시국에 적용해도 좋은 고사성어도 나온다.
 
바로 ‘해현경장’(解弦更張)이다. 이 고사성어는 “거문고 소리가 조화롭지 못하고 심한 경우에는 필히 느슨해진 줄을 풀어 고쳐 매주어야만 연주할 수 있다”(竊譬之琴瑟不調, 甚者必解而更張之, 乃可鼓也)에서 유래했다. 동중서는 다음과 같은 글도 담았다.
 
“마땅히 줄을 고쳐 매어야 할 때 매지 않는다면 아무리 훌륭한 악공도 조율을 잘 할 수 없다. 마땅히 개혁을 해야 할 때 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현인이라도 다스릴 수 없다. 따라서 한나라가 천하를 차지한 이래 늘 나라를 잘 다스리고자 했으나 지금까지 그럴 수 없었던 건 마땅히 개혁해야 할 때 개혁하지 않아서다.”
 
그래서 “느슨해진 거문고 줄을 팽팽하게 고쳐 매다”로 직역되는 ‘해현경장’은 조직의 풀어진 긴장을 다시 조이거나, 느슨해진 정치·경제·사회 등의 제도 개혁을 단행한다는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촛불민심을 얻어 출범한 현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후퇴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각계에서 높아지고 있다. 노동, 재벌개혁 등 사회·경제 분야에서 특히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필자가 전문으로 하는 사회책임투자(SRI) 분야에서도 불안한 조짐이 감지된다. 
 
국민연금은 글로벌 흐름이라는 대세와 문재인 정부의 공약을 배경으로 지난 7월30일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를 정식 도입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수탁자책임을 다하기 위한 기관투자자 행동지침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기업경영 간섭=연기금 사회주의’라는 불순한 프레임으로 무장한 재벌과 보수언론의 파상공세에 도입 수준을 하향 조정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관철시켰다. 그리고 기존 의결권전문위원회를 확대한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위원(주주권행사분과위원 9명, 책임투자분과위원 5명 등 총 14명)도 지난 9월 구성했다. 장기간 공석이었던 기금운용본부장도 두 달 전 임명됐다.   
 
그러나 사회책임투자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은 ‘국민연금 책임투자와 스튜어드십 코드에 관한 연구’ 용역 수행기관으로 고려대 산학협력단을 선정했고, 최종 용역보고서를 지난해 말 받았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는 이 용역결과를 바탕으로 도입됐다. 그런데 사회책임투자 용역결과물이 1년이 다 되도록 묵혀두고 있는 상황이다.
 
용역 최종보고서는 사회책임투자 활성화를 위해 ▲책임투자 가이드라인 제정 ▲책임투자 전략 수립 ▲조직과 시스템 개선 ▲책임투자 규모 확대 ▲책임투자 위탁운용사 선정·평가 기준 개선 ▲책임투자 BM(벤치마크) 개선 ▲국민연금 ESG 평가모형 활용 제고 ▲ESG에 기반한 기업관여 ▲책임투자 관련 제도 개선이라는 아홉 가지 사항을 담고 있다. 
 
이중에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특히 책임투자분과위원들이 처음부터 상시적 회의를 통해 관여해야 하는 사항도 다수 포함돼 있다. 그런데 책임투자분과위원 모임은 현재까지 세 번 열렸고, 전범기업(戰犯企業) 투자에 대한 단 한 차례 논의만이 그나마 회의 같은 회의였다.
 
문제는 이 회의도 본말이 전도됐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전범기업 문제는 국민연금 사회책임투자 정책과 원칙 그리고 가이드라인과 전략 수립이 선행되고, 인권의 범주 속에서 다뤄야 한다.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사회책임투자 요구에 대한 대증처방, 면피, 방어를 위한 목적으로 만든 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주주권 행사 기반은 투자대상기업의 비재무적 정보인 환경, 사회, 거버넌스, 즉 ESG 요소에 있다. 때문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평가하는 핵심 정보인 ESG를 투자에 고려하는 사회책임투자와 수레의 두 바퀴처럼 같이 가야 한다. 그래야만 스튜어드십 코드도 제대로 이행될 수 있고 양자의 시너지 효과도 창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은 사회책임투자에 손을 놓고 있는 형편이다. 그 사이 한 때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를 배우러 왔던 일본은 이미 세계가 주목하는 사회책임투자 선진국으로 진입하고 있다. 
 
물론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전력투구 하느라 한숨 돌리는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이 일부러 시간을 끌고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고, 코드 도입으로 할 일을 다했다며 긴장을 놓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시경’(詩經)에 ‘행백리자(行百里者) 반어구십(半於九十)’이라 했다. ‘백 리를 가는 사람은 구십 리를 절반으로 생각한다’는 말이다. 엄중한 시기에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은 그런 자세로 일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와 사회책임투자는 그동안 무책임한 투자를 해왔던 국민연금기금 개혁의 척도다.
 
동중서의 말처럼 ‘마땅히 개혁할 때 개혁하지 않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 지금 사회책임투자와 관련해 국민연금의 거문고 줄은 축 늘어져 있다. 다시 탄탄하게 고쳐 매지 않으면, ‘해현경장’ 하지 않으면 국민들로부터 개혁의지를 의심 받는다. 해는 중천인데 사래 긴 사회책임투자 밭은 언제 갈려하는가. 국민들의 사회책임투자 ‘책문’에 조속한 실행을 위한 ‘현량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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