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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기획2050)⑧100세 시대 생정보학과 건강불평등, 위험과 해결방안
인구구조와 사회구조의 제도적 불일치가 심각한 시대 도래
인간 게놈의 완전한 해독과 활용으로 '게놈철학' 문제 직면
2018-11-12 07:00:00 2018-11-12 07:00:00
'인간은 120살까지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박종화 울산과학기술원 교수는 현재의 50대는 인류사 최초로 120살까지 살 수 있는 세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종신교수를 지냈다. 국내에서는 한국인 게놈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평생 인간의 노화현상을 연구한 전문가이기 때문에 지금 50대가 120세까지 살 수 있으리라는 그의 주장을 신뢰하게 된다. 개인별 게놈을 완전히 해독하게 되면 건강 문제에 대해 지금과는 다른 전혀 세계가 열리게 된다. 50대가 앞으로 70년을 더 살면 2088년까지 생존하게 된다. 20세기 후반에 태어나 21세기의 거의 대부분을 사는, 무려 2세기에 걸쳐 사는 새 경험을 하게 된다. 이들에게 필요한 장기비전은 2050년이 아닌 2100년에 대한 것이다.
 
20세기적 사회제도에서 맞닥뜨린 '100세 시대'

동아시아 고전인 <주역>은 인간과 자연, 국가 등 모든 것을 보편적인 생애주기인 '원형이정(元亨利貞)'의 관점에서 본다. 인간에게도 자연과 같은 춘하추동의 계절 변화가 있다는 주장이다. 100세 시대가 보편적인 삶의 방식이 되면, 생애주기가 연장되는 만큼 지금까지 인류와는 다른 생애설계가 필요하다. 100세 인생에서는 51살부터 75살까지가 가을에 해당할 것이다. 성장기의 여름을 지나 수확기인 가을로 접어들 시기다. <주역>은 자연과 같이 살라고 가르친다. 신체·정신적으로 하향곡선에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는 많이 버리되 몇가지에 집중하는 게 순리라는 설명이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낼지의 인생설계가 앞선 세대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면 삶의 모델도 달라진다. 1900년대 초반 경제학자 윌리엄 베버리지 등 복지국가의 설계사들은 60세를 전후해 공장에서 은퇴한 노동자들이 노후연금과 건강보험을 통해 생애를 마무리하는 삶을 구상했다. 그들은 인간이 60세 이후에 은퇴해서 70~80세에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이 시기를 지나면 인간이 자연사하는 상황을 전제로 복지제도를 설계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대표되는 최저국민수준(National Minimum)을 보장하는 게 국가의 의무고 국민들은 이를 국가에 요구할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 복지국가 설계사의 주장이었다.
 
2016년 10월1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100세 시대 금융박람회'를 찾은 시민들이 은퇴설계 상담을 받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러나 100세 시대가 되면 50~75세의 인간은 신체 활력이 줄더라도 사회적 활동은 가장 왕성해진다. 이 경우 100세 시대의 개인적 삶과 20세기에 만들어진 사회제도 사이에 마찰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한국사회는 지금도 인구구조와 사회구조가 심각한 제도적 불일치를 겪고 있다. 남녀 할 것 없이 50대 후반부터 명예퇴직을 강요받고 퇴출, 비정규직으로 살게 된다. 이 상황에서 100세 시대를 맞으면 인구구조에서 중간층 연령대가 될 50~70대의 삶을 재설계하는 과제는 장래 한국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문제가 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75세부터 100세까지다. 100살까지 사는 게 예외적 일로 여겨지는 지금 시대에서 이 연령대의 대부분은 각종 만성질환을 앓고 거동이 제한되거나 병원 등에서 죽음을 기다린다. 평균적으로 100세까지 살게 될 미래에서도 이 사람들은 이런 모습일까.

3세대 진화론 '생정보학'의 등장과 유전자

다행인 점은 다른 미래가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100세 시대가 상상에 그치지 않고 가까운 미래의 현실이 됐듯 75세 이후의 삶과 미래사회도 전혀 다르게 진행될 수 있다. '생정보학(Bioinformatics)'이 그 실마리다. 인간의 게놈을 완전히 해독할 수 있다면 이를 바탕으로 단순 분석을 넘어 유전자 편집도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생정보학의 역사는 1953년 케임브리지대학교의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듀이 왓슨이 이중나선의 DNA 모델을 제시하면서 시작됐다. 둘은 생명체가 코드를 갖고 있고, 생명학은 정보학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시간이 지날수록 DNA의 구조와 형태 등에 관한 더 많은 과학적 사실이 밝혀졌다. 생정보학은 기존에 생물학적 진실로 여겨지던 이론들에 대해 다른 견해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게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다. 다윈은 획득형질에 의한 개체변이는 유전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학습과 기억, 경험 등을 통해 한 세대의 개인에서 신체·정신적 변화가 일어나더라도 이는 유전자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고 그의 죽음과 함께 단절, 후대로 전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정보학은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인간의 게놈을 완전히 해독할 수 있다면 이를 바탕으로 유전자 편집까지 가능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100세 시대의 개인의 삶과 미래사회의 모습이 전혀 다르게 진행될 수 있다. 사진/프리큐레이션

진화론의 변화를 사회과학적 시각으로 볼 때 대략 3세대의 변화가 있었다. 첫째는 프랑스의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가 주창한 용불용설이다. 이 주장은 다윈의 등장 전까지는 정설로 여겨졌지만 다윈 이후로는 위상이 격하됐다. 둘째는 다윈의 진화론이다. 이는 현재까지 과학적 사실로 믿어지는 견해다. 유전자에 의해 생명체의 형질이 결정되고 유전자는 유전을 통해 후세에게 전승된다는 게 핵심이다. 진화론은 자연과학에서만 머물지 않고 사회진화론 등으로도 발전, 사회 전반에 엄청난 파장을 미쳤다. 근대적 사고의 핵심 이데올로기가 여기서 도출됐고 극단적으로는 우생학이나 인종차별의 근거로 오용됐다. 세 번째 진화론이 바로 생정보학이다.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는 다윈과 달리 한 개인이 살면서 경험한 것도 유전정보에 기록되고 축적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1919년 3·1 운동에 참여한 할아버지의 경험은 아버지 세대에 유전되지 않을 수 있지만, 손자 세대의 유전자 코드 어딘가에는 흔적이 남겨지고 후세에 유전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이론은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사회과학과 역사, 철학에도 지대한 변화를 불러올 것이다.

