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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결국은 퇴진…재벌가 사위의 한계
2018-12-10 07:00:00 2018-12-10 07:00:00
"로열패밀리인 줄 알았는데, 그냥 여러 전문경영인 가운데 한 명이었나 보네요."
 
지난 5일 안용찬 제주항공 대표이사(부회장)의 전격 사임 소식을 듣고 한 재계 인사가 건넨 첫마디였다.
 
안 부회장은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맏사위다. 장 회장의 외동딸인 채은정 애경산업 부사장의 남편이다. 그는 2006년부터 제주항공의 경영을 주도하며 회사를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업계 1위로 만들었다. 그의 공격적 경영은 타 LCC의 모델로까지 자리했다. 그런데 임기를 2년이나 남기고 별안간 떠났다.
 
안 부회장의 사임에서 회사 발표처럼 목표를 다 이루고 명예롭게 은퇴하는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재벌가 사위의 한계'라는 씁쓸함만 남긴다. 남들 보기에는 재벌가 맏사위지만, 총수일가에게 '우리 식구'로 받아들여지지 못한 모양새다. 사실 총수일가라면 죽을 때까지 은퇴라는 게 없다. 수년째 병상에 누웠으나 여전히 회장 칭호를 받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만 봐도 그렇다. 회장들은 죽어서도 명예회장 타이틀을 달고 그룹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다.
 
부인을 통해 남편의 신분이 상승되는 일명 '남데렐라'의 운명일까. 임우재 삼성전기 전 고문은 이건희 회장의 맏사위다. 그는 1999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결혼했으나 2014년부터 이혼소송 중이다. 임 전 고문은 이 회장의 경호원으로 지내다가 이 사장을 만났다. 삼성은 부랴부랴 그의 신분을 삼성물산 평사원으로 속이고 재벌가의 로맨스로 포장했다. 하지만 임 전 고문은 처가에서 철저히 소외됐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둘째 사위였던 신성재 삼우 부회장도 2005년부터 무려 9년간 현대하이스코 사장을 지냈지만 2014년 이혼과 함께 현대차 관련 지분을 모두 정리해야 했다.
 
물론 사위가 처가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은 사례도 있다.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의 뒤를 이은 현재현 전 회장과 담철곤 오리온 회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예는 손에 꼽을 정도다. 성과를 내더라도 경영에서 배제되는 일이 더 많다. 처가에 아들이 있다면, 딸의 경영능력이 사위보다 낫다면, 사위는 그들의 조력자에 그친다. 재벌그룹에서 후계구도가 진행될 때는 사위들은 처가를 두려워해 자신의 존재가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
 
재벌가와 결혼하게 되면 남들은 출세했다고 한다. 하지만 재벌가 사위는 결국 총수일가와 전문경영인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때문에 생존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그래서 사위들은 의외로 경영 성과가 두드러지는 일도 많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전문경영인이 실적 외에 다른 것에는 관여하지 못하듯. 국내 LCC 업계 1위 제주항공의 사상 첫 연 매출 1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물러나는 안 부회장처럼 말이다.
 
최병호 산업1부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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