생정보학은 인간의 진화에 대해 빅뱅 이래 우주의 경험이 인간의 유전자에 벽돌처럼 축적됐다고 본다. 인간 게놈은 60억쌍의 염기서열인데, 벽돌건물처럼 오랜 세월 차곡히 쌓였다는 말이다. 게놈의 그 벽돌들도 일정한 체계와 설계로 구성됐고 쉼 없는 검증과 유지보수를 받는다. 그래서 박종화 교수는 "게놈은 단순한 유전정보 덩어리가 아닌 생명현상과 문명화의 결과고, 과학기술적 패러다임이 만든 진화적 결과물"이라고 밝혔다.
 
박종화 울산과학기술원 생명과학부 교수. 인간의 노화현상을 연구하고 한국인 게놈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그는 인간이 50대가 120세까지 살 수 있으리라고 주장한다. 사진/뉴시스
 
인간 게놈의 완전한 해독 가능해진다

인간 게놈의 서열을 완전히 해독하는 작업은 이미 한창 진행 중이다. 비용도 2000만원 수준으로 급격히 낮아졌으며, 게놈프로젝트에 참여를 신청하면 무상으로도 해독해준다. 앞으로 10년 안에 제도적 규제가 풀린다면 한국인 5000만명 또는 지구 70억명의 게놈을 해독하는 것도 가능하다. 박 교수는 "인간 게놈 서열의 완전한 해독과 활용은 인류의 진화사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이라며 "생물이 자기의 게놈 정보를 스스로 해독한 것은 매우 특별한 일이고 넓게는 지구 생명체 진화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인간이 자신의 게놈을 완전하게 해독한 정보를 가진다는 것은 인류의 삶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영역으로 진화할 수 있음을 뜻한다. 우선 긍정적인 의미에서는 인생의 겨울인 75세에서 100세까지의 삶이 마냥 우울하거나 막연히 죽음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게 된다. 예방의약의 발달로 인간은 더 건강한 육체적 삶과 정신을 영위할 수 있게 됐다. 유전자 편집을 통해 인간의 결점을 보완한 새로운 수퍼 인간(Super Human)이 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게놈 해독과 유전자 편집, 수퍼 인간의 출현 등은 생명윤리나 보수신학과의 갈등을 겪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특히 수퍼 인간이 자본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의 전유물이 된다면 인류는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건강불평등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인류의 종(種)은 자연상태의 사람과 수퍼 인간으로 나뉘어질 것이다. 수퍼 인간은 육체적 격차만 아니라 지성에서도 차이를 만들어 낼 것으로 전망된다.

건강불평등이 가져올 게놈철학

이에 따라 인간은 새로운 게놈철학의 문제에 직면하게 됐다. 이전과 다른 인류 종의 출현을 어떻게 볼 것인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게놈철학은 지금까지는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래에는 가장 치열한 사회철학의 쟁점이 될 것이다. 이미 개에 대한 유전자 편집이 성공했다. 생정보학자들은 개보다 인간의 유전자 편집은 훨씬 쉽다고 말한다. 사실상 기술적으로는 인간의 유전자 편집이 시간문제일 뿐이다.
 
게놈 해독과 유전자 편집은 현생 인류의 단점을 보완한 수퍼 인간의 출현을 예고한다. 수퍼 인간을 통해 인간은 더 건강한 육체적 삶과 정신을 영위할 수 있지만, 심각한 건강불평등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사진/프리큐레이션
 
요즘 누구나 자신의 건강검진 결과를 알고 있듯 2030년에는 누구나 자신의 게놈 정보를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되면 인류는 아주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질병 예방이 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부모는 자신의 아기가 유전적으로 어떤 분야에서 잠재성이 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의 게놈 정보를 통해 직업적으로 조금 더 재능과 일치하는 분야를 선택할 수도 있다. 자신의 재능과 잠재성을 잘 몰라서 겪는 진로의 방황도 줄일 수 있다.

그런데 현생 인류가 120살까지 살게 된다면 100세 이후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특히 누구나 게놈을 완전하게 해독한 자신의 유전자 정보를 갖고 있고, 머지않은 미래에 수퍼 인간의 도래까지 지켜볼 그때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예견될 사회적 변화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모두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될 것이다. 20세기적 제도에 익숙한 인간의 생애주기를 달리 생각할 시점에 왔다. 50세부터 75세까지 할 수 있는 일과 75세부터 120세까지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개인과 공동체 모두 성찰이 필요한 때다.
 
임채원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 필자 소개 : 필자는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다.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대학원 행정학 석·박사를 수료하고 동대학 한국행정연구소와 국가리더십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했다. 경희대에서는 세계화와 사회정책 등 글로벌 어젠다와 동아시아문명의 국정운영을 연구 중이다. 또 문재인정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공공정책분과 위원장으로 국가 미래전략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30년 후의 국가비전을 모색하는 이번 기획은 격주로 총 15회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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